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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허블 우주망원경에 찍힌 20만 광년 길이 형체의 정체는?

은하 밖으로 튕겨 날아간 블랙홀 흔적? 원반 은하 옆모습? 두 은하 사이 흐트러진 별의 흐름?

2023.11.21(Tue) 15:29:00

[비즈한국] 여기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우주가 있다. 그런데 사진 속에 무언가 이상한 형체가 있다. 노랗고 동그란 타원은하 옆으로 무언가 길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위쪽 끝에는 밝은 빛이 덩어리져 있다. 이 기다란 형체의 길이만 무려 20만 광년에 달한다. 우리은하 지름의 두 배 수준이다! 우주를 길게 흘러가는 이 수상한 형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놀라운 형체가 처음 발견된 당시 천문학자들은 정말 더 놀라운 해석을 내놓았다. 은하 속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튕겨 날아간 블랙홀이 남긴 흔적이라는 것이다! 일명 런어웨이 블랙홀이다. 그런데 이후 과연 이 천체가 정말 런어웨이 블랙홀인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수상한 형체는 대체 무엇일지,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뜨거운 논쟁을 소개한다. 

 

허블 우주망원경에 찍힌 20만 광년에 달하는 기다란 형체를 둘러싼 논쟁을 소개한다.

 

원래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숨어 있는 아주 흐릿한 왜소은하들, 특히 암흑물질의 함량이 적을 거라 의심되는 왜소은하를 찾기 위해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하게도 사진 속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형체를 발견했다. 수십만 광년 길이로 길게 흘러가는 빛의 흐름. 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파장의 필터로 찍은 여러 사진에서 이 형체는 선명하게 확인된다. 즉 정말 우주에 무언가 기다란 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가끔씩 허블 관측 데이터에서 무언가 길게 흘러가는 듯한 형체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면 거대한 은하 주변 일그러진 시공간으로 인해 더 먼 배경 은하의 모습이 왜곡되어 보이는 중력 렌즈 현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형체는 중력 렌즈로 인한 허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주변에 중력 렌즈를 일으킬 거대한 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 중력 렌즈 허상은 둥글게 휘어진 모습을 보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형체는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흘러간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포착된 20만 광년 길이의 기다란 형체. 사진=NASA, ESA, Pieter van Dokkum(Yale)


특히 사진에는 기다란 형체 끝에 걸쳐 있는 또 다른 빛의 덩어리가 보인다. 다양한 파장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은 기다란 형체와 그 끝에 걸쳐 있는 빛의 덩어리, 각각의 적색편이를 추정했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적색편이가 비슷하다. 즉 둘은 사실 비슷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었을 거란 뜻이다. 

 

더욱 흥미롭게도 이 기다란 형체에서는 아주 독특한 파장의 빛이 강하게 나온다. 첫 발견에서 천문학자들은 이 형체에서 방출되는 이온화된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빛을 비교해 이온화된 산소 원자의 빛이 훨씬 강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산소는 수소보다 원자핵이 더 크다. 그만큼 주변의 전자를 떼어내고 이온화하기 위해선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수소 못지않게 아주 많은 이온화된 산소의 빛이 확인된다는 것은, 이 기다란 형체를 따라 아주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다란 형체는 다양한 파장에서 목격된다.


대표적으로 아주 뜨겁게 달궈진 강착 원반을 두른 거대한 블랙홀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온화된 수소 대비 강한 산소의 방출선이 검출되는 현상은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은하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특징이다. 여기에서 천문학자들은 흥미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원래 은하 속에 잘 살고 있던 거대한 블랙홀이 갑자기 튕겨 날아가면서 그 주변의 가스에 강한 충격파를 일으켰고 빠르게 압축된 가스들 속에서 왕성하게 별이 탄생했으며, 새롭게 태어난 별빛에서 에너지를 얻어 그 속의 원자들이 이온화되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오래전 각자 거대한 블랙홀을 품고 있던 두 은하가 충돌했다. 병합된 은하는 현재 기다란 형체 끝에 걸쳐 있는 덩어리진 은하다. 그 중심에는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서로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또 다른 블랙홀을 품은 세 번째 은하가 접근했다. 세 번째로 끼어들어온 블랙홀은 원래 한 쌍을 이루고 있던 두 블랙홀 중 하나보다 더 무거웠다. 그래서 가벼운 블랙홀의 자리를 빼앗았고, 세 번째 블랙홀이 다시 쌍을 이루었다. 이때 쫓겨난 가벼운 블랙홀은 은하 바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 과정에서 블랙홀이 주변의 가스 물질에 충격파를 일으키면서 이런 기다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실제 관측되는 이온화된 원자들의 빛을 설명하려면 이 쫓겨난 런어웨이 블랙홀은 정말 엄청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어야 한다. 대략 초속 1600km에 달한다. (빛의 속도의 200분의 1 정도다!) 

 

한편 기다란 형체의 또 다른 반대쪽 끝에서도 더 작은 빛의 덩어리가 하나 발견된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가벼운 블랙홀을 튕겨내고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은하 밖으로 날아간 블랙홀 한 쌍일 거라 추정한다. 다만 이쪽 방향에는 성간 가스 물질의 양이 적어서 충격파로 인한 기다란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블랙홀끼리의 자리 쟁탈전으로 인해, 결국 세 블랙홀 모두 원래 살던 은하 바깥으로 쫓겨나버렸다니…. 싸움의 결말은 항상 파국이라는 우주의 섭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나리오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가설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설을 정면 반박하는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기다란 형체가 사실은 그저 얇은 은하를 옆에서 바라본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로운 논문에서 천문학자들은 수상한 형체의 각 부분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속도의 분포를 파악했다. 흥미롭게도 기다란 형체는 절반은 지구 쪽으로, 절반은 지구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즉 기다란 형체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얇은 원반 은하를 옆에서 바라볼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다만 기다란 형체의 가운데에서 별들이 더 높은 밀도로 둥글게 모여 있는 구조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즉 은하 중심 벌지 구조가 뚜렷하지는 않은 은하일 수 있다. 실제로 벌지가 없는 얇은 은하가 옆으로 누운 방향으로 관측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은하 IC 5249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기다란 형체의 회전과 은하 IC 5249의 회전 속도 분포를 비교해보면 굉장히 유사하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이 은하 바깥으로 튕겨 날아가면서 이런 기다란 형체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벌지가 없는 얇은 은하가 우연히 옆으로 누운 방향으로 보이면서 이런 이상한 모습으로 목격되었을 뿐이라고 추측했다. 

 

은하 밖으로 쫓겨난 블랙홀이 아니라 단순히 중심이 뚜렷하지 않은 얇은 은하를 옆에서 본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은 얇은 원반 은하 IC 5249(아래)와 이번에 발견된 기다란 형체의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사진=ESA/Hubble


연이어 가장 최근에는 관측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말 은하 바깥으로 튕겨 날아간 블랙홀로 이런 기다란 형체가 만들어지는지를 검증하려는 시도도 벌어졌다. 원래 서로의 곁을 잘 맴돌고 있던 한 쌍의 블랙홀, 그리고 그 곁에 끼어들어온 새로운 블랙홀. 블랙홀 세 개가 서로의 중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3체 문제를 풀기 위해 방대한 ASTRID 우주론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시뮬레이션이 진행되면서 여러 은하들이 수시로 서로의 곁을 지나가고 충돌을 반복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블랙홀 세 개가 한데 모여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은하를 찾았다. 총 200여 개를 찾아냈다. 한편 천문학자들은 새롭게 탄생한 별들이 길게 흘러가는 구조도 존재하는지 시뮬레이션을 샅샅이 뒤졌다. 약 30개의 긴 형체를 찾아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30개의 기다란 형체 중 그 어떤 것도 은하 바깥으로 튕겨 날아간 블랙홀과 연관된 곳은 없었다. 대신 기다란 형체가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인접한 두 은하가 충돌하지는 않고, 곁을 살짝 스쳐 지나가는 플라이바이를 할 때 이런 긴 별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실제 시뮬레이션에서 확인된 사례와 비교해보자. 블랙홀 두 개가 서로의 곁을 맴돌고 있는 은하가 하나 있었다. 그 곁으로 또 다른 블랙홀을 품은 은하가 접근한다. 다만 이 은하는 충돌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대신 그 곁을 스쳐지나간다. 

 

이 과정에서 은하의 형체가 길게 해체되고 원래 살고 있던 나이 많은 별들과 새롭게 반죽된 어린 별들이 뒤섞인 긴 흐름이 만들어진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렇게 형성된 긴 별의 흐름은 2억 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흥미롭게도 이번 허블 관측을 통해 발견된 것과 굉장히 그 모습이 유사하다. 이를 근거로 가장 처음 제기된, 은하 밖으로 튕겨 날아간 블랙홀이 원인이라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블랙홀 한 쌍 곁에 다른 세 번째 블랙홀이 끼어들어오면서 원래 쌍을 이루고 있던 블랙홀이 쫓겨날 수 있다.


종합해보면 20만 광년 길이로 흘러가는 이 기다란 형체의 정체를 두고 총 세 가지의 시나리오가 제시된 상황이다. 첫 번째, 은하 바깥으로 튕겨 날아간 런어웨이 블랙홀이 남긴 흔적. 두 번째, 중심에 벌지 구조가 약한 원반 은하를 옆에서 바라본 것. 세 번째, 각각 블랙홀을 두 개, 한 개 품고 있던 두 은하가 서로의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흐트러진 별의 흐름. 결국 이 구조가 정말 블랙홀과 연관된 것인지를 검증하려면 허블이 관측한 가시광선, 자외선뿐 아니라 X선과 같은 파장으로 관측할 필요가 있다. 블랙홀의 난폭한 활동을 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파장이다. 

 

한편 적외선으로 우주를 보는 제임스 웹의 추가 관측도 기대해볼 수 있다. 자외선을 보는 허블은 비교적 밝고 뜨거운 어린 별들의 분포를 본다. 반면 제임스 웹은 훨씬 미지근한 나이가 많은 별들의 분포를 본다. 허블과 제임스 웹으로 확인된 어리고 늙은 별들의 분포가 실제 이번 시뮬레이션에서 확인되는 연령에 따른 별의 분포와 비슷한지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우연히 발견된 흥미로운 형체.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벌써 세 가지 가설이 등장했다. 과연 진실은 어떤 가설에 가장 가까울까?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ba86

https://www.aanda.org/component/article?access=doi&doi=10.1051/0004-6361/202346430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ed45

https://astrid-portal.psc.edu/simulation/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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