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벅스 음료팀의 달력은 남들보다 빠르게 넘겨진다. 2023년 연말을 앞두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2024년 달력을 펼친 지가 한참이다. 한 개의 메뉴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을 훌쩍 넘기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음료팀은 “메뉴 개발이 보통 출시 1년 전부터 시작되다 보니 우리는 2024년도를 한창 달려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메뉴 출시 전 수십 번의 내부 품평, 내·외부 패널단 의견으로 보완
스타벅스 음료팀에는 신메뉴 개발을 담당하는 파트너가 총 6명 있다. 3명은 코어(상시판매) 메뉴를, 나머지 3명은 프로모션 메뉴를 개발한다. 이들이 한 해 동안 만드는 신메뉴는 약 200개에 달한다. 물론 모든 메뉴가 메뉴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품평을 여러 단계 거쳐 살아남은 90여 개의 메뉴만이 고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세나·이범식 치프파트너와 허슬아 파트너는 스타벅스의 코어 메뉴를 책임지는 베테랑 개발자들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이들과 함께 각종 프로모션 및 스페셜 매장 음료 기획 등을 담당한 임경화 파트너도 함께했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한국바리스타챔피언쉽 1위 경력을 가졌다. 씨쏠트 카라멜 콜드브루, 이천 햅쌀 라떼 등을 개발했다. 이범식 치프파트너는 캐모마일 릴렉서, 스타벅스 클래식 밀크 티를 만들었고, 허슬아 파트너는 딸기 딜라이트 요거트 블렌디드, 스타벅스 상생음료 개발을 담당했다. 매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가 음료팀에 지원해 오게 된 임경화 파트너는 딸기 프로모션, 오텀 프로모션 등 스타벅스의 인기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한 개의 메뉴가 고객 앞에 출시되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하다. 일단 새 음료 콘셉트를 정하기 위한 개발자들의 아이디어 회의가 시작된다. 메뉴에 어울리는 원부재료 활용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고 다양한 레시피를 고민한다. 까다로운 품평 과정도 여러 단계 거쳐야 한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R&D 개발자끼리의 품평 외 팀 전체, 담당, 리더십 품평 등을 거친다”며 “품평 단계에서 계속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전했다.
출시가 결정된 제품은 패널단의 의견을 받아 한 번 더 보완 작업을 갖는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이전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스타벅스 직원을 대상으로 한 내부 패널단만 운영했다. 하지만 직원들로만 운영하니 호의적인 평이 많다는 지적이 있어서, 더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일반 고객으로 이뤄진 외부 패널단을 추가했다”며 “현재 내부 패널단은 70명, 외부 패널단은 100명 정도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매장의 파트너에게 제조 방법을 전수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메뉴 교육을 하는 것도 개발자의 영역이다. 보통 새 메뉴가 나오면 제조 방법을 촬영한 동영상을 매장에 전달한다”며 “한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특화 메뉴의 경우에는 직접 매장에 나가 교육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썼던 원료도 다시보기, 동네 전설까지 꼼꼼히 찾아봐
최근 음료팀은 신메뉴 교육을 위해 제주도 출장을 다녀왔다.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R점 파트너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다. 10월 12일 스타벅스는 제주시에 약 1188㎡(360평) 규모의 더제주송당파크R점을 새로 열고 특화 음료를 출시했다. ‘제주 팔삭 셔벗 피지오’, ‘아이스크림 레드 애플 피지오’, ‘클래식 밀크티 블렌디드’ 등 총 9개로 모두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임경화 파트너는 “단기간에 많은 메뉴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인기 메뉴를 만든 베테랑 개발자들이지만 이번 제주 송당 특화 음료 개발은 유독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한다. 이미 제주 지역 한정으로 판매되는 특화 음료들이 있는 상황에서 제주 느낌을 담은 또 다른 새 메뉴를 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경화 파트너는 “처음에는 음료 콘셉트를 ‘돌’로 정하고 흑임자를 사용한 메뉴를 개발해볼까도 고민했다. 한라봉이나 천혜향, 청보리, 키위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떠올렸다”며 “하지만 모두 너무 익숙한 재료라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다가 팔삭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감귤류의 하나인 팔삭은 신맛, 쓴맛, 단맛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의 과일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제주 지역에서 재배해 ‘제주의 자몽’이라 불린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팔삭을 제품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도 메뉴를 만들 때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시트러스 계열 제품을 개발할 때 팔삭이 들어갔다”며 “차별화된 재료를 찾아보자는 얘기가 나와 원료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던 중 팔삭을 발견했다. 제주도에서는 흔한 과일인데 고객들에게 낯설다는 점에 착안해 주재료로 활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수십 개의 재료를 분석하고 조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을 꼼꼼히 분석하는 일도 더해졌다. 임경화 파트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제주 송당 지역의 전설까지 찾아봤다. 주변 상권도 찾아보며 이 상권에서는 어떤 메뉴, 콘셉트가 어울릴지 등도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만든 메뉴가 고객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음료팀에게는 최고의 보상이다. 임경화 파트너는 “출시 전에는 특화 메뉴의 판매량이 하루 20~30잔 정도로 예상했는데 현재 배 이상으로 판매되고 있다”면서 “고객들이 좋아해주시는 것을 보니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특화 매장 한 곳에서만 판매하는 만큼 기존 메뉴와는 제조 방법에도 차이를 뒀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보통 프로모션 음료를 만들 때는 예쁜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만들기 쉽도록 심플한 레시피를 활용한다. 하지만 제주 송당 음료는 레시피가 다소 어렵더라도 비주얼을 더 예쁘게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셔벗도 들어가고, 보기 좋게 여러 토핑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음료팀이 메뉴 개발 과정에서 맛만큼이나 고려해야 할 점은 쉬운 레시피다. 일반 메뉴의 경우 매장에서 근무하는 파트너들이 가능한 제조하기 쉬운 레시피로 구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범석 치프파트너는 “운영팀에서 음료 만드는 난도를 점수로 환산한다. 기준 점수 이상(제조 방법이 어려울수록 점수가 낮다)이 되었을 때만 출시가 가능하다”며 “만들기 너무 어려운 메뉴는 출시가 안 된다. 정해진 기준 내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도 “파트너가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많이 고민한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점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라며 “파트너가 만들기 쉬워야 고객에게 추천도 많이 하기 때문에 판매도 더 잘된다”고 덧붙였다.
#고객들 새로운 시도 놀랍지만 “정해진 메뉴 레시피가 제일 맛있어”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만든 메뉴지만 예상과 다른 고객 반응에 당황할 때도 있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내부에서는 판매 수량이 높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메뉴가 잘 팔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말했다. 이범석 치프파트너 역시 “개발한 음료가 욕을 먹으면 가슴이 아프다”라며 아쉬워했다.
이세나 치프파트너는 “예전에는 메뉴를 개발할 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는 것을 참고해 선보였던 메뉴도 있다. 바닐라셰이크 위에 포테이토 토핑을 올리고 체다소스 드리즐을 더한 음료였다”며 “좋은 시도로 남았다. 요즘에는 안정적인 메뉴 중심으로 출시하는 분위기”라며 웃었다.
요즘은 음료팀보다 고객들이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분위기다. 스타벅스는 메뉴의 재료를 취향에 따라 빼거나 추가할 수 있는 커스텀 오더를 제공하는데, 이를 활용해 고객들이 만드는 갖가지 커스텀 레시피가 화제가 되고 있다. 허슬아 파트너는 “고객의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 놀랄 때가 많다”며 “국내 커피 시장이 커지며 고객들이 카페를 자주 다니다 보니 커스텀을 더욱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료팀도 자신만의 커스텀 방식이 있진 않을까. 대답은 모두 ‘노(No)’. 음료팀 전원은 “(음료팀에서) 만든 대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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