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때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던 아나운서가 데이터 연구자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돌아왔다. 올해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중계로 TV에 복귀한 이성배 MBC 아나운서(42)는 최근 한국데이터정보사회연구소(KIDIS) 이사장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방송가를 활발히 누비던 이성배 아나운서는 어쩌다 연구소를 세우고, 전문가를 모아 한국 미래 사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을까.
#2019년 런던 유학 후 귀국해 데이터 연구소 설립
이성배 아나운서는 MBC ‘생방송 오늘아침’ ‘비포 선라이즈 이성배입니다’ 등 TV·라디오를 아울러 진행했던 15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다. 2015년 예능 ‘일밤-진짜사나이’에 출연해 진솔한 태도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한동안 방송에서 보이지 않던 그는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중계로 TV에 복귀해 현재 ‘기분 좋은 날’ 스페셜 MC를 맡고 있다.
이성배 아나운서는 타고난 ‘기획자’이기도 하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제일기획 PR팀과 삼성전자 IT 마케팅팀을 거쳤다. 삼성전자 재직 당시 수석 사원으로 뽑히는 등 마케팅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럼에도 아나운서의 꿈을 놓지 못한 그는 회사에 다니며 아나운서 공채에 도전한 끝에 2008년 MBC에 입사했다.
아나운서가 된 후에도 그의 기획력은 빛을 발했다. MBC에 입사한 후 사내 매거진 ‘언어운사’의 편집장을 맡아 아나운서를 외부에 알렸다. 웹 콘텐츠가 많지 않던 2017년에는 회사 최초로 웹 스포츠 예능 ‘마구단’을 기획했고 이는 2020년 스포츠 예능 ‘마녀들’ 제작의 토대가 됐다.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이성배 아나운서는 2017년 8월 이후 5년간 진행한 생방송 오늘아침 MC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여기에 부친상까지 겹치며 그는 방송에서 잠시 물러났다.
2019년 이 아나운서는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 정치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에 도전하면서다.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떠났다. 미디어의 편향성이 전 세계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라며 “소셜미디어의 필터 버블(이용자가 선별된 정보만 접하는 현상), 알고리즘 문제 등 미디어의 유해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논문까지 썼다”라고 말했다.
팬데믹 시기, 타국에서의 늦깎이 공부는 생각의 폭을 넓혀줬다. 언뜻 정치나 미디어와 상관없어 보이는 데이터에 집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인공지능(AI), 플랫폼, 유통 등 개인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곳은 많지만 동의를 얻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문제라고 봤다. 그는 “데이터가 사회 요소에 쓰이는 과정과 전체적인 구조를 개개인이 이해해야 한다”라며 “하지만 사회 논의는 기술을 ‘발전시키자’와 ‘규제하자’라는 이분법적인 방향으로만 흘렀다”라고 짚었다.
“데이터라고 하면 단순하게 숫자를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데이터는 정보 사회의 기술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데이터와 얽혀 있다. 따라서 데이터 문제를 ‘무조건 안 된다’는 규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 양지로 끌어내려면 건강한 논의가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선 아직 이 같은 흐름이 약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젠다와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데이터정보사회연구소, KIDIS를 설립했다.”
#데이터·AI가 만들 미래 사회 어떨까…SFS 2023 콘퍼런스에서 논의
이성배 아나운서와 뜻을 함께한 류형규 컬리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CRO)가 KIDIS에 이사로 합류했다. KIDIS는 비영리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데이터와 AI의 편향 현상을 해소해 건강한 정보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KIDIS가 제시하는 아젠다는 개인정보 오남용 문제, CCTV 활용 방안 등이다.
이 아나운서는 “개인정보 등 데이터 수집이 ‘빅브라더’로 이어지지 않게 인식개선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한국이 보안이나 기술 측면에선 우위에 있겠지만 개인정보 노출 등 부작용도 안고 있다”라며 “촘촘하게 설치한 CCTV는 감시 수단이 아니라 사고 예방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 연구소 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에 CCTV 데이터로 밀집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예측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곧장 아나운서국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MBC 콘텐츠사업국에서 사업 기획을, 경영본부에서 인재 개발 업무를 맡은 뒤 2022년 12월에야 아나운서국으로 갔다. 방송에 얼굴을 다시 비추기까지 3년 가까이 걸렸지만, 그간의 시간은 KIDIS를 세우고 연구소 사업을 추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KIDIS는 △방송 △산학협력 △콘퍼런스 크게 세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한다. 이성배 아나운서가 유튜브와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경제·테크 분야를 논의하는 것이 방송 활동이다. 산학협력은 젊은 인재와 기업을 이어주는 캡스톤 프로젝트(이론을 바탕으로 실무과제를 해결하는 교육)로 현재 준비 중이다. 연구소의 아젠다를 대중에 알리고 사회에 파급력을 미치기 위한 사업이 바로 콘퍼런스다.
12월 3일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리는 ‘2023 스마트 미래 사회(SFS 2023)’ 콘퍼런스는 KIDIS가 데이터와 기술 관련 논의를 일으키고 대중과 생각을 공유하는 첫 단계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새로운 혁신을 탐색한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실무진과 전문가가 강연한다.
SFS 2023에선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김민철 야나두 대표, 최근영 넷마블 에브리플레이 사업총괄(COO)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기업인이 연사로 나선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미래 사회의 도시에 관해 토론할 예정이다.
콘퍼런스는 AI와 빅데이터가 기반이 될 미래 사회를 신기술(AI)에서 시작해 국토, 교통, 인구 정책의 흐름으로 짚어본다. 국토는 도시와 공간, 교통은 모빌리티를 뜻하며 인구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은 개인화·미디어·의료·육아·IT·법률 등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당연하게도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데이터다.
본업만으로 바쁜 이성배 아나운서가 이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그는 “아나운서는 단순히 방송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건전하고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것도 아나운서의 역할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방송에 최선을 다하면서, 학습에 매진하고 연구소 외연을 키우는 데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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