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한강공원 주변 경관에도, 차량 소통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강 교량이다. 현재 한강 남북을 잇는 교량의 디자인은 각기 다르지만 이전에는 그 모습이 다양하지 않았다. 그 분기점이 된 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잇따라 완공된 성수대교(1979), 성산대교(1980), 원효대교(1981) 등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의 한강 교량은 양화대교나 마포대교, 한남대교처럼 무수히 많은 기둥 위에 그냥 상판을 올려놓은 구조였다. 별다른 미를 추구하지 않았고 기술적 한계로 경간도 짧은 편이었다. 기술과 예산 문제로 한강다리 건설이 쉽지 않았던 60~70년대까지 교량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건널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일 년에 한두 달 홍수로 다리가 잠길 것을 감수하면서 싸고 빠르게 다리를 놓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반포 인근 잠수교가 그 예시다. 빠른 도하를 위한 집착에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년 남짓에 불과했던 시대상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어느정도 성장한 1970년대 후반에 들어와 먹고살 만 해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평범한 기존 교량이었다. 자연스럽게 다리도 예쁘게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경제도 튼튼해지고 기술 축적도 어느 정도 되었겠다, ‘디자인’이란 개념이 고려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계획·착공된 것이 성수대교와 성산대교다. 특히 성산대교에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김교만 선생이 참여하여 오늘날 외형상 특징이 된 반달형 구조물을 디자인했다. 다리 색도 주황색으로 칠하여 타 교량과 차별화했다. 이는 당시 매체의 표현을 빌리면 ‘건축·토목보다 디자인이 우선되었다는 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디렉터가 된 특이한 공사’였다.
또한 성수대교는 다리 색을 당시로선 파격적인 하늘색으로 칠하고, 게르버 트러스와 120m 장경간을 채택해 다리 아랫부분이 시원하게 뚫려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주었다. 성산대교 역시 장경간에 게르버 트러스, 그리고 트러스 외측의 반달형 구조물로 다른 한강교량과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었다. 무채색 일색이었던 교량을 처음부터 컬러풀하게 칠한 경우 역시 처음이었다. 완공된 두 다리는 지나는 시민들에게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지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옛 성수대교 건설 15년 만인 1994년 10월 특히 넓어 보였던 교각과 교각 사이의 상판이 한강으로 무너져 내려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산뜻해 보였던 하늘색은 흐린 하늘 아래 힘없이 끊겨 버린 성수대교를 지켜본 모든 사람에게 칙칙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산대교도 안전 D등급 판정을 받아 수많은 보수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태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실시된 안전진단에서 지하철 2호선 합정-당산역을 잇는 당산철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어 전면 철거 후 재시공 과정을 거쳤다. 디자이너의 스케치와 부실공사·부실관리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을 온몸으로 증명한 두 다리는 빠른 발전에 매몰되어 다른 필수 요소가 누락된 개발독재시기 압축 성장의 상징이며, 디자인뿐 아니라 교량 안전 분야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는 생각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디자인 와이너리]
가급적 피해야 하는 무료폰트의 특징 3가지
· [디자인 와이너리]
서울로7017를 부유하는 콘크리트 화분의 '거추장스러움'
· [디자인 와이너리]
BMW 키드니 그릴과 한글의 기묘한 공통점
· [디자인 와이너리]
광화문의 잃어버린 마지막 퍼즐 '월대'
· [디자인 와이너리]
잡스가 남긴 '디자인 유산'이 위대한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