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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10억 광년 크기 거대한 '은하 거품'에 담긴 비밀

현재 빅뱅 이론의 우주 진화 모델과 정확히 일치하는 흔적 관측

2023.10.03(Tue) 14:39:10

[비즈한국] 우주에서 가장 텅 빈 세계, 목동자리 보이드를 아는가. 1980년 천문학자 로버트 커쉬너는 우주 전역의 은하들의 거리를 관측하고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유독 은하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아주 거대한 텅 빈 영역을 발견했다. 지구에서 약 7억 광년 거리에 놓인 지점을 중심으로 지름 3억 광년의 거대한 거품, 그 속에는 은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 부피라면 그 안에 2000~3000개의 은하는 있어야 한다. 지구의 하늘에서 봤을 때 목동자리 방향에서 보이는 이 거대한 텅 빈 영역을 ‘목동자리 보이드(Boötes Void)’라고 부른다. 

 

우리 은하 주변 우주 거대 구조의 모습을 그린 지도. 목동자리 보이드에서는 어두운 은하 60개가 발견된 것이 전부다. 사진=Wikimedia commons

 

천문학자 그레고리 앨더링은 만약 우리 은하가 이 거대한 목동자리 보이드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면 1960년대가 되도록 우리 은하 바깥에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란 재밌는 이야기도 했다. 만약 그랬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지 모른다. 밤하늘에서 뿌옇게 보이는 성운이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작은 구름인지, 멀리 놓인 또 다른 은하인지를 두고 고민했던 20세기 천문학 대논쟁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은하는 주변에 안드로메다와 같은 여러 이웃 은하들이 주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우리가 우주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천문학 발전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은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소름 돋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목동자리 보이드보다 훨씬 더 거대한 또 다른 우주의 거품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거품은 그 지름이 무려 10억 광년에 달한다. 거대한 목동자리 보이드조차 그저 귀여운 비눗방울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거대한 거품은 대체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이 거대한 거품은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 벌어진 놀라운 비밀을 잔뜩 머금고 있다. 

 

최근 발견된 지름 10억 광년 규모 거대한 은하들의 거품에 담긴 비밀을 소개한다.

 

2000년이 되면서 목동자리 보이드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아예 텅 빈 줄 알았던 이곳에서 아주 작은 은하 60개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아무렇게나 분포하지 않았다. 한 줄로 길게 이어진 작은 필라멘트를 이루고 있었다. 이 구조는 목동자리 보이드가 어떻게 이렇게 커다랗게 텅 빌 수 있었는지 힌트를 준다. 

 

목동자리 보이드는 처음부터 하나의 보이드가 아니었다. 원래는 작은 두 개의 보이드로 따로 존재했다. 보이드는 주변에 비해 텅 비어 있는 밀도가 낮은 영역이다. 밀도가 높은 주변 다른 영역이 강한 중력으로 인해 계속 물질이 모여들면서 텅 빈 보이드는 그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진다. 이 과정에서 두 보이드가 각자 커지면서 만나 하나로 합쳐졌다. 비눗방울 두 개가 만나 더 커다란 방울이 되는 것과 같다. 목동자리 보이드 한가운데에서 최근 발견된 이 작은 필라멘트가 있는 자리는 과거 두 개의 보이드가 접촉했던 자리다. 두 개의 둥근 거품 벽이 만나면서 딱 그 자리에만 은하들이 일렬로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목동자리 보이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거대한 우주의 거품이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더 거대한 우주의 지도를 채워나가면서 은하들이 훨씬 더 거대한 공 모양의 벽을 이룬 초거대 우주 거품을 발견했다. 이곳은 우리 은하가 속한 초은하단인 라니아케아 초은하단보다 규모가 더 크다! 헤라클레스자리 초은하단, 머리털자리 초은하단, 슬로안 전천 탐사로 확인되었던 은하들이 길게 이어진 거대한 우주 장벽, 슬로안 장성…. 언젠가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어지간한 우주 거대 구조는 모두 아우르는 정말 거대한 우주 거품이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바깥 수십억 광년에 이르는 주변 영역에서 은하들의 정확한 위치와 방향, 거리를 파악해 지도를 그린 슬로안 전천 탐사 SDSS의 코스믹플로(Cosmicflow) 프로젝트에서 얻은 관측 결과를 분석했다. 데이터 속 수많은 은하들의 입체적인 분포를 직접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유독 많은 은하들이 마치 둥근 공 모양으로 거대한 거품 벽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는 것. 

 

이 거대한 거품의 중심은 우리 은하에서 약 8억 20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억 광년 거리에 유독 많은 은하들이 높은 밀도로 분포한다. 은하들이 지름 10억 광년의 거대한 공 모양의 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새로 발견된 거대한 우주 거품 구조에게 ‘호오레이라나(Ho’oleilana)’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와이 창조 성가 중에서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깨어나는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의 가사에 등장하는 단어다. 

 

우리 은하가 속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바로 옆에 지름 10억 광년 규모의 거대한 우주 거품 호오레이라나가 발견되었다. 사진=Frédéric Durillon


이번에 발견된 우주 거품이 놀라운 것은 단순히 거대한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 거품의 크기가 아주 정확하게, 오늘날의 빅뱅 이론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호오레이라나’의 우주 거품 벽을 이루는 은하들은 거품의 중심을 기준으로 반경 5억 광년 거리에서 거품 벽을 이루며 유독 많이 분포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현재의 빅뱅 이론이 이야기하는 우주 진화 모델과 일치한다! 

 

은하들의 분포 지도 위에 이번에 발견된 호오레이라나 우주 거품의 분포를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는 너무나 밀도가 높았다. 심지어 물질과 빛이 서로 분리되지 못한 채 한데 뒤엉켜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약 38만 년이 지나고 우주가 꾸준히 팽창하면서 서서히 우주의 밀도와 온도가 내려갔다. 온도가 약 3000도로 내려가면서 우주의 상태는 급변했다. 충분히 밀도가 낮아지면서 초기 우주에 존재한 쿼크, 글루온 같은 작은 입자들이 안정화되었고, 이들이 뭉쳐 양성자가 탄생했다. 또 이들은 따로 놀던 전자와 결합해 최초의 수소 원자, 헬륨 원자를 만들었다. 따로 놀던 수많은 기본 입자들이 서로 모여 원자를 구성하면서 우주 속 입자들의 밀도도 점차 줄었다. 이 순간 빛과 물질이 드디어 처음으로 분리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우주에 중요한 흔적이 남게 된다. 빅뱅 이후 38만 년을 넘기기 전까지 빛과 물질은 우주 팽창과 함께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38만 년이 지나고 빛과 물질이 분리되는 순간, 더 이상 물질은 빛을 따라 퍼지지 않았다. 빛은 계속 사방으로 퍼져 나갔지만, 둥글게 퍼져 나가던 물질은 빛과 분리된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처럼 멈췄다. 빛과 물질이 분리된 직후 우주 전역에는 둥근 모양으로 주변보다 물질의 밀도가 더 높은 거품 벽이 만들어졌다. 초기 우주에서 빛과 물질이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둥근 모양의 물질의 거품 벽을 ‘바리온 음향 진동(BAO, Baryonic Acoustic Oscillation)’이라고 한다. 

 

초기 우주에서 빛과 물질이 처음 분리되면서 각인된 물질의 둥근 분포가 오늘날 우주 속 은하들의 공간 분포에 영향을 끼친다. 이 흔적은 빅뱅 이론 모델에 따라 특정한 크기로 결졍된다. 사진=NASA


밀도가 주변보다 더 높은 영역이 생기면 그곳을 중심으로 주변의 더 많은 물질이 모이기 시작한다. BAO의 둥근 거품 벽 위로 조금 더 많은 은하들이 만들어진다. 그 흔적은 지금의 우주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 우주 전역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지도를 정밀하게 그린다면 은하들은 그저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분포하지 않아야 한다. 한 지점을 기준으로 주변 은하들은 유독 이 우주 거품의 반경에 해당하는 특정한 거리에서 더 높은 밀도로 분포해야 한다. 현재 우주의 스케일을 적용했을 때 그 거리는 대략 5억 광년이다. 그렇다! 바로 이번에 새로 발견된 호오레이라나 우주 거품의 반경과 일치한다! 천문학자들은 호오레이라나 우주 거품이 우리 은하가 있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바로 옆 동네에서 발견된 BAO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먼 과거 초기 우주에는 빛과 물질이 분리되지 못했고 점차 우주가 팽창하면서 특정한 시점에 빛과 물질이 분리되었다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다. 빛과 물질이 분리되면서 그 순간 얼어붙었던 물질 분포가 고스란히 우주에 각인된 셈이다. 

 

이러한 둥근 우주 거품, BAO는 최근 들어 우주론에서 아주 많이 주목 받고 있다. 우선 BAO로 형성되는 우주 거품의 스케일은 반경 5억 광년이라는 특정한 값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우린 우주 거품의 정확한 실제 크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거리에 있는 거품을 보면서 그 거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더 크게 보이는 거품은 가깝다는 뜻이고, 더 작게 보이는 거품은 더 멀다는 뜻이다. 세페이드 변광성, 초신성처럼 BAO 역시 먼 우주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표준 잣대가 되는 셈이다. 

 

BAO는 우주의 팽창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빛과 물질의 분리가 정확히 언제쯤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우주 거품의 스케일은 우주의 팽창률, 빛과 물질이 분리된 시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BAO의 실제 크기를 관측으로 확인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진화 모델을 검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최근 SDSS의 후속 프로젝트로 진행된 ‘확장된 바리온 음향 진동 분광 서베이(eBOSS, Extended Baryon Oscillation Spectroscopic Survey)’는 여전히 우리 우주의 70%가 암흑 에너지로 채워져 있으며 우주는 계속 더 빠르게 가속 팽창을 이어가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맨 처음 목동자리 보이드를 소개하면서 인용한 천문학자 앨더링의 농담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는 만약 인류가 텅 빈 거대한 보이드 한가운데 살고 있었다면 외부 은하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같이 멋진 천문학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재밌는 생각을 던졌다. 그의 진지한 농담은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 공간적 위치에 따라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천문학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천문학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위치뿐만이 아니다. 우주의 역사에서 하필 어느 시점에 우리가 존재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우주를 관측하는지, 시대도 정말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중의 우주에 살았다면, 우주는 지금보다 더 거대하게 팽창했을 것이다. 그나마 보이던 은하들도 모두 멀리 암흑 속으로 숨어버렸을지 모른다. 우리 은하 바깥에 다른 외부 은하란 게 존재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계속 커져만 가는 우주 속에서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저 외롭게 살아갔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매일 매순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우주를 미처 보지도 못한 채, 관측 가능한 우주 끝 너머 어둠 속으로 떠나보내는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다. 우주는 지금도 계속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먼 은하들과 별들은 계속 우리 우주의 지평선 너머로 도망가고 있다. 이미 놓쳐버린 우주의 빛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그대로 영원히 이별이다. 

 

우주는 매일 밤 조금씩 덜 아름다워지고 더 어두워져 가는 방향으로 나이를 먹고 있다. 매일 밤 모든 순간의 우주는 우리가 눈에 담을 수 있는 가장 밝고 아름다운 우주인 셈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1초 사이에 우주는 더 팽창하고 더 어두워진다. 우리가 매일 밤 우주를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eaf3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94d8

https://journals.aps.org/prd/abstract/10.1103/PhysRevD.103.083533

https://ui.adsabs.harvard.edu/link_gateway/2004MNRAS.350..517S/PUB_HTML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015.18583

https://academic.oup.com/mnrasl/article/455/1/L99/2589688

https://articles.adsabs.harvard.edu/full/1997AJ....114.1753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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