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두나!’를 봤다. 아니, 수지를 봤다. 드라마를 봤는데, 기억에 남는 건 주연을 맡은 수지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를 보면 된다. 6시간 55분에 달하는 9부작 내내, 수지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민송아 작가의 웹툰을 영상화한 ‘이두나!’는 전직 아이돌 스타와 평범한 대학생의 로맨스라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던 만화 같은 이야기를 골자로 하는 청춘 로맨스다. 인기 정점에 있던 걸그룹 드림스윗의 멤버 이두나(수지)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한다. 서울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아무것도 안 하며 조용히 살고 있던 이두나의 눈에 포착된 게 대학생 이원준(양세종). 처음엔 원준이 두나의 이름을 딴 굿즈 후드를 입고 있는 바람에 사생팬이라 오해하며 까칠하게 대하지만, 이내 그의 따스한 성품에 마음의 문을 연다. 다른 우주에 살던 두 사람은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며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로맨스인 만큼, 원준의 첫사랑 김진주(하영)와 어릴 적 친구 최이라(박세완), 원준의 셰어하우스 메이트 구정훈(김도완)과 서윤택(김민호) 등 여러 청춘들이 등장하지만, ‘이두나!’는 올곧이 이두나(와 그의 관심을 받는 이원준)를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진주 역의 하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특별출연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최이라 역의 박세완도 ‘땐뽀걸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최종병기 앨리스’ 등으로 착실히 눈도장을 찍어왔지만 ‘이두나!’에서는 허락된 롤이 작다. 초반 진주가 두나와 원준 사이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긴장감을 구축하나 싶지만 쉽게 사그라들고, 원작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통통 튀는 에너지를 보이며 등장한 최이라 역시 주요 역할을 맡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문다.
드림스윗으로 K-Pop의 정점에 섰던 연예인 두나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간간히 배치돼 있지만, 특별한 서사를 부여하진 못한다. 가수를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소속사나 ‘빚투’를 연상케 하는 두나 엄마(김선영), 인기로 인해 그룹 내에 존재하는 차별과 그로 인한 멤버 간의 불화, 몰래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도촬’하는 사생팬 등의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어느 순간 노래가 나오지 않고 쓰러질 만큼 두나가 연예계 생활로 황폐해졌음을 드러내지만, 모두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드림스윗 멤버로 등장한 고아성이나 소속사 마 회장으로 나온 김유미의 특별출연이 그 존재감에 비해 안타깝긴 하지만, 뭐 그래도 이 드라마가 로맨스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두나!’의 로맨스엔 떨림이 적다.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진주와 이라 등 여러 여성들의 관심을 사는 훈남인 이원준을 맡은 양세종은 역할 자체에는 어울리지만 두나와의 ‘케미’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랑의 온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등에서 상대 배우와 좋은 커플 케미를 발휘했던 양세종이지만, ‘이두나!’에서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수지의 비주얼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오히려 두나의 매니저 박인욱이자 두나가 오랫동안 의지한 인물인 P를 맡아 특별출연한 이진욱의 존재감이 남자 주인공의 그것을 능가하는 양상도 낳는다. 6화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등장한 박인욱과 그를 보고 원준의 손을 놓고 박인욱에게 향하는 두나의 모습에 감정이입한 사람이 나뿐일까?
그렇기에 ‘이두나!’는 이두나를 연기한 수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한 챕터, 한 챕터를 넘기게 되는 헌상물 같은 작품이라 봐야 한다. 딱히 수지의 팬이 아닌 나도 7시간 가까운 시간을 견뎠는데, 수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장면장면을 캡처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보물창고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수지가 입고 나오는 크롭티, 수지가 쓰고 있는 모자 등 매 장면의 패션 스타일링 또한 주목하게 되고, 심지어 수지가 물고 있는 담배 브랜드까지(드라마 보면 찾아보게 된다)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게 바로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해 최정상의 인기를 누린 아이돌이자 ‘건축학개론’으로 ‘국민첫사랑’의 명칭을 수여받은 수지의 위엄이 아닐까. 과연 타이틀에 ‘!’를 부여할 만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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