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때로는 도서관이 지역 명소가 된다. 연간 1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다는 일본의 다케오시도서관이 그렇다. 규모는 작지만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다. 은평구의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지역 주민들이 주도해 도서관 ‘마을’을 만들고,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낡은 연립주택이 도서관마을로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외관부터 특이하다. 크고 번듯한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건물 여럿이 모여 도서관을 이루고 있다. 여러 집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것처럼. 지금은 도서관이 된 건물들도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던 집이었다. 낡은 연립주택 세 동을 리모델링한 후 도서관 하나를 만든 것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공간 구성은 아주 독특하다. 원래 골목길이었던 도서관 로비부터가 그렇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로비를 지나면, 다른 도서관처럼 거대한 열람공간 대신 기존의 방들을 최대한 살려 누구나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아늑한 공간들이 나온다. 5층짜리 도서관에는 55개나 되는 크고 작은 방에 분야별로 나뉜 서가와 여러 가지 시설이 자리 잡았다. 이런 공간은 마치 미로처럼 이어진다. 길 중간에 뜻밖의 계단이 나타나고, 층계를 오르다 보면 콘크리트 벽이 붉은 벽돌로 바뀌는 식이다. 계단 벽에는 주요 공간들의 옛날과 현재 사진이 비교 전시되어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공간만큼이나 독특한 콘셉트의 열람실들도 눈에 띈다. 4층의 ‘마을자료실’에는 구산동의 어제와 오늘을 알려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도서관 곳곳에 자리한 ‘만화의 숲’에는 무려 1만여 권의 다양한 만화책들이 비치됐다. 별도 공간으로 마련된 독립출판물실은 특히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공연장이자 마을 행사장으로 쓰이는 청소년 힐링캠프, 도서관 라디오를 진행하는 방송실, 청소년들이 직접 꾸민 미디어교육실 등도 눈길을 끈다. 이런 공간 구성 덕분에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서울특별시 건축상 등을 받았고, 전국의 도서관 관계자들이 견학을 오는 곳이 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협동조합 꾸려 직접 운영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조성 과정과 운영 또한 여느 도서관과 다르다. 시작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이 공공도서관이 없는 구산동에 도서관을 만들어달라며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리고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에 선정돼 도서관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명 운동에서 공사 착공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드디어 제 모습을 갖추어 가는 도서관을 보면서 운영까지 지역 주민들이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마을의 여러 단체들이 모여 마을의, 마을에 의한, 마을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렇게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은도사협)이 만들어지고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직접 공공도서관을 운영하는 건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도 은도사협은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위탁 운영하면서 학교 독서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하니, 지역 맞춤, 주민 맞춤형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작년에는 주민참여예산을 지원받아 ‘도서관 마을학교’를 진행했다. 장장 7개월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은 후속모임을 거쳐 독서 동아리를 구성하고 구산동도서관마을 독사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은평구뿐 아니라 이웃 지역의 기관, 단체 등과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여행정보>
은평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위치: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 13길 29-23
△문의: 02-357-0100
△이용 시간: 평일 09:00~22:00, 주말 09:00~18:00, 월요일, 공휴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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