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65년 준공된 구 청주시청 본관은 제13대 청주시장을 지낸 이준영 씨가 건축가 강명구(1917-2000)에게 의뢰해 만들어졌다. 설계를 맡은 강명구 선생은 권위를 강조했던 기존 관청의 위압적인 외형을 벗어나 주민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청주 지역 별칭 ‘주성’의 이미지를 살린 디자인을 시도했다. 준공 당시의 3층 규모 청사 전경을 보면 확실히 대지 위에 선 배를 닮았다. 솟은 옥탑은 돛대를 형상화한 것인데 청주 지역 전체의 돛대 역할을 했다는 용두사지 철당간의 재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1983년 4층으로 증축됨으로써 돛대의 규모는 축소됐지만 디자인 큐는 건재했다. 건립 이후 사무공간 부족으로 3층이 올라간 인천 중구청사와 비슷한 경우다. 김태영 청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청주읍성내의 어제와 오늘’에서 구 청주시청사를 놓고 전통 건축의 재현이라는 면에서 직설적인 청주예술의전당(1990)과는 수준이 다른 건축이라 평가하였다.
새 청사 건립에 나선 청주시는 2018년 문화재청의 권고를 받아들여 구 청사의 존치를 결정하고 신청사 국제 공모를 통해 옛 본관과 공존하면서 이를 감싸는 듯한 건축가 로버트 그린우드의 설계안을 선정했다. 그러나 2022년 지방선거 이후 기류가 급변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뀐 후 1층 천장의 와플 슬래브는 욱일기, 첨탑 디자인은 후지산을 형상화했다며 일본풍 건축이라는 근거 없는 이유로 철거를 정당화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각계의 반대와 농성에도 불구하고 철거 찬성파의 입장은 강경했다. 결국 미적 가치를 지닌 구 청사는 2023년 상반기 철거되고 말았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아카데미극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3년 건립된 근대건축물인 아카데미극장은 건축 당시의 구조와 외형을 그대로 보존한 국내 최고령 단관극장이다. 단관극장이란 최근 등장한 멀티플렉스와 달리 스크린이 하나인 영화관을 말한다. 정면에서 바라본 아카데미극장은 수직적 요소를 강조한 전면과 좌측에 돌출된 발코니가 특징으로 옛 영화관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극장주의 살림집이 딸린 내부 평면도 극장 전성기엔 평범한 풍경이었겠지만 지금 와선 보존해야 할 생생한 유산이 되었다. 원주에는 5개의 단관극장이 성업했으나 나머지 4개는 모두 문을 닫았다. 아카데미극장도 2006년 폐관하여 원래 용도로서의 삶은 마쳤지만 원주시가 매입하여 여러 문화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 왔다.
당초 극장을 보존하기로 했던 원주시는 시장이 바뀜과 동시에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일방적인 ‘철거’로 급선회했다. 구 아카데미극장은 흉물이 아닌 시민을 위한 터전으로 제 기능을 해왔다. 극장 내부에 보관 중인 실제 사용되던 안내판이나 포스터들은 수십 년 전 글자꼴과 화면 구성을 간직한 시각디자인 유산으로 가치가 큰데, 철거와 함께 그 또한 특별한 대책 없이 소실될 확률이 높다. 원주시는 극장 철거 후 야외공연장 등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문화공간을 찾아 굳이 원주까지 갈 이유는 없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시간이 만들어 준 특별한 헤리티지를 스스로 부수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두 건물은 디자인·건축적 가치가 충분하고, 현대 사회와 공생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 왔으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뚜렷한 근거 없이 일방적인 ‘철거’로 급선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기관과 합의 후 추진 중인 절차를 특정인이 졸속으로 뒤집을 수 없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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