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찰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태광그룹이 “이 전 회장 경영 공백 시기 그룹 경영을 맡았던 전임 경영진의 비위 행위였다”는 반박을 내놨다. 이 전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이후 진행된 그룹사 자체 감사 과정에서 해임된 전임 경영진은 현재까지 김기유 티시스 전 대표가 유일하다. 사실상 김 전 대표를 겨냥한 대응으로 해석되는데, 이 전 회장의 복귀를 준비 중인 태광이 총수의 최측근이었던 김 전 대표를 사태의 책임자로 내세우는 셈이다.
이를 계기로 이 전 회장의 복심이자 실세였던 김 전 대표가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곧 내부 감사 결과를 경찰에 고발할 것으로 점쳐지던 태광이 방심하다가 ‘선제공격’ 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내부 감사 마무리가 임박하면서 이 전 회장과 김 전 대표의 갈등 역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는 특별감사, 김기유 티시스 전 대표 향했나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이튿날 태광그룹이 내놓은 해명의 키워드는 ‘이호진의 공백기’와 ‘전임 경영진의 비위’다. 태광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경찰이 이 전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 전 회장 공백 기간 그룹 경영을 맡았던 전 경영진이 저지른 비위 행위였다는 것이 감사 결과로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24일 경찰이 이 전 회장의 자택과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도 용인 태광CC 등에 대해 강제 수사에 나서면서 파장이 일었다. ‘황제 보석’ 논란 속에서 만기 출소한 이 전 회장은 또 다시 업무상 배임 및 횡령 의혹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 불과 70여 일 만에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셌다.
태광그룹이 단정적인 어조로 전임 경영진에게 책임 소지를 돌리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배경에는 8월 시작된 내부 특별감사가 있다.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는 전례 없는 특별감사에는 특수통 고위 검사 출신으로 구성된 법무법인까지 동원됐다. 해당 법무법인은 디지털 포렌식과 회계감사도 진행하고 있다.
대상을 특정한 감사는 아니라지만 칼날이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했던 김기유 티시스 전 대표를 향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태광은 계열사 티시스에 대한 내부 감사 과정에서 문제를 적발해 감사를 모든 계열사로 확대한 바 있다. 그룹 실세로 꼽히던 김 전 대표 겸 그룹 경영협의회 의장이 해임됐고, 사측은 9월경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핵심 임원을 내보내면서 개인 비위 사실을 대외에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 전 회장과 김 전 대표가 갈라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는 전언이다.
티시스는 부동산 관리 및 건설·레저, 콜센터 사업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다. 2017년 지배구조 개편 전까지 이 전 회장 일가의 100% 개인회사였던 티시스는 그룹 내 살림을 도맡는 계열사로 분류된다. 흥국생명 등 계열사에 포진했던 ‘김기유 라인’ 임원 다수가 현재 보직 해제된 상태로 파악된다.
#경질된 2인자의 반격? 법적 다툼 ‘시동’
이 전 회장과 김 전 대표의 갈등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먼저 이 전 회장의 재판 및 수감 기간에 그룹사 실권을 잡았던 김 전 대표 체제를 갈아엎기 위한 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는 “이호진 회장 경영 복귀와 함께 그룹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 앞서 과거의 핵심 세력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라며 “발 빠르게 전임 경영진의 비위 행위라고 규정한 것도 내부 감사를 통해 김 전 대표에 대한 고발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지난해 초 이 전 회장의 출소와 함께 한 차례 임원진이 물갈이 됐던 것을 고려하면 단순 재정비 차원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태광그룹 핵심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이 전 회장에게 대체하기 어려운 친위대 역할을 해왔음에도 내부 감사 결과에 근거한 경찰 고발까지 예고한 것을 보면 회장과의 신뢰 관계를 깨뜨릴 만한 개인 비위가 실제로 확인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압수수색을 두고 불명예 경질된 김 전 대표 측이 선제적으로 반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임직원 계좌에 허위·중복 급여를 입금한 뒤 이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20억 원 이상을 배임·횡령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일반적인 배임·횡령이 아닌 임직원 개인 급여 명세 등과 연관된 사건이기 때문에 내부 자료가 확보돼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배를 탔던 두 사람이 틀어진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태광이 전임 경영진의 비위 행위에 대한 내부 감사를 마무리한 후 즉각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태광과 김 전 대표의 법적 싸움은 기정사실이 됐다.
벌써부터 내부에서는 김 전 대표의 비위 의혹을 근거로 ‘김치·와인 강매 사건’ 등 총수 일가의 사법 리스크를 김 전 대표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기류가 읽히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4월~2016년 9월 회장 일가 소유 티시스에서 생산한 김치를 19개 계열사가 고가에 사들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거래액은 95억 원 상당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는 지난 3월 이 전 회장이 계열사를 통원해 총수 일가 회사가 파는 김치와 와인을 강매한 과정에 개입했다는 대법원 판단에 반한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사건 관련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대표에게 벌금 4000만 원을 선고하면서도 실익은 티시스와 이 전 회장에게 귀속됐다고 밝혀, 이 전 회장을 사태의 핵심으로 봤다.
재판부는 “총수 일가 회사가 부담해야 할 적자가 다른 계열사로 전가될 수 있는 범행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다만 동기가 총수 일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적자를 개선하려고도 한 점, 직접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했다”고 판시했다. 이 재판과 관련한 질의에 태광그룹 측은 개인에 대한 사법 판결로 선을 그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경영 공백과 전 경영진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사측의 대응은 이미 최종 결론을 낸 대법원의 판단에 어긋난다. 이번 판결을 통해 그룹 총수인 이 전 회장의 책임이 재확인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의 핵심 관계자도 “대기업 총수의 배임·횡령은 경영 공백 여부와 관계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다. 직접 출퇴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리인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논리적 허점을 외면한 옹색한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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