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동복 시장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아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 늘어나며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는 역대급 저출산에도 호황을 누리는 상황이다. 반면 가성비를 앞세운 중저가 아동복 브랜드는 생존 기로에 놓였다.
#1~2년밖에 못 입지만 명품으로…백화점 프리미엄 아동복 브랜드 인기
21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백화점 아동복 매장. 손자의 옷을 사려고 매장을 찾았다는 중년의 부부는 점원에게 외투 몇 벌을 추천 받았다. 부부는 곧바로 손자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추천 받은 옷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고, 통화를 마친 뒤 그중 한 벌을 골라 계산했다. 간절기용 외투 한 벌의 가격은 2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계산을 끝낸 부부는 “여러 벌을 보여줬는데 이 제품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아이들이라 한두 해밖에 못 입지만 이왕이면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 구매했다”고 말했다.
최근 유·아동 시장에는 ‘텐포켓(10Pockets)’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저출산으로 한 자녀 가정이 늘면서 부모를 비롯한 조부모, 이모, 삼촌 등 10명가량의 주머니가 열린다는 의미다. 특히 적은 자녀 수에 이왕이면 좋은 것을 해주려는 마음이 커지며 프리미엄 키즈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부문에서 전년 대비 매출이 가장 높게 상승한 상품군은 아동/스포츠(23.9%)로 나타났다.
백화점에서의 아동복 입지도 달라졌다. 저출산으로 아동복 수요가 줄면서 2010년 이후 백화점은 계속해서 아동복 코너를 축소해왔다. 단독 매장을 줄이면서 유아복 브랜드를 모아 편집숍 형태로 운영하는 방식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백화점 업계는 다시 아동복 코너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중저가 브랜드는 점차 방을 빼고 그 자리를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채우는 분위기다. 올해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의 아동복 라인인 ‘베이비 디올’을 입점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6월 펜디 키즈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명품 아동복은 패딩 점퍼 한 벌이 100만 원을 훌쩍 넘을 정도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르 키즈 매장의 점원은 145만 원짜리 아동용 패딩 점퍼를 보여주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재고가 한 개 남아있다”며 “날이 좀 더 추워지면 사이즈를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요즘도 주말이면 매장을 찾은 부모들이 사이즈만 맞으면 바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정당 자녀가 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자녀에 대한 투자가 많다”며 “자녀가 귀해 부모 세대를 비롯해 조부모 세대에서도 지원을 해줘 의류나 교육 등에 대한 소비력이 높다. 유·아동 시장은 계속해서 프리미엄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저가 브랜드 수요 줄어, 남대문시장 아동복 상가에는 ‘임대 중’ 늘어
고가 브랜드의 선호도가 높아진 대신 중저가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는 크게 줄었다. 가성비를 앞세워 마케팅 했던 국내 아동복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꺾이면서 관련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알퐁소, 알로앤루 등의 브랜드를 운영했던 유·아동 전문 기업 제로투세븐은 지난해 패션 사업을 종료했다. 2014년부터 아동복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브랜드 리뉴얼과 온라인 채널 강화 등의 노력 끝에도 적자 구조 개선이 어려워짐에 따라 사업 종료를 결정한 것이다. 2020년 야심차게 아동복사업을 시작했던 코오롱FnC도 지난해 첫 아동복 브랜드인 ‘리틀클로젯’의 사업을 정리했다.
컬리수, 모이몰른 등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한세엠케이는 실적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세엠케이는 2018년 3230억 원이던 매출액이 다음 해 3075억 원으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2202억 원, 2021년 2077억 원으로 줄었다. 2018년만 해도 24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2019년부터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영업손실은 239억 원, 2020년에는 189억 원, 2021년에도 121억 원의 손실을 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이 2715억 원으로 늘었으나 영업손실은 211억 원으로 확대됐다. 한세엠케이는 올해도 86억 원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저가 아동복의 메카로 불리던 남대문시장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시장의 한 상인은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시즌이 성수기다. 추석이 지나고 손님이 반짝 늘긴 했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장사가 정말 안 되는 상황”이라며 “손님들도 신상품보다는 세일 상품 위주로만 구매한다. 매출이 정말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임대’를 내건 빈 점포도 눈에 띄게 늘었다. 매출 악화에 아동복사업을 아예 포기하고 시장을 떠나는 상인들이 부쩍 늘어나는 분위기다. 남대문시장에서 2019년부터 아동복을 판매했던 상인 A 씨는 이달 말까지만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는 “요즘 아동복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달 말까지만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전반적으로 다들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아동복 시장은 특히나 타격이 큰 것 같다. 매년 체감하는 매출 하락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도 “요즘 엄마들은 브랜드 옷을 선호하다 보니 고가 브랜드 옷을 주로 구입한다. 반면 중저가 옷은 물려받아 입히는 트렌드가 확고해지고 있다”며 “점점 중저가 의류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장사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가와 초저가만 살아남는 성인 의류 시장의 분위기가 아동 시장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중간 가격대의 시장은 침몰이 예상된다”며 “아동복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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