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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속 사각지대' 특별법도 구제 못 하는 신탁 전세사기 실태

신탁사 명도소송으로 강제퇴거 위기에도 구제방안 없어…"명도소송 중단시키고 공공이 주택 매입해야"

2023.11.22(Wed) 14:13:40

[비즈한국] #1 대구 북구 신탁사기 피해자인 정태운 씨는 오는 15일 주택 명도소송 판결 선고를 받는다. 정 씨가 회사 소유 주택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다며 신탁회사가 주택 인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2021년 8월 이 집의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이전한 위탁자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거주를 시작했다. 이번 명도소송에서 패소하면 정 씨는 보증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하게 된다.

 

#2 서울 강서구 신탁사기 피해자인 박 아무개 씨는 올해 상반기 명도소송을 당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박 씨 역시 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겼던 위탁자와 2021년 10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가, 신탁사로부터 집을 인도하라는 소송을 당했다. 박 씨와 임대차계약을 맺은 신탁사기범은 계약 한 달 뒤 사망했다. 박 씨는 전세 대출금 2억 원을 포함한 보증금 3억 1000만 원을 떼였다. 계약 만기 때 갚지 못한 전세 대출금은 박 씨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박 씨는 현재 경기 부천시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에 월세로 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주택 단지 전경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신탁사기 피해자들이 처한 몇 가지 사례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이 올해 7월 본격 시행됐지만, 신탁사기 피해자들의 신음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도록​ 돕는 지원 적용 대상에 신탁사기 피해자는 빠져,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신탁사기란 부동산 신탁회사에 일정 기간 소유권을 넘긴 사람이 신탁사 허락을 받지 않고 세입자를 들이는 전세사기 수법을 말한다. 적은 자본으로 집을 짓는 사업시행자는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직접 금융권 담보대출을 받거나,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긴 뒤 수익권증서를 받고 이를 담보로 금융기관 대출(담보신탁)​을 받아 부족한 사업비를 조달한다. 통상 담보신탁 기간 주택 임대 권한은 소유권과 함께 신탁회사로 넘어가는데, 신탁사기를 벌이는 위탁자는 마치 정당한 임대 권한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임대차계약을 맺는다.  

 

현재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한 세입자는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국회는 경매나 공매 등으로 위기에 처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불안을 해소하고자 올해 6월 전세사기피해자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세입자를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하면 세입자는 경·​공매 절차에 대한 유예 및 정지 신청, 우선매수권 행사, 공공임대주택 매입 요청, 국세 및 지방세 우선 징수 면제, 주거안정에 필요한 금융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대구 신탁사기 피해자인 정태운 씨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과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정태운 씨 제공

 

하지만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 구제 사각지대에 놓였다. ​임대 권한이 없는 위탁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신탁사기 피해자들은 실제 소유자인 신탁사와 강제 퇴거를 전제로 하는 주택 명도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특별법이 정하는 주거지원 대책이 대부분 명도소송 이후에 이뤄지는 경·공매​ 절차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강제 퇴거되고 나면 피해자들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도록 돕는 경·공매 유예·정지 조치나 우선매수권 행사, 공공임대주택 매입 요청 등은 사실상 소용이 없다.

 

대구 북구 신탁사기 피해자인 정태운 씨는 “전세사기피해자법이 나왔지만 지금처럼 명도소송으로 강제 퇴거가 이뤄지고 나면 사실상 신탁사기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구제책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공매를 유예했듯이 피해자들의 계속 거주를 보장하기 위해 신탁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명도소송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신탁사기 피해자인 박 아무개 씨는 “집주인 행세를 하며 임대차계약을 맺은 위탁자가 사망하고 일가족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서 현재 보증금을 회수할 길이 막혔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받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임대차계약 사각지대에 빠졌다가, 전세사기특별법 제정 이후에는 또 한 번 지원 사각지대에 놓였다. 명도소송을 막을 수 없다면 정부가 가용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신탁사기 피해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이다. 신탁회사가 제기하는 주택 인도 소송과 강제집행을 중단하도록 만들고, 이후 신탁사기 피해주택을 공공이 매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탁사기 피해자는 수백 세대에 달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특별법 제정 이후 현재(9월 20일 기준)까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전세사기피해자 등으로 결정한 6063명 중 신탁사기 피해자는 443건(7%)이다. 국토부가 분류하는 전세사기 피해 유형 중 ‘무자본갭투기·단기간 다주택 거래’​(2536건, 42%) 다음으로 피해 사례가 많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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