[비즈한국]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라고 묻던 시대는 지났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필두로 여러 이스포츠(e-sports) 경기에서 한국이 선전하면서 이스포츠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게이머가 우선이다’라며 이스포츠 지역연고제를 포함한 4가지 정책을 발표했는데, 정권 출범 2년 차인 지금 공약의 진행 상황은 어떨까.
올해 한국 선수단은 국제 이스포츠 경기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이스포츠가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제19회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 2개(리그 오브 레전드, 스트리트 파이터), 은메달 1개(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동메달 1개(FC 온라인)라는 결실을 얻었다.
11월 1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롤·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선 한국 SKT T1이 중국 웨이보 게이밍에게 3대0으로 승리를 거뒀다. T1은 ‘페이커’ 이상혁, ‘제우스’ 최우제, ‘구마유시’ 이민형 등 국내 유명 프로게이머가 속한 팀이다. 롤 월드 챔피언십은 롤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여는 대회로 팬 사이에서 ‘롤드컵’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국내에서 열린 2023 롤드컵 결승전은 예상을 넘어 흥행했다. 결승전 입장권 1만 8000장은 10분 만에 매진됐고, 경기장에 가지 못한 이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거리 응원에 나섰다. 국제 선수권 대회가 아님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T1 선수단에게 “롤드컵 우승을 축하한다”라며 축전을 내기도 했다.
이처럼 이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 주목된다. 2022년 1월 윤 대통령은 게임 이용자를 위한 공약으로 ‘게임업계 불공정 해소를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정책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 공개 △게임 소액 사기 전담 수사기구 설치 △이스포츠 지역연고제 도입 △장애인 게임 접근성 불편 해소 4가지다.
취임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공약은 얼마나 실행됐을까. 진행 중인 것도 있지만 나머지는 논의에 그치거나 법안이 계류된 상태다. 시행을 앞둔 정책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다.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3월 22일 시행 예정인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 정보를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표시 의무 대상과 사항 등을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해외에서 유통·개발한 게임이 자율규제조차 지키지 않는 가운데, 국내 사업장을 두지 않는 게임사는 제재할 수 없어 역차별 논란이 남았다.
게임 소액 사기 전담 기구 설치는 지난 10월 언론 등을 통해 추진하지 않은 것이 알려졌다. 그사이 사이버사기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2020년 17만 4328건을 기록한 후 2021년 14만 1154건으로 감소했으나, 2022년 15만 5715건으로 늘어난 것.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올해 3~10월 실시한 ‘4대 악성 사이버범죄(사기·금융 범죄·성폭력·도박) 집중단속’에서도 사이버사기 범죄 중 게임사기는 6.7%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스포츠 지역연고제 공약은 이스포츠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 기반의 이스포츠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로 이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13개 중 9개가 서울·경기에 있고, 4개만 타지역(부산·광주·진주·대전) 있어 수도권 집중 현상을 보인다. 프로 이스포츠단 중 지자체와 협약을 맺는 경우는 있어도 지자체가 직접 출자해 창단한 곳은 없다.
이스포츠 지역연고제 도입 논의는 대선 공약으로 나온 이후 가라앉았다가, 올해 7월 김성원 의원 등 10명이 관련법을 발의하면서 재조명받았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이스포츠법) 일부개정안’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지역 연고의 프로 이스포츠단 창단에 출자·출연할 수 있고,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 이스포츠법 제5조 ‘지방 이스포츠의 진흥’에는 지자체가 시설 조성, 단체 설립, 대회 개최 등을 지원하는 내용만 있다.
발의된 개정안은 상임위 심사 단계에 있다. 소관위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9월 검토 보고에서 “이스포츠는 팬층이 전국 단위로 형성되고, 온라인으로 경기를 치러 정책 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 지역 아마추어 기반이 열악해 프로게임단을 유치해도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프로축구의 지역 구단은 고질적인 운영난이 문제다.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 불편 해소 정책으로는 장애인이 게임을 원활하게 즐기도록 ‘게임 접근성 진흥위원회’를 설립한다는 공약이 있었다. 하지만 전담 기관은 나오지 않았고,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 계류 상태다. 2022년 11월 하태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스포츠법 개정안은 장애인 게임 보조 기구의 표준화 제도와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이다. 기본계획에 장애인 이스포츠 참여 확대를 포함하고 게임 주변기기 보급에 필요한 경비를 문체부 예산에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개정안은 2022년 11월 발의했으나 상임위 심사에 머물러있다.
한편 열악한 상황에도 게임을 향한 장애인 게이머의 열정은 뜨겁다. 11월 24~26일 광주 이스포츠 경기장에서 열린 ‘2023 전국 장애인 이스포츠 대회’는 최초로 4가지 장애유형(시각·청각·지체·지적)에 따라 선수 등급분류를 적용한 대회다. 종목은 PC, 콘솔, VR 세 가지로 나뉘며, 이번 대회에는 총 180명이 참가했다. 이 밖에도 대한장애e스포츠연맹이 주관하는 대회 등 곳곳에서 열린다.
연구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한신대학교는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해 장애 유형에 따라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에 따르면 올해는 시각장애를 주제로, 시각장애인 게이머인 이민석 씨 등 6명을 섭외해 관찰 조사를 진행한다. 장애인 게임 이용자에게 접근성을 개선 사례를 제시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 기록하는 식이다. 콘진원 관계자는 “총괄 기구가 없어도 관련 기관과 게임업체에서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관심이 높아지고 업계서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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