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축 빌라가 밀집한 대표적인 ‘빌라촌’ 서울 강서구 화곡동이 개발을 띄우며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다. 강서구에서 거래된 신축 빌라 두 집 중 한 집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90%가 넘는 ‘깡통전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화곡동에 82%가 몰려 있다. 고도 제한에 묶인 데다 뉴타운까지 무산되자 많은 빌라가 들어섰고, ‘빌라왕 전세사기’의 주 무대로 전락한 것이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도 지역 숙원인 김포공항 고도 제한 규제 완화가 화두였다. 이를 1번 공약으로 제시한 진교훈 구청장도 임기 첫날부터 원도심 개발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지지부진하던 재개발·재건축 현안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고도 제한 안 풀면 개발 ‘난항’ 불가피
“김포공항이 있잖아요. 공항이 있어서 여기는 어려워요.” 19일 찾은 화곡동 일대는 여전히 지난해 주변 지역을 휩쓸고 간 전세사기 여파가 남은 모습이었다. 화곡4동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공항 주변지라는 위치가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고도 제한은 어떻게 바꿀 방도가 없다. 선거철마다 매번 나오는 얘긴데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포공항 고도 제한 완화는 강서구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강서구는 전체 면적의 93.7%(40.3㎢)가 김포공항 인접 지역으로 높이 규제를 받고 있다. 강서구와 양천구, 경기도 부천시가 공동으로 진행한 2014년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고도 제한에 따른 재산피해액은 약 59조 원으로 추정된다. 평지가 많아 비교적 개발이 용이한 편임에도 고도 제한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재산 가치가 가장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교훈 구청장이 후보 시절 구청장 직속으로 ‘고도 제한 완화 및 항공학적 검토 추진을 위한 민관 합동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명 ‘빌라왕’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도 고도 제한과 관련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곡1동이 2013년 주택재건축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되고 이후 낡은 주택을 합쳐 저층 빌라를 짓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화곡2동 B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전세사기 문제도 결국 신축 빌라(연립·다세대)가 많은 것과 연관이 있다. 높은 아파트는 못 지으니 빌라가 많이 양산됐다. 5호선이 깔려 있어 출퇴근이 용이한 편이고 젊은 사람들은 깔끔하게 지어진 빌라를 선호해 타깃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곡동은 서울지하철 5호선 화곡역과 2·5호선 까치산역을 끼고 있는 역세권 입지다. 인근 지역 대비 저렴한 신축 빌라가 몰려 있어 2030세대 거주 비중이 38% 수준으로 높다.
#국제기준 바꿔야 하는데…규제 완화 실현 가능할까
하지만 규제 완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여야 구분 없이 내세웠던 고도 제한 규제 해소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공약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국내 정비법 개정으로 높이 조정의 기반은 일부 마련됐지만 실질적인 고도 제한 완화를 위해서는 국제기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진 구청장은 후보 시절 “항행안전 보호, 건축용적률 상향 등 최적의 고도 제한 완화 기준을 마련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토교통부를 적극 설득해 금지표면의 최소화와 관련 입법 및 고시를 조속히 마련해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오세훈 시장도 지난달 캐나다 몬트리올 ICAO 본부에 방문해 공항 주변 고도 제한과 관련한 국제기준을 개정해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현재 강서구 일대에서 추진되는 주요 정비 사업은 크게 화곡1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모아타운과 화곡2·4·8동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이 있다. 특히 도심복합사업은 진 구청장이 12일 임기를 시작하며 찾은 현장으로 구청이 행정 지원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곡1동은 뉴타운 무산 이후 사업 방식을 두고 돌고 돌아 모아타운으로 방향을 잡아 개발 열의를 지피고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집값이 높은 지역이면 일반 분양가라도 높게 잡을 수 있지만 화곡동 일대는 고도 제한 개선 없이는 사업성을 키울 수 없어 장벽이 높다. 토지 수용 방식인 도심복합사업 등 주민들의 이해관계 문제도 발목을 잡을 여지가 있다”며 “차라리 마곡처럼 빈 땅으로 시작했다면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지만 1990년대부터 난개발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되돌리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정이 되더라도 시기의 문제가 남아 있다. 현재 ICAO에서 2028년 시행을 목표로 높이 제한 규정 개정 작업에 착수해 국제기준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어느 수준으로 개정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시기도 최소 5년 뒤라 강서구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항공 안전 관련 국제기준과 엮인 문제라 현실적으로 개발이 쉽지는 않다”며 “개발 이익은 얼마나 층수를 확보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개발 제한으로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망이 밝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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