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정수진의 계정공유] 씁쓸한 현실 잊게 만드는 단순 통쾌한 웃음, '힘쎈여자 강남순'

만화처럼 황당무계한 설정의 스핀오프작…단순하고 유치하지만 재미는 보장

2023.11.06(Mon) 13:47:29

[비즈한국] ‘무빙’과 ‘힙하게’에 이어 ‘힘쎈여자 강남순’까지, 드라마에서 세상을 구하는 것은 온통 초능력자다. 거침없이 하늘을 날아오르고, 신체를 만지는 것만으로 과거를 알 수 있고, 엄청난 괴력으로 악당들을 제압하는 초능력자들. 그들의 화끈한 활약을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 어려운 것 없어 뵌다. 그런데, 왜 이렇게 초능력자들이 판을 치는 걸까? 지금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진정 초능력뿐일까?

 

어린 시절 아빠와 몽골에 여행 왔다가 헤어져 몽골에서 자라게 된 강남순. 유전적으로 타고난 신체 능력에,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라며 평균 3.0 이상의 시력을 가졌다는 몽골인의 특성이 더해지며 그야말로 칭기즈칸처럼 씩씩하게 자란다. 사진=JTBC 제공

 

‘힘쎈여자 강남순’은 모계 유전으로 괴력이 이어진다는 설정을 선보인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작으로, 도봉순(박보영)과 친척 관계인 길중간(김해숙)과 그의 딸 황금주(김정은), 그리고 황금주의 딸 강남순(이유미)으로 이어지는 3대 모녀가 주인공이다. 대대로 무지막지할 정도로 힘이 센 유전자를 물려받은 여성들이, 그 힘으로 마약 범죄 등 각종 사회악을 소탕한다는 단순한 스토리다. 

 

이들의 힘이 어느 정도로 세냐면 그야말로 만화 같다. 제어가 불가능한 비행기를 맨손으로 멈춰 세울 정도의 괴력에, 마음에 둔 남자가 집에서 어떤 속옷을 입고 있는지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시력에, 화재가 난 고층 높이의 건물쯤은 거뜬히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의 점프력과 스피드를 지녔다. 

 

황당무계할 정도로 힘이 센 이 집안 여자들은 돈도 많다. 할머니 길중간은 자신의 괴력으로 마장동을 평정하며 정육업계 큰손으로 돈을 벌었고, 돈에 대한 감이 남다른 황금주는 길중간에게 대학등록금으로 받은 1억 원을 종잣돈 삼아 몇 년 안에 100억 원을 벌어들이더니, 손닿는 곳마다 황금을 낳는 ‘미다스의 손’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현금이 제일 많은 거부가 된다.

 

강남순의 엄마인 황금주는 이름처럼 돈에 대한 감이 남다른 인물이다. 길중간의 돈을 종잣돈 삼아 대한민국 제일의 현금 부자로 거듭난 황금주는 타고난 괴력과 어마어마한 돈을 앞세워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위해 나선다. 사진=JTBC 제공

 

그런데 심지어 이들은 정의롭기까지 하다. 나쁜 일에 능력을 쓰면 힘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황금주는 어린 딸 강남순을 잃어버린 뒤부터 세상에 선한 일을 하면 누군가도 자기 딸에게 베풀 것이란 믿음으로 선행을 넘어 ‘배트맨’에 빙의된 듯 적극적으로 사회악을 소탕하려 든다. 걸핏하면 한국의 자본주의를 말하는 황금주가 “돈 많은 사람들만 잘사는 세상 말고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세상”을 외치는 게 형용모순으로 느껴지기는 하는데, 심각할 필요는 없다. 이 드라마의 기본은 판타지니까.

 

그리하여 엄청난 괴력과 엄청난 자본에, 어린 시절 광활한 몽골의 자연에서 칭기즈칸처럼 씩씩하게 자란 강남순의 순수한 정의가 가세하며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지역이 도봉구에서 강남구로 온 만큼 범죄 성향도 달라졌는데, 그 대상은 치명적인 신종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커머스 유통업체 두고의 대표 류시오(변우석)로 집중된다. 여기에 공항에서부터 강남순과 인연을 맺은 마약수사계 특수팀 형사 강희식(옹성우)이 힘을 합하면서 동시에 강남순과 러브라인을 맺는다.

 

강남순과 얽힌 마약수사계 형사 강희식. 강남순의 괴력을 경험하고 남성과 여성의 전복에 잠시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엄마 황금주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남순이 세상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JTBC 제공

 

커머스 유통업체 두고 대표 류시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에 서고자 더 큰 돈, 더 큰 세력을 원한다. 불행히도 그 방법이 신종 마약이라는 점. 드라마 ‘청춘기록’, 영화 ‘20세기 소녀’ ‘소울메이트’ 등에서 첫사랑의 표상처럼 나왔던 변우석의 빌런 변신이 눈에 띈다. 사진=JTBC 제공

 

‘힘쎈여자 강남순’을 보고 있으면 재미나기도 하지만 헛웃음이 나올 때도 많다. 이 모든 것이 판타지이고, 판타지 중에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설정이라는 것을 얼른 받아들여야 헛웃음을 넘어 ‘찐 웃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 어렵진 않다. 마음을 놓자. 길중간-황금주-강남순 3대 모녀의 괴력으로 어릴 적에나 꿈꿨던 모든 유치찬란한 상상을 구현하는 것을 마음껏 즐겨보자.

 

눈만 뜨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기가 막힌 세상에서, 힘(과 돈)으로 모든 것이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는 설정은 보는 순간이나마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다. ‘갑질’하는 사람이나, 대놓고 무례하고 구는 사람,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 등 세상의 모든 짜증나는 인간을 주먹 한 방으로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다는 시원함이 ‘힘쎈여자 강남순’엔 존재한다. 반대로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억대의 봉투를 턱턱 건넬 수 있는 여유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강남순 집안의 괴력은 대대로 모계로 이어지는데, 반대급부인지 이 집안 남성들은 하나같이 허약하고 빌빌대는 경향이 있다. 황금주의 동생 황금동이나 강남순의 쌍둥이 동생 강남인은 물론, 강남순의 아빠 강봉고, 길중간과 러브라인으로 얽히는 바리스타 서준희까지 힘은 물론 존재감에서도 밀린다. 사진=JTBC 제공

 

 

나쁜 일에는 괴력을 쓸 수 없는 강남순 집안의 여성들. 강남순은 여자라고 무시하고,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유통업체 배달 기사라고 무시하는 세상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곤 한다. 사진=JTBC 제공

나쁜 일에는 괴력을 쓸 수 없는 강남순 집안의 여성들. 강남순은 여자라고 무시하고,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유통업체 배달 기사라고 무시하는 세상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곤 한다. 사진=JTBC 제공

 

현실을 꼬집는 내용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입만 열면 한국의 자본주의를 말하는 황금주가 있지만, 강희식처럼 “너희 어머니같이 돈 많은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누군가는 돈이 정말 없어야 그게 가능해. 자본주의가 도박판 같은 거라서 판돈은 정해져 있어. 누군가는 잃어야 누군가 따지”라고 꼬집어 주기도 한다.

 

강남순이 당한 숙박 사기는 물론, 전세 사기로 노숙자가 된 노선생(경리)과 경험은 많지만 무리한 코인 투자로 노숙자가 된 지현수(주우재) 커플도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돈 많은 강남 사모님들에게 접근해 큰돈을 의뢰받는 수상쩍은 인물 브래드 송(아키라)에 대해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큰돈을 벌어주기에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는 강남 사모님들의 모습을 보면 최근 있었던 전청조 사기 사건이 어떻게 현실에서 가능한지 깨닫게 해준다. 

 

‘힘쎈여자 강남순’을 보는 이유는 확실하다. 유치하지만 현실에선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초능력으로 세상을 구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나와 가족, 친구와 이웃을 구할 수 있다는 명확함이 좋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런 ‘사이다성’ 설정의 초능력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걸까 뒷맛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이런 낙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나!

 

‘힘쎈여자 강남순’에는 여러 조연과 특별출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우재와 경리의 노숙자 연기를 보는 재미에, ‘힘쎈여자 도봉순’의 주인공이었던 박보영과 박형식의 특별출연은 물론, 코미디언 김해준과 이창호 등이 출연해 재미를 더했다. 사진=JTBC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이두나!', 수지를 위한 헌상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 [정수진의 계정공유] 있어 보이긴 하는데 또렷이 각인되진 않는, '도적: 칼의 소리'
· [정수진의 계정공유] 변희봉이란 고목에 꽃을 피운 '플란다스의 개'
· [정수진의 계정공유] '너의 시간 속으로', 원작 신드롬 이어받기엔 '상친자'가 많다
· [정수진의 계정공유] '잔혹한 인턴' 0.78이란 숫자가 합당한 대한민국에 고하는 드라마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