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은 지점마다 20·30대 프레시 매니저가 한두 명은 꼭 있어요(hy C 점장).”
“이 일이 워낙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20대가 제일 많죠. 30대가 그다음이에요(U 청소업체 사장).”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hy(옛 한국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는 1971년 가정주부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50·60대 여성 판매원을 모집하면서 초기 47명의 인원으로 시작됐다. 흔히 ‘어머니’ 세대가 일한다고 여겨지던 이 프레시 매니저에 최근 6년 사이, 문을 두드리는 2030 MZ세대(1980년~2010년 사이 출생자)가 약 30배나 증가해, MZ세대 프레시 매니저의 수는 600여 명에 이르렀다. 서울 강남 등 젊은 인구가 많은 지점에서는 증가세가 더 가파르며 서울 내 다른 지역 역시 MZ세대 프레시 매니저를 만나는 것은 신기한 광경이 아니다.
서울 소재 hy 지점의 C 점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친구들의 발길이 잦았다”며 “젊은이가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강남이나 공덕지역에는 그 수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MZ가 택한 프레시 매니저의 장점으로는 유동적인 시간 관리와 개인 역량에 따른 수익 구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50·60대가 많은 프레시 매니저의 특성상 작업장 내 텃세가 없고 서로 챙겨주는 가족 같은 분위기도 장점이라고 말한다.
#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 청소 용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늘어난 2030
프레시 매니저의 근무 형태는 개인사업자로, 판매한 수익 중 일부 비율을 수수료로 지급받는 구조다. 업무에 필요한 의복과 전동차(전동 코코)도 지급 받으며 면허가 없는 경우 사륜 원동기 면허 취득 과정도 회사에서 도와주어 따로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 이미 개척된 지정구역 내 고객을 인수받게 되는 구조로 수입이 매달 안정적이고 업무 특성상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도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취업난을 겪으며 고정적인 수입 창출이 어려운 MZ세대가 프레시 매니저를 찾게 되는 이유와도 연관된다. 구직 활동을 하는 청년들의 경우 생활비 조달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에 무리가 없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C 점장은 “프레시 매니저 중 20%는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개인 활동을 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야쿠르트 자체를 젊은 사람들이 ‘올드(old)하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hy의 오랜 고객 중에 이 일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 프레시 매니저에 지원해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점 내 30대 초반 프레시 매니저의 사례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hy의 각 지점의 점장들 역시 과거보다 연령대가 20·30대로 낮아졌다고 한다. C 점장에 따르면 “과거엔 대리점 형태였지만, 현재는 직영점 체제로 바뀌었다. 이 측면 역시 최근 젊어진 야쿠르트 이미지에도 한몫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이 흐름은 청소업체에도 찾을 수 있었다. 한 청소업체는 “우리 회사는 80% 정도가 MZ세대에 속한다. 2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30대”라며 “남·여 비율은 50%”라고 전했다. 청소업은 육체적 노동 강도가 강해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일에 적응하기 쉬운 것도 한몫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젊은 세대들을 쉽게 보지 못한 업종에서 20·30대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hy의 C 점장은 “신기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르신들이 기특해하신다. 20대나 30대 젊은 프레시 매니저는 지점 내에서도 인기 만점”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적인 직장 선호도 낮아져…썰렁한 노량진, 시들해진 공무원 인기
이처럼 요즘 젊은이들의 직업적 선호도는 반대로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24일 오후 5시경 노량진 학원거리를 찾았다.
노량진 학원가를 방문하기에 앞서 눈길을 사로잡은 건 굳게 닫혀버린 컵밥거리의 상점들이었다. 오후 6시가 지나도 근처 포장마차들은 굳게 닫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G 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최근 9급, 7급 공무원 수험생이 확연히 줄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여기(학원 로비)가 쉬는 시간에 북적북적했어요. 이제는 준비하는 학생 자체가 줄어서 여기뿐 아니라 다 이럴 것”이라며 7급 공무원 대비반은 학원에 실강 수업이 단 한 반만 남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히려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는 20·30대는 늘었다는 후문이다. 근처 P 공인중개사학원 관계자는 “최근에 워낙 취업이 안 되니까 20대들도 취업하려고 자격증 형식으로 이거(공인중개사자격증)를 따러 오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오히려 엄마들이 애를 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5~6년 전까지 문전성시를 이루던 공무원학원에는 썰렁한 기운이 맴돌았다. 근처 식당가나 길거리에 다니는 학생 수만 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노량진 학원가 초입의 컵밥가게 상인 E 씨는 “주 고객층이 이곳 수험생인데, 학생이 없다. 장사가 안 되는 걸 체감하는 것은 물론, 여기 옆에 가게 두 곳도 결국 못 버텨 문을 닫고 새 가게가 들어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국가직 7급 공무원 경쟁률은 2017년 66.2대 1에서 감소세를 거치며 2023년 경쟁률이 40.2대 1로 접어들었다. 이는 청년들의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수요가 줄고, 나아가서는 젊은 세대의 직업 가치관이 변화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노량진역 앞 편의점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L 씨는 “코로나 이후 실강보다는 인강을 활용하는 학생이 늘어서 학원가가 더 빈 것 같다. 코로나 초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공무원의 시들해진 인기는 교사 직군에서도 나타났다. 초등교사 K 씨(27세·여)는 “힘들게 초등교사가 되었는데 퇴근할 때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다”며 “주변 선배 교사들이 하나둘 퇴직할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내가 학생일 때 교사는 선망 받는 직업이었고 교대 진학 때까지도 정년 이전에 그만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경기 불황과 취업난의 영향도 있어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청년들의 선호가 줄었다는 것은 저성장 경기 흐름과 연속된 취업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년 연속 1%대 저성장 기조를 보이며 이는 곧 한국경제의 ‘뉴노멀’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시간 일자리뿐만 아니라 관망하는 청년 구직, 관망 실업도 증가할 수 있으며, 좋은 일자리로 전환되기보다는 창업이나 혹은 계약직 일자리를 거쳐 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흐름이 우리나라만의 경향성은 아니다. 인재 획득 및 리크루팅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엘로우(Yello)에 따르면 미국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출생자)는 직업 선택에서 급여와 워라밸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또한 Z세대의 절반 이상이 3년 이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의향이 있다고 말하며, 이는 곧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가 적다는 것을 함축한다.
2021년 국내 민간 싱크탱크 LAB2050(랩이공오공)에서 발간한 ‘랩 실험을 통한 청년 세대 일자리 지향 탐색 연구’ 보고서에서 청년 구직자들은 일자리 선택에 임금 못지않게 ‘통제권’을 주는 직장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는 유연한 근무시간과 업무상 재량권과 같은 ‘통제권’이 꼽혔다. 그 외에도 주관적 만족도와 발전 가능성의 선호가 두드러진다.
양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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