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건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비건 프랜차이즈 식당도 늘었다. 9월 신세계푸드는 삼성동 코엑스에 비건 식당 ‘유아왓유잇’을 오픈했다. 농심의 비건파인다이닝 ‘포리스트 키친’이나 풀무원의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는 이미 유명하다. 비건 식당 인기에 힘입은 풀무원은 3월 용산구 용산아이파크몰에 2호점을 오픈했다. CJ제일제당 등 식품 업계도 ‘비건 제품’ 라인을 늘리고 있다. 11월 1일 도시락 프랜차이즈 한솥은 영국비건협회 인증을 받은 ‘식물성 볶음밥’ 2종을 출시했다.
기업들의 ‘비건 열풍’은 식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장품 업계도 비건 인증을 받은 신상품을 내놓거나 기존 제품을 비건으로 리뉴얼 하는 추세다. 오히려 식품보다 화장품, 의약외품 등에서 ‘비건 인증’이 흔해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최근 아모레퍼시픽, 유한양행 등은 비건 화장품 신제품을 선보였다.
가치소비가 늘면서 국내 비건 시장이 다각도로 커지는 데 반해, 비건 제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소비자들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해진 비건 인증 절차가 없기 때문에 진짜 비건이 아니더라도 ‘비건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다는 폭로도 나온다.
#너도나도 ‘비건 인증’ 받았다는데 믿을 수 있을까
비건 제품이 늘어남에 따라 ‘비건 광고’도 증가하고 있다. 어느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다든가, 전 성분이 비건이라고 광고하는 식이다.
문제는 비건 인증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다. 국내 비건 인증기관은 모두 민간 기관인데, ‘비건 인증’은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세운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인증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건 인증기관이라고 알려진 한국비건인증원, 비건표준인증원, 국제지속가능인증원, 비건소사이어티(영국비건협회), 이브비건(프랑스비건협회) 등은 모두 민간 기관이다. 식약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은 인증 기준이나 절차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화장품 표시·광고를 위한 인증·보증기관’으로 한국비건인증원을 지정했지만, 이는 화장품에만 해당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 A 씨는 “해외 수출까지 고려해 해외 인증기관 등 신뢰성이 있다고 알려진 기관에서 인증 받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다만 국내는 크게 규제가 없다 보니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인증 마크를 표기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인증기관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식약처 고시상 국제기구로부터 승인을 받거나 식약처 인증을 받아야 화장품 광고가 가능한데, 식약처에서 이를 눈감아준다는 것이다. 인증기관 관계자 B 씨는 “식약처 고시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인증기관이 발급하는 비건 마크는 화장품에 쓸 수 없는데도 식약처가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가이드라인 나왔지만 법적기준은 ‘아직’
화장품 광고와 달리 식품 광고는 식약처에서 인증기관을 별도 고시하지 않는다. 이는 2019년부터 시행된 조치로, 식품 표시· 광고는 내용을 증명하면 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광고는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명확하게 그 내용을 실증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광고를 하도록 돼 있다. 만약 광고가 사실과 다를 경우 법률에 의거, 처벌 받을 수 있다. 다만 식약처에서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인증기관은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올 3월 ‘식품의 비건(vegan)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전까지는 ‘비건’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동물성 원재료’가 모든 단계에서 포함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식품을 ‘비건’이라고 정의했다. 또 표시 광고는 비건 인증을 받지 않더라도 ‘비건’이라고 광고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다만 식약처가 공개한 가이드라인은 단순 정보 제공 목적이며, 법적 기준을 고시한 건 아니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부처도 비건 인증 제도 정립에 대해선 검토한 바 없다고 말한다.
민간 인증기관 관계자 C 씨는 “인증제도가 법제화된 게 아니다 보니까 비건 인증 절차를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비건이라고 광고하지만 실질적으로 비건이 아닌 경우도 있다. 절차에 대한 기준도 없다. 현재는 해외에서 어떤 기준이 생기면 그걸 쫓아가는 수준이다.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은 영국, 프랑스 등 해외 기관에서 인증받거나 기준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등 일부 나라는 인증을 법제화하려고 논의하고 있다. 해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비건 수요가 점점 증가하기 때문에 인증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비건 인증을 받았더라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4년째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는 소비자 D 씨는 “비건이라고 광고해서 구매한 제품이 실제로 아무런 인증도 받지 않은 제품일 때도 있었다. 또 비건 인증 마크가 있어서 구매했는데 교차 오염(동물성 식품을 제조한 설비에서 생산) 가능성이 표기돼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식품 업계 관계자 E 씨는 “대부분의 비건 인증기관은 모두 ‘서류 중심’이다. 소비자 신뢰성을 위해 인증 마크를 획득하긴 하지만, 인증된 모든 제품이 실제로 비건이냐 하면 확답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비건 인증기관마다 인증 절차는 제각각이다. 식약처도 명확한 인증 기준을 내놓지 않았다. 인증기관은 대부분 서류 검토, 동물성 유전자 검사 등의 절차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하는데, 일부 기관은 공장 등 현장심사도 진행한다.
국제기관으로부터 공인을 받았다는 인증기관 관계자 F 씨는 “비건 여부를 알기 위해선 동물 DNA 분석이 필수다. 그런데 이 절차를 하지 않는 기관들도 있다. 또 교차 오염이 되면 비건이라고 할 수 없는데, 한국 제품들은 대부분 비건 인증을 받더라도 ‘교차 오염’ 가능성을 표기한다. 현장심사를 하는 인증기관도 굉장히 드물다. 형식적인 서류 검토 후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비건 시장이 커진 만큼 비건 인증 제도 정립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인된 통계도 없다. 한 민간단체는 올해 비건 인구가 250만 명이라고 추정했지만, 통계청에서 나온 관련 통계는 없다.
2021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비건)’ 자료에서 “국내 비건식품시장 규모는 비건식품의 기준이 명확히 확립되지 않았고, 유전자 조작을 기반으로 하거나 육가공 생산라인과 분리되지 않은 식품을 완벽히 분리해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앞서 E 씨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국내 비건 시장이 커지고 있는 건 명확하다. 대부분 기업들도 비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만큼 제도가 명확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정부의 명확한 관리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증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소비자 선택을 넓히고, 피해와 혼란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관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소한 공신력 있는 단체가 인증 절차를 진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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