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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가로수길엔 온통 외국어 간판, 왜 그런지 따져보니…

'면적 5㎡ 이내 3층 이하'면 신고 제외…서울시 "법적 근거 없이 단속 못 해, 상인들 자율권 인정"

2023.10.26(Thu) 09:22:41

[비즈한국] 외국인 방문객 수가 늘어서일까? 국내 어디를 가더라도 외국어로 적힌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로 쓰인 탓에 점포의 성격을 알 수 없고 때론 위화감까지 느껴진다. 최근 한옥마을에마저 외국어 간판이 등장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옥외광고물 관련 규정과 현장을 살펴봤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 모두 영어로 표시돼 있다. 사진=김초영 기자


#가로수길 가보니 간판 대부분 외국어로만 표기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거리 초입부터 외국어 간판이 여럿 걸린 건물이 눈에 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문구점, 편의점 간판이다. 거리를 걷는 동안 의식적으로 한국어 간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많은 ​가로수길 특성 때문이겠지만, 조그만 점포조차 외국어로 간판을 내건 곳이 수두룩했다. 거리에 외국인보다 내국인이 더 많은데도 간판은 외국어로 가득했다. 디저트·의류 매장 가운데 한글로 상호를 표시하거나, 한글이 외국어보다 크게 적힌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근에서 회사를 다니는 김 아무개 씨(27)는 “둘러보니 외국어가 많기는 하다. 그런데 가로수길뿐 아니라 다른 상권도 외국어 간판이 더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A 씨(33)는 “관광객으로서는 한글 간판보다 외국어 간판이 편하다. 또 가로수길은 한국 문화를 체험하러 오는 곳이기보다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오는 곳이어서 한글보다는 외국어로 간판이 적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표 외국어인 경우 제재 어려워

 

현행법에서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특별한 사유’를 갖는 점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국옥외광고센터가 발행하는 ‘옥외광고물 법령 해설집’은 상표 등록이 외국어로 된 경우에는 외국문자로 표시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맥도날드 등이 영어 간판을 달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순수 한글 간판이 바람직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상호도 있고, 자영업자들도 상호를 영문으로 많이 바꾸는 추세인데 이를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외국어 간판이 디지털 간판처럼 빛 공해를 유발하거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간판 면적이 5㎡ 이내면서 3층 이하에 설치되는 경우에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한몫한다. 신고 의무가 없다 보니 지자체도 점포가 어떤 언어로 간판을 제작했는지 현장을 가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에서 하는 것을 행정청이 법적 근거 없이 단속하거나 제한하기는 어렵다. 신고 대상이면 처음부터 허가를 내주지 않겠지만,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에는 단속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간판 면적이 5㎡ 이내면서 3층 이하에 설치하는 경우에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외국어 간판이 범람하는 데 한몫한다. 사진=김초영 기자

 

이 관계자는 “사실상 5㎡​ 이내, 3층 이하인 간판이 옥외광고물의 대부분이다. 입법으로 규제할 수도 있겠지만 자영업자의 자율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서울시는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자영업자에 자유를 좀 주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 자치구별로 적용 기준 달라

 

지자체별 혹은 자치구별로 기준을 다르게 적용 받는 점도 문제다. 옥외광고물법은 정비시범구역이나 자유표시구역 등으로 지정되는 경우 광고물의 모양·크기·색깔을 비롯해 표시 또는 설치의 방법 등에 대해 별도의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밖에 지자체에서 특정관리구역으로 지정하는 곳도 있다 보니 신고를 해야 하는 점포 주인들도 헷갈리는 데다, 시민들도 어떤 간판이 법에 저촉되는지 쉽게 알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정관리구역은 상업지역·관광지·관광단지 등이 대상이다. 자치구가 특정 지역을 서울시에 특정관리구역으로 신청하면 시에서 검토 후 이를 지정하는 식이다. 정비시범구역은 자치구청장이 인허가권자인데, 구에서는 주민들의 쾌적한 생활 환경 보장이라는 공익적인 부분을 고려해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 구에서 허가뿐 아니라 철거나 이행강제금 부과도 담당한다. 서울시 일부 자치구에 문의한 결과 조례를 통해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곳도 있고, 서울시 조례만을 바탕으로 관리하는 곳도 있었다. 

 

한현숙 경기대 관광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캠페인 등을 통해 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기간에 변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자체가 규제를 하기보다는 업주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상인회에서 교육 등을 할 때 관련 법령을 알리고, 지자체에서 도시정비 관련 예산을 편성할 때도 옥외광고물 교체 시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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