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의 계정공유] 있어 보이긴 하는데 또렷이 각인되진 않는, '도적: 칼의 소리'

[비즈한국] ‘도적: 칼의 소리’를 보기 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라는 공통점은 필연적으로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주연을 맡은 김남길도 ‘놈놈놈’의 주연 정우성에게 조언을 구했을 정도. 분명한 건 ‘도적: 칼의 소리(도적)’​는 ‘놈놈놈’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이다. 그러나 그 다른 색깔로 어떤 그림을 완성했는지는 보고 나서도 아리송하다.

‘도적’은 1920년대의 간도를 배경으로 일본군, 독립군, 마적단, 청부업자, 그리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이주한 조선인들 무리가 각자 다른 목적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여기서 공간은 인물만큼이나 중요한데, 극중 김선복(차청화)의 표현에 따르면 ‘미우나 고우나 일본이 먹은’ 경성과 달리 간도는 ‘죄다 자기들이 먹겠다고 군침을 질질 흘리는데, 정작 입에 넣은 놈이 없는’, 확실한 주인이 없는 공간이다. 중국의 땅이지만 일본의 돈이 힘을 쓰고, 조선의 사람이 모여 있는 간도. 다툼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공간인 셈이다.

무법천지인 간도에서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노비 출신으로 일본군이 되었다가 조선 대토벌 작전에서 동포들을 학살한 죄책감을 갖게 된 이윤(김남길)이 있다. 원래 이윤은 자신이 참여한 학살로 가족을 모두 도륙당한 의병장 출신 최충수(유재명)를 찾아 용서를 빌고 그의 손에 죽을 작정이었으나, 마적단에게 도륙당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곤 도적단을 꾸리기로 결심한다. 단,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盜賊)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칼의 소리를 내는, 칼 도(刀)와 소리 적(嚁)을 쓰는 도적(刀嚁)이다.

‘도적’은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조선인들의 분투기부터 노비 출신 이윤과 그의 옛 주인이었던 일본군 소좌 이광일(이현욱)과의 대립, 조선 총독부 철도국 과장으로 위장한 독립운동가 남희신(서현)과 이윤의 로맨스, 돈이면 뭐든 하는 청부업자 언년이(이호정)의 활약, 일본군과 결탁하여 조선인들을 치는 마적단의 행패 등 무수히 많은 인물과 그들의 욕망과 사연이 얽히고설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전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배경의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게 된다. ‘놈놈놈’은 당연하고, ‘암살’ ‘밀정’ ‘미스터 션샤인’ ‘유령’ 등등.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의 일제강점기 배경 작품과 궤를 달리하고, 만주 웨스턴을 표방했던 ‘놈놈놈’보다 비장하다는 점에서 ‘도적’의 색깔은 분명히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가볍고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촘촘하게 비장하지도 않은 그 어딘가에 있는 덕분에 ‘도적’은 있어 보이긴 하는데, 또렷이 각인되지 않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시즌2의 강렬한 염원을 담은 덕분인지 많은 이야기들이 시즌2를 기약하며 마무리가 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아무리 시즌2에서 다룰 수 있다지만, 어느 정도 벌여 놓은 이야기를 마무리짓거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어줬어야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들지, 모든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뤄두면 9시간 가까이 들여 드라마를 본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다행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많고, 그들이 펼쳐 보이는 액션도 눈길을 사로잡긴 한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의병장 출신 최충수와 설악산 포수 출신으로 신기의 사격술을 선보이는 강산군(김도윤), 날쌔고 민첩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남사당패 출신 초랭이(이재균), 완력과 맷집으로 승부하는 금수(차엽) 등 도적단들은 환도와 활, 쌍도끼와 샷건 같은 주무기들을 휘두르며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윤과 마찬가지로 이광일 집안의 노비였으나 간도 명정촌의 조선인 중 가장 큰 부자가 된 김선복이나 이광일의 충실한 오른팔 같으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일본군 중위 한태주(고규필)도 시선을 끈다. 포병대 하나를 혈혈단신으로 박살낼 만큼 싸움과 지략에 능한 주인공 이윤을 맡은 김남길의 뛰어난 액션과 감정 연기도 칭찬할 만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총잡이 청부업자 언년이. 172cm의 길쭉길쭉한 피지컬을 활용한 언년이의 액션은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이윤과의 케미도 찰떡 같아, 여주인공인 남희신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으로 분량을 차지한다. 언년이를 보는 재미로 9시간 가까운 시간을 견뎠다 해도 무방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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