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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금 받고 잠적" 예비부부 울리는 웨딩업계 사기 주의보

헤어변형업체에 260여 명 피해…컨설팅업체·스튜디오·드레스숍 등 불공정 관행 '고질적'

2023.11.06(Mon) 16:55:11

[비즈한국] 최근 예비 신혼부부를 노린 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웨딩컨설팅부터 예복, 영상업체 등 분야도 다양하다.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한 ‘웨딩 사기’가 되레 늘어나는 배경에는 업계의 부당한 관행이 자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 특성상 재구매하는 사례는 적고 비용 ‘프리미엄’과 탈세가 만연한 상황에서 경험이 부족한 예비부부가 쉽게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웨딩 촬영용 헤어 업체 대표가 예약금 수천만 원을 챙긴 뒤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 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 피해 내용을 공유하는 단체 대화방에는 26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였다. 실제 촬영일보다 수개월 앞서 예약한 데다 선결제 할인으로 현금 완납을 유도한 탓에 피해가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웨딩업체가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선입금을 요구한 후 잠적하는 사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서울 시내 드레스 업체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연합뉴스

 

#수십만 원 선납했는데 업체 대표 잠적​

 

내년 초 결혼을 앞둔 이 아무개 씨(30)는 얼마 전 ‘헤어 변형’을 담당하는 스태프 없이 스튜디오 웨딩 촬영을 마쳐야 했다. 후기가 좋은 유명 1인숍에서 두 달 전 미리 예약했지만 촬영 당일인 10월 30일 현장에 ‘노쇼’했기 때문이다. 헤어 변형은 촬영 중 꽃 장식 같은 액세서리를 추가하거나 다른 스타일로 연출하는 등 신부와 신랑의 머리 모양을 손봐주는 서비스다. 최근 스튜디오 촬영 시 필수 옵션으로 떠오르며 기본 헤어 메이크업과 별도로 이 서비스를 계약하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이 씨는 “업체에 돈은 완불한 상태였는데 촬영 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경력이 많은 ‘헬퍼(옷매무새 등을 가다듬어주는 직원)’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봐줬지만, 한 차례 묶은 머리로 변경하는 게 전부라 아쉬움이 컸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혼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을 잡아놓고 프리랜서나 알바를 그때그때 고용해 촬영 현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업체를 추천해준 지인도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잠적한 이 업체 대표를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이 현재 일산동부경찰서와 인천 서부경찰서, 서울 종암경찰서 등 수도권 지역 경찰서 여러 곳에 접수되었다. 피해금액은 대부분 28만 원부터 40만 원 후반으로, 피해규모는 7000만 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이 예약 당시 안내 받았던 결제 규정(위)과 피해자 모임 단체 채팅방. 사진=독자 제공


‘선결제 이벤트’로 예약 시점에 비용을 먼저 지불한 사례가 많아 피해를 더욱 키웠다. 11월 말 촬영을 준비 중이던 A 씨는 웨딩 정보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을 통해 이 사태를 접했다. A 씨는 “비교하던 3곳 중 유일하게 예약이 가능해 결정한 곳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계약금만 걸어놓고 고민 후 결정하려고 했는데, 완불하면 2만 원 할인에 남자 헤어도 1회 변형이 가능하다고 해 덜컥 선납한 게 문제였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와 A 씨는 예약 당시 각각 33만 원, 48만 원을 업체에 송금했다.

 

현재 관련 대화방에는 입금 내역을 인증한 피해자 260여 명이 모여 사기 피해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이 씨와 A 씨 모두 경찰 신고를 진행할 계획이다.

 

#선금·현금결제 요구하면서 계약서·현금영수증은 발급 안 돼

 

예비 신랑신부가 “믿고 계약했는데 업체와 연락이 두절됐다”며 고발에 나서는 사례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해 8월 무렵에는 웨딩스튜디오 대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진이나 액자, 앨범 등을 서비스로 제공하겠다고 속여 계약금을 받은 뒤 잠적한 사건이 있었다. 이 스튜디오 대표는 총 13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달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웨딩컨설팅(결혼준비대행서비스)을 이용한 예비부부가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받거나, 촬영 앨범을 받지 못하는 등 계약 불이행을 겪는 경우도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결혼 준비 대행 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은 7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6% 상승했다.

 

드레스 촬영이 불가한 샵에 방문할 때 예비부부가 기록을 위해 지참하는 드레스 도안. 사진=독자 제공

 

여기에는 웨딩산업의 고질적인 관행과 소비자-업체 간 정보 불균형 문제가 자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십만 원 이상이 오가는 계약임에도 소규모 업체라는 이유로 계약서조차 없거나 ‘드레스 도안’ 지참, 현금영수증 미발급 등 서비스 내용과 계약 조건이 업체 편의에 따라 결정돼 소비자들이 부당함을 감수하는 게 당연시된다는 것이다.

 

내년 6월 예식을 준비하고 있는 배 아무개 씨(28)는 “드레스숍 투어로 3곳을 방문했는데 업체마다 피팅비 5만 원을 반드시 현금으로 결제해야 했다. 또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고 안내를 받고 암묵적인 룰이라고 해서 일일이 그림으로 기록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기조차 곤란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튜디오 촬영의 경우 헬퍼 직원에게 35만 원을 봉투에 담아 전달했는데도 촬영이 끝나고선 관행이라며 택시비를 달라거나 숍까지 데려다주기를 요구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배 씨는 앞서 웨딩 플래너로부터 드레스투어 때 지불하는 피팅비는 각 업체에서 현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하지만 헬퍼 비용은 불가하다고 안내 받았다.

 

서울 시내 드레스 업체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연합뉴스


웨딩의 가장 기본인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추가 서비스는 비용 절감을 위해 소규모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특히 계약 등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측면이 있다. 이 씨는 “완불하면 계약서라도 보내주는 게 맞는데 헤어 변형 업체는 그런 조치도 없었고 ‘어떻게 하실 거냐, 빨리 결정해야 일정 확보가 된다’고 재촉했다”며 “결혼 준비를 하면서 수고비 명목의 팁, 선납 등 예비부부들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는 행태가 만연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결혼은 여러 번 경험하는 행사가 아니다 보니 구매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여지가 크다. 온라인, SNS 등을 통한 계약이기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웨딩업계에 불공정한 관행이 오랫동안 자리 잡은 만큼 관계 기관이 사기를 방지할 기준 마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더불어 소비자들도 온라인상에 공유되는 정보 역시 가짜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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