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며칠 전 지인이 유튜브 링크 하나를 툭 보내왔다. 46년 경력의 디바 인순이가 뉴진스의 ‘하입보이’ 비트를 미친 듯 쪼개 가며 빨려 들어갈 듯 노래 부르는 동영상이었다. 요즘 아이돌 노래를, 심지어 다섯 명이 불러내야 하는 ‘하입보이’를 오롯이 혼자 그 모든 파트를 다 노래하며 걸그룹 댄스까지 춰내는 그녀의 무대에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오랜 경력의 디바가 해내서 멋지다는 단순한 극찬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이 경이롭다는 느낌을 주는 무대여서다.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이 동영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라고 지인에게 물으니 요즘 새로 시작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골든걸스’를 통해 나오게 된 출연자 미션곡 클립이란다. 가수 인순이의 매혹의 무대에 홀려 찾아보게 된 ‘골든걸스’는 우리나라 80~90년대 대표급 여성 디바들인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를 모아 그들의 걸그룹 도전기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름만으로도 무게감 넘치는 이들을 하나의 걸그룹으로 결성시켜 데뷔전까지 이끌 프로듀서는 JYP의 수장이자 지금의 K-팝을 이끈 중심 리더인 박진영이다. 심지어 ‘골든걸스’ 디바 걸그룹 프로젝트의 시작은 박진영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됐단다.
“난 음악에 대해서 뭔가 계속 타올라. 1980년대, 90년대 소울 음악이 너무 좋은데, 사실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아이돌 걸그룹, 보이그룹이 그런 걸 전혀 안 하니까. 그래서 갑자기 내 머릿 속에… 미경이 누나, 누나, 은미 누나, 인순이 선배님을 걸그룹으로 한 번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골든걸스의 멤버 소환을 위한 설득의 장소에서 박진영이 가수 신효범에게 한 말이다. 그런 조심스러운 박진영의 제안을 듣던 가수 신효범은 한 마디로 이렇게 답한다. “미친 거지.”
그녀들의 경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미친 거지”라는 말이 입에서 바로 나와 버리는 조합. 가요계 34년 차, 36년 차, 39년 차, 46년 차 레전드급 보컬리스트 신효범, 이은미, 박미경, 인순이가 걸그룹 한 팀으로 모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단순한 앨범 제작이 아닌, 기존의 걸그룹들처럼 합숙과 트레이닝까지 거쳐 가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악, 아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 연륜은 있지만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걸그룹 도전의 어떤 영역은 조금 느슨하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그 누가 봐도 완벽하고 프로페셔널하게 합을 맞춰 팀을 이뤄내는 것이 ‘골든걸스’의 목표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앞둔 상황에서 프로듀서 박진영은 이들이 앞으로 수행해야 하는 미션들을 설명하고, 살짝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완벽한 트레이닝을 위해 주 5일 합숙을 해야 한다는 말을 건넨다. 방송 2회차의 한 장면인데, 대선배들 앞에서 눈치 보는 박진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든걸스 멤버들의 분위기는 꽤 냉랭해진다. 솔로 가수로 더할 나위 없는 경력을 갖춘 그녀들에게 여타 예비 걸그룹들이 훈련을 위해 진행하는 합숙은 수락하기 쉽지 않은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싸해진 분위기 가운데에서 다시 공기의 기운을 돌린 것은 박미경이었다.
“나는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냥 오픈마인드야” 그녀는 뒤이어 “나쁜 거, 내 단점도 보고, 얘기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그런 얘기를 다 듣고 싶다”며 새로운 도전에 의욕을 내보이는 답을 했다. 경력 39년 차에도 자신의 단점을 알아가며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표명한 것. 그런데 그 상황에서 더 놀라운 코멘트를 전한 건 이 걸그룹 도전기의 가장 연장자이자 가수 경력 46년 차의 인순이였다.
“궁금한 건 해보는 스타일이야. 뭐, 지내보고 안 좋으면 마는 거고 좋으면 좋은 거지. 안 해보고 상상하는 것보다 해보는 게 편해. 나이 들면 용기를 내려놓는다고 하잖아, 내려놓기 싫어.”
정점을 찌르는 성공과 경력에도 단점을 알아가며 새로 시작해 보고 싶다는 박미경의 말도 놀라웠는데, “나이 들면 내려놓는 용기를 내려놓기 싫다”고 하며 신인들이나 하는 합숙의 경험까지도 수용하겠다는 가수 인순이의 담담한 말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평균 연령 59.5세, 이미 가요계에서 한 획을 긋는 커리어의 정점을 품은 이들이 자신들의 경력을 뒤로 하고 ‘걸그룹’이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현재 지니고 품은 것들을 내려놓고, 지금껏 사용했던 발성 방식까지 버리고, 4명의 합을 이루는 하모니를 요즘 가요계에 맞는 결로 바꾸고 춤까지 더하는 도전. 쉽지 않은 도전이기에 이들 네 명 가수 모두, 이 프로젝트 시작 전 도전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모든 바람은 가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멋지고 새로운 무대에 대한 열정과 설렘이 있었기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주눅 들지 않는 ‘용기’는 멋지게 올렸다.
이전의 삶의 방식, 지금의 위치에 의존하거나 안주하는 삶에 혹시 젖어있어서 새로운 도전이 두려운가. 그 도전이 두렵다면, 이들 네 명의 디바들이 펼쳐 올리는 아름다운 도전을 보면서 당신도 이들처럼 용기를 내려놓지 않는 도전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 “46년 노래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해본 건 처음이야.” ‘골든걸스’에서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온 마음을 다해 부르고 내려온 인순이가 한 말이다. 46년 차, 66세의 가수 인순이의 말처럼 당신의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가능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베베스킨 라이프’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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