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립톡 상표권을 침해해 합의금으로 200만 원을 달라는 내용의 경고장을 받았다는 고객이었다. 손가락으로 쥐는 휴대폰 액세서리 그립톡이 상표로 등록된 것도 몰랐고, 누구나 다 아는 그 그립톡 제품의 이름으로 그립톡을 사용한 것일 뿐인데 어떻게 상표권 침해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립톡’ 및 ‘GripTok’은 주식회사 아이버스터가 상표권을 가진 등록 상표다.
지난번에는 고객이 보톡스라는 이름을 사용해 김앤장으로부터 보톡스 상표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보톡스 또한 미국의 앨러간 주식회사가 보유한 상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립톡은 휴대폰 뒷면에 부착하는 휴대폰 거치대로, 보톡스는 주름살을 없애려고 주입하는 물질을 일컫는 일반명사나 보통명사쯤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이런 일이 고객에게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립톡이나 보톡스가 상표로 등록됐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립톡과 보톡스는 상표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보톡스의 경우 상표권 관리가 매우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식백과나 위키피디아 등의 여러 사전에서 보톡스가 앨러간의 상표임을 표시하고 있으며, 보톡스나 Botox에 등록을 표시하는 ®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앞서 고객이 보톡스를 사용해 앨러간 측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것처럼 보톡스 사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관리하고 있다.
최근 특허법원 판례(특허법원 2021. 2. 4. 선고 2020허6088/2020허6071 판결)를 보면 보톡스의 상표 사용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상기 판례는 화장품에 대해 등록된 보노톡스 상표권에 대하여 앨러간이 무효심판을 청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보노톡스 상표가 최종 무효가 된 사건이다.
무효를 주장하는 앨러간 측은 보노톡스가 주지, 저명한 보톡스와 유사하고 양 상표의 지정상품이 화장품과 의약품으로 밀접한 경제적 연관성도 있으므로, 화장품에 보노톡스가 사용될 경우 일반 수요자가 보톡스를 쉽게 연상시켜 출처의 오인, 혼동의 염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노톡스 측은 보톡스 상표가 아스피린이나 불닭과 같은 상표처럼 해당 상품 분야에서 보통명칭화돼 식별력을 상실했고, 결국 보노톡스는 식별력이 없는 보톡스와 관계에서 일반 수요자들로 하여금 상품의 출처에 대한 오인, 혼동 염려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보톡스가 여러 사전에 상표명으로 등재돼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간행물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서 보톡스를 상표명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보톡스의 보통명칭화를 막기 위해 앨러간이 다수의 안내자료, 홍보물 등을 제작·배포하고, 보톡스와 유사한 상표들에 대해 무효심판이나 소송 등을 제기한 점, 보톡스의 국내외 매출액, 광고액, 시장점유율 등을 고려했을 때 보톡스가 보통명칭이나 관용표장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보톡스를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에 상표로 사용하려면 앨러간 측과 분쟁 가능성이 있으니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그립톡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립톡을 검색 포털에서 검색 시 특정 회사의 그립톡이 아닌 스마트폰 거치대로서의 그립톡의 모든 제품이 검색돼 표시되고, 그립톡을 대신해 그립톡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칭 또한 없어 보인다. 나아가 일반 수요자 대부분은 그립톡을 일반명칭으로 사용하는 사실 또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그립톡이 상표로 등록돼 있지만, 일반명칭이나 보통명칭으로 인식되어 식별력을 상실한 상태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립톡에 대한 무효심판이나 소송이 제기돼 실질적으로 식별력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그립톡에 대한 침해 경고를 받은 경우이거나 아니면 그립톡을 앞으로 사용할 계획이 있다면, 그립톡 상표에 대한 무효심판을 청구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립톡이나 보톡스 사례에서 보듯이 식별력이 매우 강해 저명성을 획득했던 상표라도 상표관리를 잘못하게 되면 언제든 식별력을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등록된 상표나 저명상표라도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상표 보호가 필요하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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