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2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럽 자동차 업계의 혁신을 고민하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드라이버리 마켓플레이스(Market Place)’로, 베를린에 자리한 유럽 최대 모빌리티 스타트업 허브 드라이버리가 매년 입주 기업과 유럽의 다양한 모빌리티 관련 기업, 투자자가 만나도록 주선하는 자리다.
올해는 프랑스의 무빙온(Movin’On)과 공동 기획, 진행해 유럽 최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만남이 성사됐다. 자동차 관련 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모인 이곳에서 주인공은 스타트업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유명 대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온 스타트업의 기술을 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독일·프랑스 최대 모빌리티 커뮤니티 두 곳이 행사 진행
드라이버리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럽 최대의 모빌리티 스타트업 허브다. 무빙온은 프랑스 타이어 제조기업 미쉐린이 지원하는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그야말로 유럽의 거물인 독일과 프랑스의 모빌리티 대표 커뮤니티가 만나 특정 산업 전문 행사를 공동 개최하게 된 것이다.
무빙온은 미쉐린에서 만들었지만 보험그룹 악사(AXA), 항공기 제조기업 에어버스(AirBus) 같은 프랑스 기업뿐만 아니라 아우디(Audi), 다임러(Daimler), BMW 등 독일 최대의 자동차 기업이 파트너로 참여하는 범유럽 플랫폼이다. 무빙온은 플랫폼을 통해 유럽의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들이 모여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를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논의하고, 이를 가속화할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주요 미션이다. 2017년 설립되어 현재 300개 이상의 모빌리티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무빙온은 회원사로 구성된 모빌리티 관련 대기업 사절단 30여 명을 이끌고 독일을 방문해 스타트업의 혁신 솔루션을 둘러보고 스카우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행사의 이름처럼 ‘시장이 형성’되어 비즈니스가 실제 일어나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TotalEnergies), 엔지(Engie), 벨기에의 해양산업 클러스터 MCA(Maritime Campus of Antwerp),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 포비아(Forvia) 등이 베를린의 혁신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탐방했다.
기업 간 사전행사에서는 영국 컨설팅 회사 칸타르(Kantar)의 모빌리티 부문장 롤프 쿨렌(Rolf Kullen)이 베를린 도시 모빌리티 생태계에 관해 발표했다. 쿨렌은 “베를린은 전 세계에서 도시 모빌리티 생태계 지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도시 모빌리티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라며 “2030년이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 실험의 티핑 포인트가 될 것이고, 베를린이 이 흐름을 주도할 것이다”고 베를린과 모빌리티의 시너지를 강조했다.
스웨덴에 기반을 둔 아크 캐피탈의 투자 매니저 장카를로 샤포티에(Giancarlo Chapoutier)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문화적 환경을 함께 경험하고, 양국 스타트업에 모두 투자를 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창업 생태계 차이에 대해 발표했다. 장카를로는 “프랑스가 파리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라면 독일은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등 지역별 창업 생태계가 활발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밝혔다. 그는 “VC 총자금의 규모는 독일이 크지만, 최근 투자 금액의 증가 폭은 프랑스가 더욱 크기 때문에 양국의 특성에 맞게 투자 기회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인공이 된 한국 스타트업들
프랑스와 독일이 만난 모빌리티 행사의 포문을 연 것은 흥미롭게도 한국의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이었다. 마켓플레이스 본행사의 첫 순서에 한국에서 온 5개의 스타트업이 ‘생태계 연결: 아시아 모빌리티 스타트업 피치’ 행사에 참여했다. 무선 충전 인프라 구축과 전기차, 트럭, 버스, 로봇용 무선 충전 시스템을 제조하는 와이파워원(WiPowerOne), AI 기반 예측 모델을 통해 기업의 수요 예측, 신제품 성공가능성을 예측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임팩티브 AI(Impactive AI), 비전 AI 기반 주차관제시스템 솔루션을 제공하는 라이트비전(Light Vision), 물기반의 비발화성 친환경 2차 전지 솔루션을 가진 코스모스랩(Cosmos Lab), 무선 센서를 통해 건물, 공장, 도로 관리 IoT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넷코리아(Monnit Korea)가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진출의 초석을 놓기 위해 유럽 모빌리티 기업들 앞에서 자신들의 솔루션을 소개했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기업의 핵심 제품과 전략을 소개하고, 현장에서 심사위원과 관객으로부터 즉석 질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모두 순발력 있게 대응했다. 피칭 행사에서 1500유로(200만 원)의 상금과 1년 동안 드라이버리 공간 이용권을 얻은 주인공은 임팩티브 AI였다. 임팩티브 AI는 소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믿을 수 없다(unbelivable)!”을 연발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5개의 스타트업 외에도 한국의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의 김메이글 이사가 무대에 올라 ‘한국 모빌리티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대해 발표했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을 위한 다양한 자금 지원 등 한국 정부의 정책부터 한국 대기업들의 모빌리티 투자 동향을 소개하는 등 앞으로 세계 무대와 조우하게 될 한국의 스타트업과 투자 흐름에 대한 전반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대에만 한국 스타트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켓플레이스 부스에서 이미 독일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솔루션도 만나볼 수 있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개발하는 드림에이스(Drimaes), AI 모델 최적화 기술을 가진 노타 AI(Nota AI)는 마켓플레이스 내의 부스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유럽 모빌리티 기업에 소개했다.
한국의 웹서비스 전문 IT 스타트업 아이엠폼도 마켓플레이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이엠폼은 앱 설치나 별도의 로그인 없이 플랫폼을 통해 마케팅할 수 있는 가벼운 방식의 마케팅 도구다. 여기에 결제, 커머스, 웹 제작 솔루션 등을 연동해 디지털 마케팅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이엠폼의 솔루션이다. 아이엠폼은 한국에만 30곳이 넘는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페라리, 람보르기니, BMW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아이엠폼의 마케팅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김택원 아이엠폼 대표는 “아이엠폼은 현대뿐만 아니라 BMW 등 다양한 자동차 기업을 고객사로 두었기 때문에 유럽의 모빌리티 산업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 참여했다”며 “드라이버리라는 혁신 커뮤니티 덕분에 보쉬, 미쉐린 등 유럽의 대기업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경험했고, 앞으로 아이엠폼이 유럽 시장과의 교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전통 거대기업의 주도하에 움직이지 않는다.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가 주도하는 첨단 기술의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IT 기업이 전통 자동차 기업을 제치고 전기차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현상도 이제 낯설지 않다. 모빌리티는 국경도, 산업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 보더들의 천국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와 독일 자동차 산업이 고민하는 혁신의 현장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주인공이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앞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유니콘이 여기에서 탄생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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