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LG트윈스가 29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유년 시절부터 트윈스 팬이었던 파트너는 마지막 아웃을 잡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에도 참는 듯하더니 시리즈 MVP로 선정된 오지환 선수의 인터뷰 때는 울컥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2022년부터 주장을 맡고 있는 오지환 선수는 2009년 입단 이래 15년 동안 팀을 떠난 적이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그런 그의 별명은 ‘오지배’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뛰어난 타격, 혹은 수비실책으로 팀이 잘할 때나 못할 때나 게임을 지배하는 자라는 의미로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한 별명이다. 그래서 경기 때마다 팬들에게 극찬을 받기도, 악평과 악플에 수없이 시달리기도 했다. 실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프로선수의 숙명이고 승부의 세계라지만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별명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시절 그의 존재를 처음 알았는데, 그 후로 10여 년간 여러 우여곡절 -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병역논란 등 - 을 겪고, 승리의 문턱에서 여러 번 좌절을 겪은 끝에 주장으로서 팀이 염원하던 우승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근의 상담사례가 떠올라 새삼 리더십과 팀워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전 지인인 J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팀원 시절부터 두각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던 회사 후배가 팀장으로 승진한 후에도 눈에 띄게 활약하는 반면, 그 팀의 팀원들은 계속해서 나가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젊은 직원이 공황장애를 호소하여 회사에서 병가를 주었는데 끝내 복귀하지 못하고 퇴직을 했고, 그 후임으로 온 경력 직원 역시 6개월 만에 비슷한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였다. 회사 인사팀에서는 이 두 번째 직원의 사직을 만류하며 원하는 부서로 전보발령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 직원이 희망한 팀이 자기 팀이었던 모양이다.
오버티오로 새로운 직원을 받아들일지 말지,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이고 본인의 팀에서는 잘 적응할지는 둘째 문제였다. J의 더 큰 고민은 후배 팀장이 맡고 있는 팀의 상황과 이를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회사에 있었다. 반복되는 양상이 알쓸인잡을 통해 거론되었던 ‘직장 내 괴롭힘① 상습적인 폭언을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나, ‘직장 내 괴롭힘③ 팀장의 잘 좀 하자는 말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의 사례와 너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J에게 해 줄 수 있는 답변은 뻔하다. 하나,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신고할 수 있다는 점과 둘, 괴롭힘이 인정되려면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어선 지시나 지적, 인격적인 모욕감을 주는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증빙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마 J의 회사 HR부서에서도 사직자 면담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상황을 알았을 테고 나름의 방안으로 부서 분리를 시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앞서 퇴사한 직원과 이 직원이 연달아 노동부나 외부채널을 통해 괴롭힘 신고를 한다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 점 때문에 괴롭힘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J의 후배 사례처럼 과거 잘나가고 유능했던 팀원들은 막상 팀장이 되었을 때 팀원들에게 좋은 리더로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스스로 팀워크를 깨는 주범이 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이들의 더 큰 문제는 ‘내가 잘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인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일을 못 해 본 적도 없고 언제나 인정받으며 조직생활을 해 왔으니 당연히 리더로서, 팀장으로서도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하면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자기확신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이게 왜 안돼?” “이것도 어렵고 힘들면 회사 왜 다녀?” 같은 말을 서슴없이 뱉는다. 상처 주기 위함이 아니라 못 해본 적이 없어서,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진심으로 의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겪고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의 감정에서 스스로 일어선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단순히 머릿속의 지식이 아닌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갖는다. 무작정 앞만 보고 뛰기보다는 팀원을 믿고 기다려 주며, 나 때의 자랑을 늘어놓기보다는 후배들이 겪는 실패나 좌절에 공감한다. ‘내가 해 봐서 잘 아는데’ 가 아니라 ‘나도 욕먹어 봐서 그 마음 아는데 과거의 나에 비하면 더 잘하고 있다’며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독이는 방법도 안다. 필요하면 서슴없이 팀원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본인은 조연의 자리로 내려와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내가 아니라 ‘팀’을 승리로 이끈다.
잇따른 팀원의 사직과 이탈이 J의 스마트한 후배에게 팀장으로서 뼈 아픈 첫 실패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누구도 성장할 수 없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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