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야구의 ‘ㅇ’도 모르는 일자무식도 오타니 쇼헤이는 안다. 올해 3월 WBC에서 오타니는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며 그 대회가 자신의 대관식임을 전 세계에 보여준 바 있다. 사실 오타니 쇼헤이의 기본 설정부터가 스포츠 만화의 그것 같다. 공도 던지고 배트도 휘두르는 투수 겸 타자라니, 너무 만화 같잖아. 거기에 훤칠한 피지컬과 외모, 재능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노력, 올바른 인성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어 보인다. 오타니가 2021년에 이어 다시 한번 만장일치로 메이저리그 MVP를 거머쥔 지난 11월 17일, 디즈니플러스에서는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오타니 쇼헤이-비욘드 더 드림’이 공개됐다. 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볼 만하다.
오타니 쇼헤이의 성적과 업적을 일일이 거론하는 건 지면 낭비다. 잠깐만 검색해봐도 그가 이룬 것들이 줄줄이 열거되고 있으니까. 단적으로 오타니 쇼헤이는 야구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100년 전 인물인 베이브 루스와 비교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오타니 쇼헤이-비욘드 더 드림’(비욘드 더 드림)은 그의 명성과 그가 이룬 것들을 충실히 나열하는 대신 그가 꿈을 향해 걸어온 과정을 오타니 자신과 오타니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운다. 현재 야구의 가장 뜨거운 스타를 다룬 것치고는 굉장히 정적이고 소박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무드는 그 어떤 소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오타니와 무척 닮아 있다.
‘비욘드 더 드림’은 1994년 일본 이와테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오타니의 행적을 찬찬히 좇으면서 동시에 그가 어릴 적부터 동경하고 연구한 야구 영웅들이 오타니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교차로 담는다. 미국과 일본에서 모두 인정받은 전설적인 홈런 타자 마쓰이 히데키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역대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인터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가운데, 오타니의 첫 프로 야구팀인 닛폰햄 파이터스의 감독이었던 구리야마 히데키, 오타니의 에이전트 네즈 발레로, 오타니의 닛폰햄 선배이자 WBC의 우승을 위해 함께 뛰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투수 다르빗슈 유, 오타니의 MLB 소속팀인 LA 에인절스 감독이었던 조 매든과 마이크 소샤, 오타니의 열성팬이기도 한 통산 250승 투수인 C.C. 사바시아 등 MLB의 전설이자 야구계의 거물들이 등장한다. 오타니가 최고가 되기까지 영향을 주고 응원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욘드 더 드림’은 야구를 향한 오타니의 꿈에 영향을 끼친 이들을 신중하게 선별한 느낌이다. 그 흔한 부모나 가족 인터뷰, 학창 시절이나 팀 동료들의 인터뷰, 오타니에 열광하는 대중의 반응 따위는 일절 없다.
대신 ‘비욘드 더 드림’은 오타니 쇼헤이와 다른 이들이 서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는 독특한 방식을 보인다. 이를테면 일본 프로 구단 중 유일하게 오타니에게 투타겸업을 제안했던 닛폰햄 파이터스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에게 그 제안이 정말로 자신의 투타겸업의 성공을 믿은 것인지 묻고 구리야마 감독이 그에 답하고, 다르빗슈 유가 오타니에게 무수히 많은 다른 팀을 제치고 LA 에인절스를 택한 이유를 묻고 오타니가 그에 답하고, LA 에인절스에서 다소 부진했던 2020년의 성적을 기록한 오타니를 조 매든 감독이 호출하여 룰을 적용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해보라고 제의했던 것이 투타겸업으로 마지막 기회였는지 믿음이었는지 오타니가 묻고 조 매든이 답하는 식이다. 오프라인이든 화상이든 직접 서로를 대면하지 않고 그때 던지지 못했던 질문을 주고받는 이 다큐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독특하다. 질문과 답을 계속 주고받으면서 그 의미와 과거와 현재를 곱씹어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오타니의 ‘만다라트 계획표’를 보고 야구계 전설들이 감탄하는 장면에선 시청자들도 함께 감탄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타니가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계획표는 정사각형을 아홉칸으로 나눠 정가운데에 목표를 적은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서브 목표들을 나머지 8개 칸에 적고 다시 그 8개의 칸들의 주변에 서브 미션들을 채워 81개의 사각형을 채우는 형식. 고등학생 오타니의 꿈은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에서 1순위 지명을 받는 것이었다. 이 꿈만으로는 다소 허황된 바람이 깃든 소년의 꿈으로 그칠 수 있었을 테지만, 오타니는 그 꿈을 위해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탈, 스피드, 변화구, 인간성, 운 등 8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8가지를 달성하기 위해 64가지를 적고 이를 충실히 따랐다.
눈여겨 볼 것은 운 부분이다. 멘탈과 인간성까지는 인격적인 선수를 위해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최고가 되려면 행운이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어린 오타니는 그 행운 또한 자신이 선행을 쌓을수록 다가올 것이라 여기고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물건을 소중히 쓰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긍정적 사고 등의 방법으로 얻고자 했다. 10대 소년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했다는 점이 놀랍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비욘드 더 드림’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꿈을 향해 노력하고 나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좌절하고 멈춰 있는 사람들에게 묵묵히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는 단순하지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 누구도 제 목표를 저보다 잘 알지 못합니다”라는 오타니의 말을 들으면, 주변의 말에 휘둘리며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삶이 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꿈이 삶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야구에 내 삶을 바칠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타니 쇼헤이. 야구를 1도 몰라도, 다큐를 보고 나면 그의 꿈을 응원하고 그의 꿈 그 너머를 궁금해하게 될 것. 팬이 되는 건 덤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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