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하입 보이’, 아이유가 부르는 ‘큐피드’. 유튜브에 ‘인공지능(AI) 커버’를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이다. 이들의 조회수는 적게는 수만 회에서 많게는 수백만 회에 이른다. 국내 곡을 해외 가수가 부르거나, 가수가 고인인 경우에는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런데 댓글을 살펴보면 ‘윤리적으로 맞는 거냐’는 반응이 적지 않다. 생성형 AI를 통해 허락 없이 가수의 목소리로 음원을 만들고, 이를 대중이 소비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지적이다.
#미 음반산업협회 “생성형 AI, 훈련 과정에서 회원 동의 없이 저작권 침해”
이미지, 오디오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성형 AI는 예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튜브에 게시된 AI 커버 영상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브루노 마스의 하입 보이 커버 영상은 31일 오후 기준 조회수가 231만 회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분석업체 마켓닷어스에 따르면 전 세계 생성형 AI 음악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 2900만 달러(약 2050억 원)에 불과했지만 10년 뒤인 2032년에는 26억 6000만 달러(약 3조 5431억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음원의 원리는 간단하다. 아이유가 부르는 큐피드를 예시로 살펴보자. 먼저 기존에 발매된 아이유의 모든 노래들을 AI 딥러닝을 통해 학습을 시킨다. 그렇게 나온 아이유의 목소리 데이터값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특성을 추출한다. 마지막으로 큐피드 노래에 필터를 걸어 피프티피프티의 목소리를 아이유의 목소리로 바꾸면 완성이다. 피프티피프티의 목소리 데이터가 아이유의 목소리 데이터로 변환된 것이다.
하지만 AI 음원은 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4월 유명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와 드레이크의 신곡으로 알려진 ‘하트 온 마이 슬리브(Heart on my sleeve)’가 생성형 AI로 만들어 낸 가짜 노래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유니버설뮤직은 틱톡, 유튜브 등과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플랫폼을 대상으로 이 곡을 삭제하고 AI가 생성한 음악 사용을 중단하라는 경고문을 보냈다.
유니버설뮤직은 “생성형 AI가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가사, 음악을 흉내 낸 음악을 만들고, 생성형 AI가 훈련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수백만 개의 음원 데이터 가운데 자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노래가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음반산업협회도 미 무역대표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 생성형 AI가 훈련 과정에서 협회 회원의 동의 없이 음악을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I 음원, 부정경쟁방지법 및 민법상 제재 대상 될 수 있어
AI 음원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아이유가 부른 큐피드 음원의 경우 노래 원작자인 피프티피프티 측과 목소리의 주인인 아이유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 먼저 음원 멜로디의 경우, 저작권 표시를 제대로 했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드물게 음원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지만, 라이선스 표시를 제대로 한다면 음원 권리자에게 보상이 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소리와 관련된 권리다. 현행법상 목소리 자체는 저작권이 없다. 음성권으로 볼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이 담긴 목소리를 창작물로 인정하지 않기에, 이에 대한 권리는 아직 법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 경우 부정경쟁방지법과 민법상 규율이 가능하다. 법령에서는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갖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을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해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한다.
AI 음원은 널리 인식되는 가수의 음성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법령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 음원은 학습 받은 목소리를 재구성한 것으로, 가수가 직접 부른 게 아니어서 가수가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전문가는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언급하는 상업적인 활용이 없더라도 민법 원리에 따라 불법 행위로 규율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법제연구팀 관계자는 “민법 제751조(재산 이외의 손해의 배상)를 살펴보면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다”며 “포괄적으로 규정이 되어 있지만, 남의 것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가 있고, 그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엔터 업계 “명예 훼손 혹은 초상권 침해 시 제작물 삭제 요청”
다만 유명인의 인적 식별표지 무단사용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는 항목이 추가된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소속사에서 AI 음원에 문제를 제기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루에도 수없이 생성형 AI로 제작되는 음원과 이미지, 영상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법 시행 초기라 대응 전담 인력도 부족하다.
특허청이 6월 발표한 ‘2023년 퍼블리시티권 계약 및 침해 현황에 대한 업계 실태’ 조사에 따르면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경험한 기획사는 전체 응답 기획사의 8.6%에 달한다. 기획사들은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됐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64.6%)’이라는 응답을 가장 많이 했다. ‘손해액 산정기준 마련’(53.7%), ‘침해소송 진행’(46.3%) 등이 뒤를 이었다. 또 기획사 대부분(80.5%)이 사내 퍼블리시티권 전담 인력 부족, 침해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응답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은 개정 법령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럽다면서도, 명예 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법적인 대응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통해 아티스트 이미지나 음원이 제작되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아티스트의 명예 훼손 혹은 초상권을 침해하는 경우 제작물 삭제를 요청하고, 필요한 경우 법적인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글이 AI 음원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해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 등 음반사와 저작권 사용료 지불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통해 8월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AI를 활용해 합법적으로 음원을 제작하고 저작권 소유자에게 대가를 지불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음반사와 협상에 들어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논의는 AI라는 신기술의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업계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라고 전했다.
김찬동 한국저작권위원회 법제연구팀장은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AI 기술 사용자가 관련 법률을 명확히 알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에서 이런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합법적인 저작물 이용 환경 조성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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