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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10년 넘게 '보라매' 발목 잡은 국방연구원, 이제는 KF-21 도울 때

초도 양산 물량 줄이는 건 사업 좌초시키는 것, 국산 전투기 성공 위한 선택하길

2023.11.03(Fri) 15:44:04

[비즈한국] 얼마 전 ‘서울 아덱스(ADEX) 2023’에서 화려하게 상공을 누비면서 경탄과 찬사를 한 몸에 받은 KF-21이 ‘추락 위기’에 빠졌다. 합리적인 국방정책 수립과 의사결정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 국산 전투기를 추락시키려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그 기관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다. 사실 국방사업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 특히 KF-21 보라매 전투기의 사업 진행을 심도 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올 게 왔구나’ 하는 심정일 것이다. KIDA​가 20년간 집요하게 KF-21 사업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제5차 국방위원회에서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에게 KF-21의 현황을 질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날인 10월 30일 KIDA에서 KF-21 사업 타당성 최종 토론회가 있었고, KIDA가 KF-21의 초도 양산 물량 40대를 20대로 축소하자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엄동환 방사청장은 안 의원의 질문에 “KF-21은 현재 잠정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기술적 완성도가 미성숙하다고 KIDA의 담당 연구자가 평가했다”고 답변했다. 연구자가 보기에 KF-21은 개발 진행에 문제가 많고, 블록 1도 제대로 끝마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 

 

사실 ADEX에서 KF-21이 멋지게 하늘을 날 때부터 지상에서는 불안한 루머들이 넘실거렸다. KF-21의 막대한 개발비가 현재 경제 상황과 R&D를 축소하는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다는 비교적 ‘뜬구름 잡는’ 소문부터, 5월부터 진행된 KIDA의 사업타당성 조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KF-21 사업 타당성과 내년도 예산을 둘러싼 논쟁은 예견된 일이었다. 사업 타당성 조사가 늦게 시작되고 KIDA가 연구 결과를 내년도 예산 반영이 어려운 시점이 돼서야 내놓은 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KIDA가 의도적으로 늦췄다는 의심을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즉 명목상으론 단순한 ‘선행 양산 연구’ 결과지만 궁극적으로 ‘KF-21 폐지’라는 노림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연했을 거라는 의심이다. 

 

만약 2주 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ADEX에 와 KF-21의 비행을 봤을 리도 없고, 여러 국가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를 찾아 KF-21의 수출 상담을 진행했을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KIDA는 KF-21 사업을 아예 좌초시킬 수 있는, 초도양산 물량 축소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려고 할까? 그것은 KIDA가 맡은 ‘합리적인 국방정책 수립 및 의사결정’이라는 것 자체가 사업의 리스크를 부각하고 사업 진행을 막는 것이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하는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KIDA는 ​국내 연구개발 사업과 대형 무기 도입 사업에 인색하기로 악명 높다.

 

실제로 KIDA는 KF-21 보라매 전투기의 전신인 KF-X 사업을 그야말로 20년간 부정하고 반대해왔다. 2002년 KF-X 연구개발에 대한 논문이 최초로 출간된 이후, KF-21는 주요 사업 과정마다 KIDA의 사업 타당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6대의 시제기가 날고 있는 KF-21은 KIDA에겐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실패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도 KIDA가 KF-X에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자 제3의 연구기관에서 사업 타당성 평가를 거친 적이 있다. ​2015년 에는​KIDA의 주장에 동조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KIDA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KF-X 사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까지 한 바 있다. 

 

물론 정부 예산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국책 연구기관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관의 연구가 리스크를 오히려 키워 사업을 말 그대로 좌초시킬 선택을 주장하는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왜 KIDA의 초도 양산 20대 축소 주장이 사업의 리스크를 키우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책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 보자. KIDA는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보라매 사업의 타당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리스크를 줄여야 하고, 자신들의 판단과 대안이 경제성 있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당시에도 KIDA는 KF-X 보라매 사업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사업방향 전면 재검토와 계획 폐지를 주장했다. 그때 ‘개발비 과다 축소 의혹’을 제기하는 자료도 발간했다. 시험비행 횟수, 시제기 필요 대수, 중량 대비 비용을 고려했을 때 보라매 탐색개발 결과로 세운 개발계획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10년 전 KF-X의 예산을 몇 배 부풀린 KIDA의 연구 자료. 사진=김민석

 

그 주장의 근거에는 ‘선진 외국 항공업체’들이 계산한 개발비가 있었다. KIDA가 전투기를 만드는 해외 방위산업체에 KF-X 개발비를 계산해 받아보니, 2013년 기준으로 적으면 10조 원, 많으면 17조 원에서 19조 원이 들어가며, 이는 한국의 계획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지난 10년간 해외 전투기 가격이 40% 이상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을 KIDA가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 해외 항공우주 산업체들이 개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수조 원이 넘는 막대한 고객을 손절할 수도 있는 결정에 도움이 될 보고서를 KIDA에 줄 리가 없다. 게다가 KF-X의 과도한 개발비가 문제라면서 내세운 대안도 현시점에서는 정말 황당한 내용이었다. 당시 해외 항공업체들은 개발 리스크가 적은 자사 플랫폼(F-16, F/A-18 같은)의 개조 개발 방식(Variant, Derivative)을 선호하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 그 제안을 지금 완성된 KF-21과 비교하면 대당 가격과 개발비는 해외 지급 로열티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반면 전투기의 성능인 무장 탑재량, 엔진 출력, 기동성, 저피탐 능력은 해외 전투기가 KF-21보다 크게 떨어진다.

 

외국업체가 제안한 KF-X 모델과 실제 KF-21과의 디자인 비교. 사진=김민석 제공

 

해외 업체들이 제안한 개조 개발이라는 것도 실은 그들이 고려했다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포기한 것을 한국 돈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나온 ‘개조 개발 KF-X’가 원본보다 수직 꼬리날개가 하나 더 많다고 더 비싸게 팔 텐데, 수출이 가능할까? E/L(수출허가)과 가성비가 지금의 KF-21보다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KIDA의 과거 실수를 굳이 들춰내 KIDA의 주장이 무조건 틀린 것이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KIDA가 개발 리스크와 한국의 기술 수준을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것,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의지는 인정한다. 문제는 KIDA가 리스크를 줄이자는 초도 양산 축소가 오히려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운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 공군 조종사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조종사들은 ​F-4와 F-5의 설계수명을 넘겨서까지 혹사당하고 있다. KF-21이 나올 때까지 목숨 걸고 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은 리스크가 아닌가. 게다가 지금 F-4와 F-5가 추락 위험에도 임무에 투입되는 것은 KF-21이 개발 과정에서 기간을 어긴 것이 아니라, KIDA의 타당성 평가가 부정적이어서 사업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두 번째는 ‘비용 상승’과 ‘도산 리스크’다. 이미 한국항공우주산업(KAI)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정해진 물량을 조정할 경우 KF-21의 양산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부품 업체들은 공급이 줄어들어 도산 위기에 빠진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폴란드 수출 대박’으로 각광받는 K2 흑표 전차도 중간 양산계획 변경으로 인해 협력업체가 도산해 기술과 비용에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세 번째는 이번 초도 생산량 축소가 ​수출을 스스로 막는 ‘​자해행위’​라는 점이다. 정확히 이와 같은 이유로 실패한 전투기들이 있다. 프랑스의 라팔(Rafale) 전투기가 2002년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1) 사업에 도전할 때, 프랑스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라팔의 초도 생산량을 줄이고 무장 통합 예산을 거절했다. 라팔은 한국에 강력한 세일즈와 좋은 조건으로 합격 직전까지 갔으나, “프랑스 정부가 예산을 줄였으니, 한국 정부가 구매하면 옵션을 채워주겠다”는 제안에 한국은 구매를 거절했다.

 

2002년 한국 사업에서 탈락한 이후 ​라팔이 ​첫 수출에 성공하기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KF-21 보라매 역시 이번 KIDA의 주장대로 초도 양산 대수를 줄인다면, ‘생산 국가가 신뢰하지 못해서 예산이 깎인 전투기’ 혹은 ‘기능은 부족한데 가격은 비싼’ 전투기로 낙인 찍혀 첫 수출의 물꼬를 트기 어려울 것이다. KIDA는 왜 이런 리스크는 생각하지 않는가.

 

보는 눈이 많다. 사람들은 KIDA가 10년 넘게 KF-X 사업에 무슨 말과 대안을 제시했고, 그 대안과 분석이 합리적이었는지 기억하고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동안 알려진 내용과 발표된 내용이 너무 많다. KIDA와 국방부, 방사청과 국회,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성공과 최초 국산 전투기의 성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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