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가 사는 일은 하찮은 일의 연속이다.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붙이면 소중한 의미가 생긴다.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예술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다. 초심을 되새기며 아홉 번째 시즌을 맞았다. 사소한 일상에 가치를 새기는 평범한 삶이 예술이 되고, 그런 작업이 모여 한국 미술이 되리라는 믿음이다. 이것이 곧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정신이다.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은 음악이다. 음악가는 음을 모아 화음을 이루고 장엄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듣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케니 지가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를 들으면 노을빛에 물든 도심이, 리 오스카가 들려주는 하모니카 음색에서는 남프랑스의 따스한 시골길이 아른거린다. 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에서는 남부 독일의 시골 풍경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들으면 구름 낮게 깔린 북유럽의 산들이 보인다. 달빛 부서지는 강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생강의 대금 소리, 봄날 눈 맞은 연분홍 매화가 보이는 황병기의 가야금 소리도 있다.
소리를 들을 뿐인데 우리는 이런 이미지를 눈앞에 그리게 된다. 하지만 음 자체는 구체적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태생 자체가 추상인 음을 가지고 음악가들은 어떻게 구체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 그것은 음을 배열하고 조합해내는 기술에 의해 가능하다. 이를 작곡이라 하는데, 구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음악의 언어인 음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미술에서도 미술의 언어가 있다. 점 선, 면, 색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미술 언어가 제자리를 찾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그리 됐는데, 추상화가 나타나면서 순수 미술 언어는 힘을 가지게 됐다. 추상화는 점, 선, 면, 색채를 조합하고 배열하여 화면 구성을 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미술에서는 2000년 가까이 현실의 구체적 형상을 따라 그려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서양 미술은 성경이나 신화 혹은 역사적 사실 등의 내용을 재현하는 예술이었다. 이를 위해 미술 언어가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추상화가 나오면서 스토리는 없어지고 순수 미술 언어만 남게 되었다. 작가들은 미술 언어만으로도 스토리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에서는 재료의 물질적 성질을 이용한 표현력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변화에 따라 순수 미술 언어보다 표현력이 크고 넓은 재료가 각광 받는다.
황승현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조각을 전공한 작가다. 그래서 다양한 재료에 관한 경험이 풍부하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곰 인형이다. 자신의 분신이다. 귀여운 모습의 곰 인형은 종이죽으로 덮여 있고, 가시처럼 거친 질감을 보여준다.
“저는 선인장의 물리적 모습에서 주제를 찾았습니다. 선인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로 뒤덮여 있습니다. 사람들도 가시로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향해 상처를 줍니다.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죠. 저는 서로의 가시를 보듬어 부드러운 관계를 맺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제 작품은 이런 이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재료의 성질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황승현의 작품이 빛나는 이유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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