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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노사관계③ 복수노조 갈등, 다수가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노노갈등'은 누구에게도 득 될 것 없는 다툼…나와 너의 대립 아닌 '우리'라는 인식 우선돼야

2023.10.27(Fri) 10:35:58

[비즈한국] 만화작가 마영신의 그래픽노블 ‘엄마들’​에는 대기업 계열의 건물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50대 엄마 ‘소연’​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소연과 그의 동창생 4인방을 중심으로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 혹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 중장년 여성들의 연애사를 비롯한 인간관계, 노동(가사와 돌봄노동, 그 밖의 임금노동까지 포함하여)의 현장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하나의 사업장에는 여러 개의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회사 내에 다양한 노동 형태가 있기 때문이다. 때론 이러한 노조 간의 갈등이 벌어질때도 있다. 사진=생성형 AI

 

이야기의 큰 줄기는 ‘엄마들의 연애사’​이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생생하게 그려진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아있다. 소연과 직장동료들은 청소용역업체 관리소장의 욕설과 폭언, 성희롱과 성추행, 해고협박에 시달리다가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한다. 그러나 청소반장이 관리소장의 꼬드김에 넘어가 어용노조를 만든다. 바위로 계란치기 같은 인권존중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직접적인 눈앞의 고용안정을 담보할 것으로 기대되는 어용노조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가입하면서 소연이 애써 만든 노조는 소수노조가 된다.

 

이러한 어용노조는 하나의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단결을 와해시키려는 사용자 측의 전략으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엄연히 부당노동 행위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우리나라는 하나의 사업장 내에 복수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노동자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고용형태, 담당업무, 근무형태 등)에 따라 요구사항도, 최우선 해결과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원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뜻을 모아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구성할 자유가 있으니 나와 이해관계가 같은 방향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MZ세대가 주축이 된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이 설립되기도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단체가 늘어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유사 성격의 근로자 그룹의 요구사항을 적절히 취합하고 조율하여 협상 테이블로 가져오는 대표자(혹은 조력자)들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노조가 다양성을 띠고 그 수가 늘어날수록 단체교섭 과정에서 창구 단일화의 난이도가 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결국 다수의 구성원을 갖고 있는 노조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존엄과 인권을 말하는 노동조합 내에서도, 혹은 조합들 사이에서도 다수의 논리에 의해 소수가 차별받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이다.

 

재직 중인 회사에는 4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그중 제1노조는 조합원 수도 가장 많고 산별노조로서 단체교섭권을 갖고 있다. 조합 내에서도 특정 직무 종사자가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데, 2년 전쯤 이들과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 보다 정확히는 이들로부터 업무지시를 받고 일을 수행하는 - 하위직무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소수노조인 제4노조가 생겼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본인들의 처우개선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사측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해 왔다. 노조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무언가 위력을 행사하면 사측에서 발 빠르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교섭은 물론, 창구 단일화라는 과정이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어떤 합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태업’​이라는 노동 쟁의행위를 시작했다. 노동쟁의에도 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의 일방적인 업무 거부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사업장 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제1노조의 조합원들이었다. 손발을 맞춰 일하던 이들의 불완전한 노동 제공으로 자기들 본연의 업무가 가중되었고 연장근로는 물론 쉬는 날까지 나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사간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노-노 갈등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임금인상’​, ‘​처우개선’​, ‘​안전한 작업환경’​은 일하는 노동자라면 성별과 나이, 고용 형태나 근무 형태, 종사업무, 소속된 노동조합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이 되는 요구사항이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같은 근로자 간에 대립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될 것인가.

 

이들의 갈등을 중재하고자 모여서 대화하는 과정 - 불법 쟁의행위는 별개로 하고 - 에서 제4노조원들은 자신들의 별도 노조 설립 배경에 ‘​함께 일하는 노동자로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전달했다. 임금인상과 같은 처우개선은 노-사간 교섭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며 적법적인 절차와 그에 따른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깨닫고 얻는 것이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올 하반기 서이초 교사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자주 곱씹게 되는 말이다. 이는 노동조합 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에서든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 욕구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과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다수가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집단의 권리주장이 다른 집단의 권리침해가 되지 않으려면 갈등관계를 ‘나 대 너’​라는 경합관계가 아닌 ‘​우리’​라는 파트너십으로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몸담은 조직이 아주 더디긴 해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ir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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