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와이너리] 확 달라진 5세대 싼타페 "너 뭔가 낯설다"

[비즈한국] 지난 8월 현대 싼타페의 신모델이 공개됐다. 세대 구분상 5번째 풀 모델 체인지에 해당하는 이번 모델은 지난 1-4세대와 달리 차체 곳곳의 면을 수직 수평으로 만든 각진 스타일로 출시됐다. 크기도 눈에 띄게 커졌다. 지금까지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것은 판매 부진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팰리세이드와 투싼 등 같은 집안의 여러 SUV가 선방하고, 비슷한 체급의 기아 쏘렌토가 부상하는 동안 싼타페의 판매량은 기대 이하에 그쳤기 때문이다. 기존 싼타페와 확실하게 차별화함으로써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2000년 처음 선보인 1세대 싼타페(코드네임 SM)는 당시 거세게 불었던 장르와 장르를 섞는 ‘크로스오버’ 열풍을 타고 등장한 승용 SUV다. 그 전신은 199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현대 HCD-4 콘셉트카. 도심형 SUV를 목표로 개발된 HCD-4는 전통적인 SUV에 쓰이는 프레임 바디 대신 중형차인 EF쏘나타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승용차에 주로 쓰이는 모노코크 바디를 얹었다. 또 범퍼를 높이고 앞뒤 펜더를 강조하는 등 볼륨이 강조된 익스테리어가 호평받아 이듬해인 2000년 6월 ‘싼타페’​라는 이름을 달고 눈에 띄는 수정 없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양산을 전제로 한 프로토타입이 아닌 순수한 전시용 자동차가 그대로 양산된 것은 국내 최초였다. 1세대 싼타페는 2000년 우수 산업디자인(GD) 대통령상을 받는 등 상품성과 판매량 양쪽에서 성공을 거뒀다. 2005년 나온 2세대 싼타페 역시 유선형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의 1세대보다 차분해진 외관으로 폭넓은 인기를 이어갔다.

이처럼 싼타페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역동적인 선이다. 갑자기 정통 오프로더에 가까운 박스형 스타일로 등장한 5세대 싼타페는 그래서 낯선 느낌이다. 어느 정도 역사를 가진 모델의 스타일링에는 고유의 헤리티지가 담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완전히 뒤엎고 다른 헤리티지를 빌려오려는 5세대는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만큼의 스타일리시함을 획득했는가”​라는 질문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박스형 외관을 두고 현대정공이 1991년 선보인 갤로퍼의 오마주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랠리에서 활약하던 미쓰비시 파제로를 들여온 정통 오프로더 갤로퍼와 현대가 독자 개발한 승용 SUV 싼타페의 만남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싼타페는 이번 모델 체인지로 랜드로버 디펜더나 메르세데스 벤츠 G바겐, 포드 브롱코 등의 수입 SUV와 비슷해졌다. 특히 가장 유사한 디펜더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외관은 비슷해도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직선 스타일을 등에 업은 이들과 싼타페는 출발점이 다르다. 굳이 자기 집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들어가서 불리한 경쟁을 하기보다 ‘머슬’을 콘셉트로 한 변화무쌍한 선을 통해 감동을 주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1세대 싼타페를 현재의 패밀리룩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쏘나타 DN8의 판매 부진 원인이 다른 무엇도 아닌 외관 디자인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싼타페는 단일 브랜드로 23년간 판매된 명실상부 현대의 대표 SUV다. 이제는 상품성을 좋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스타일 면에서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쌓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싼타페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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