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노사관계에 대해 글을 쓰는 동안 관점이 한쪽으로 매우 치우쳐 있었음을 인정한다. 인사 실무자로서 일하며 깨달은 내용이나 비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이 코너 ‘알쓸인잡’의 기본 취지이지만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한 명으로서 그중에서도 특히 기혼의 여성 노동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
파업이나 태업 등 쟁의행위를 최소화하고 노동조합을 잘 관리하는 비법, 언제나 이기는 협상의 기술, 노동력을 최대 효율로 활용해 최고의 성과를 끌어내는 방법 같은 걸 기대했다면 인적자원관리와 관련된 경영학 전문 서적의 일독을 권한다. 피고용인이면서 때로는 고용자, 사용자의 대리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인사담당자들이 자기 내면의 인지부조화를 무릅쓰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에게 처음 호출됐을 때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사용자를 대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에 답하고 증빙자료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부담스러운 일이 바로 ‘위임장’을 쓰는 행위였다. 권리를 위임받은 순간 전지적 사용자 시점에서 회사를 방어할 책임과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에서든 애사심이나 충성심을 갖고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던 사람이다 보니 더욱 그렇기도 하다.
노사관계① 인사팀은 정말 사용자의 ‘앞잡이’일까 에서 인사담당자는 경영진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항변하긴 했지만, 솔직히 대리인이 된 그 순간만큼은 ‘앞잡이’가 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일 때문에 주어진 나의 역할이라고 해도 말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스스로가 박쥐 같단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확연히 드러난 노동 이슈나 안전관리 문제에 대해 ‘우선 검토해 보겠다, 경영자에 잘 전달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야 할 때, 성과가 안 나오는 프로젝트의 종료와 함께 계약직 직원에게 계약종료를 통보해야 할 때, 신고인(진정인 혹은 피해자)의 기대나 실무자로서의 예상보다 징계처분 수위가 약하게 나올 때가 그러했다.
또 한편으로는 경영자에게 부당한 근로조건이나 취업규칙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척 코스프레를 한다. 노동자 중심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노무사들의 도움을 받아 판례나 증빙자료를 준비하고, 닥치지 않을 먼 미래의 리스크 요인에 대해 소심하면서도 은근하게 위협을 해 본다.
이럴 때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비법이라면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보다는 다소 어벙하게, 그리고 보고 대상을 올려 치면서 말한다는 점이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이런 추세랍니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런 판례가 최근에 있었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쿠션어를 사용한다. 또 ‘소탐대실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직을 이끄는 것이 당신의 리더십 아니겠습니까.’ 라며 적당히 아부하기도 한다. 얕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는 편이다.
동일 사업장 내에 노조가 여럿이니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지 들어주고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상대방에게 잘 포장해서 전달도 해야 한다. 가끔은 어느 특정 편에 서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강약약강이 아닌, 강강약약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약자나 소수 쪽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어쩌면 그 가치관 하나로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며 일하더라도 자괴감이 덜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이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인사노무 부서이다. 신고인과 피신고인, 진정인과 피진정인, 피해자와 가해자, 고용주와 노동조합, 정규직과 계약직, 관리자와 사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자리에 나를,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를 대입해 보기도 하고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간극을 줄여보고자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것이 중간의 경계에 서서 중재하는 이들의 역할이고 중심을 잃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나름의 생존비법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알쓸인잡] 노사관계④ 성평등지수 1위 아이슬란드의 '여성 총파업'을 보며
·
[알쓸인잡] 노사관계③ 복수노조 갈등, 다수가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
[알쓸인잡] 노사관계② 회사에서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방법
·
[알쓸인잡] 노사관계① 인사팀은 정말 사용자의 '앞잡이'일까
·
[알쓸인잡] 인간관계⑥ '사이다' 같았던 직설화법 선배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