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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 걷어낸다" 17% 깎은 R&D 예산안엔 '졸속'의 흔적이…

세부분야·부문별 재정투입계획 없고 평가보고서도 빠져…정부 중점사업은 법안 통과 안 됐는데도 예산 배정

2023.11.02(Thu) 17:40:55

[비즈한국] 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서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전년 대비 5조 2000억 원이나 삭감해 논란이 일었다. 과학·환경·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한 데다, 학생연구원 등 많은 연구 인력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정부는 ‘누적된 비효율을 걷어내겠다’며 R&D 예산에 칼을 댔지만,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예산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절차 위반, 미흡한 근거, 불필요한 배정 등 감축안에도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31일 2024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R&D 예산, 질적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 시급” 강조

 

지난 1일 국회가 2024년 예산안 심사를 시작한 가운데 R&D 예산안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재정 정상화’를 걸고 긴축 재정에 나서면서, R&D 예산을 전년 대비 16.6%(31조 1000억 원→25조 9000억 원) 줄였다. 대학 재정지원 사업, 정책연구 사업 등 기존 R&D 사업을 일반재정사업(비 R&D)로 재분류하면서 일부 사업은 R&D 분야에서 아예 빠졌다.

 

R&D 예산안이 대폭 줄어든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다. 윤 대통령은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과학계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윤 대통령은 국회 심사 전날(10월 31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10조 원이나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R&D 예산 감축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제로베이스 발언 이후,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2024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R&D 투자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 도출에는 미흡했다”라며 “나눠먹기·관행적 지원 사업 등 비효율적인 R&D는 구조조정하고, 도전적·성과 창출형 R&D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립한 2024년 R&D 예산안은 손볼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R&D 예산을 무리하게 감축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선 정부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R&D 분야 재정지출 계획에 따르면 연평균 증가율은 0.4%에 그쳤다. 최근 4년간 증가율인 10.8%, 7.2%, 6.6%, 3.8%에서 급감한 수치다. 2024년 R&D 예산안이 2020년 본예산(24조 2000억 원)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그동안 수립한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정책의 일관성을 포기했지만 근거는 미흡했다. 기재부가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내 12대 분야 중 R&D 분야만 세부 분야 및 부문별 재정투입 계획을 포함하지 않고 발표한 것.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기재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기재부가 제출을 거부했다”라며 “2025~2027년 R&D 분야의 전체 규모만 설정했을 뿐 세부 분야별 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급하게 예산안을 재검토하면서 절차상의 문제도 생겼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수립한 R&D 투자계획에 큰 변동사항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변동 사항과 변동 요인, 향후 관리 계획 등에 대한 평가·분석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라며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변동된 부분과 이유 등의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재정법 제7조 제3항 제1호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에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제출할 때 전년도에 수립한 국가재정운용계획 대비 변동 사항, 변동 요인 및 관리계획 등에 대한 평가·분석보고서를 첨부해야 한다. 

 

앞서 R&D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예산 초안을 기재부에 전달하는 기한(6월 30일)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말에 따라 재검토에 나서면서, 법정 기한을 2개월 가까이 넘겨 과학기술기본법을 위반했다. 

 

#정부 중점 사업은 예산 증가, 기초 학문 연구기관은 고사 위기

 

예산 삭감으로 통폐합 혹은 조기 종료하는 R&D 사업이 267개에 달하는 가운데, 20년째 이어진 조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커졌다. ‘효율화’를 이유로 조기 종료 대상이 된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전략기술연구조사 사업’에는 ‘중소기업기술통계’ 지원이 포함돼 있다. 

 

중소기업 기술통계는 2003년부터 격년, 2013년부터 매년 시행하는 법정 조사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실태를 파악해, 중소기업의 기술 지원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다.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과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고, 기업의 투자·인력 현황이나 애로 사항 등을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2024년 예산안이 편성되지 않아 수행기관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어떻게 조사를 이어갈지 불투명하다. 

 

기획재정부가 전년 대비 16.6% 삭감한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안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과기부의 ‘민관협력 기반 ICT 스타트업 육성 사업’은 정부와 민간 기업이 협력하는 사업으로, 예산은 2023년 58억 원에서 2024년 4억 원으로 무려 93%나 감소했다. 지원 사업은 올해 29개에서 내년 10개로 줄었는데, 연구비 지원 단가가 2억 원에서 4000만 원으로 급감하면서 중소기업은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어렵게 됐다.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고사 위기도 커졌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연구하는 기관은 정부 출연 비율이 낮지만, 천문학 등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곳은 민간기업의 과제를 맡는 경우가 드물다.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연구비, 인건비 등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반면 현 정부의 중점 사업은 허점에도 예산이 배정됐다. “국내 연구진·자금 중심의 폐쇄적인 연구 체계가 문제”라며 확대한 국제협력 R&D 예산은 1조 8000억 원대로 늘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R&D 국제협력의 기본이 되는 시행령인 ‘국제과학기술협력 규정’에는 연구개발비 지급 및 사용, 연구개발 성과의 소유 및 관리, 기술료 징수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 관련 법안이 9월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를 넘지 못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핵심 원전 정책 중 하나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에는 2024년 예산 273억 7000만 원이 편성됐다. 전년 대비 약 243억 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그런데 이 사업의 세부 과제 중 하나는 올해 수행기관조차 정하지 못했는데도 2차 연구비 12억 1000만 원이 책정됐다. 

 

이처럼 졸속으로 삭감한 2024년 R&D 예산안을 향해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 노조 부위원장)는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 학계와 대화를 해야 했다.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협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방법으로 먼저 예산을 깎아놓고 통보했다”라며 “예산안을 보면 지금까지 해온 연구를 그대로 매몰시키는 배정도 있다. 연구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삭감한 탓이다. 기존 연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더 비효율적인 예산안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예산안 확정 후 더욱 거센 후폭풍이 남았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12월에 예산안이 확정되면 사업별로 예산을 삭감할 세부 과제도 최종적으로 정해진다”라며 “지금은 얼마나 예산이 줄었는지 현장에 있는 연구진이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예산을 깎인 실제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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