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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병원에 마약성 약 방치, 책임 규정한 법안 통과는 아직

폐업 시 의약품·의료기기 처리를 서류로만 확인…마약류 아닌 의약품은 포함 안돼

2023.10.03(Tue) 08:00:00

[비즈한국] 마약류 퇴치가 국가적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여럿 나오고 있다. 그러나 폐병원에 향정신성의약품과 주사기 등이 방치된 채 발견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면서 의료기관 폐업 시 마약류를 포함한 의약품의 처리 절차가 미흡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마약류 유통을 차단하려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이를 직접 다루는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마약류 유통을 차단하려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이를 직접 다루는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의약품이 폐업 후에도 병원에 그대로 방치

 

9월 초 유튜브에는 ‘강원도 폐병원 1부’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2016년 휴업한 홍천의 한 요양병원을 방문한 유튜버는 “이 폐병원에 왔다 간 사람들의 글을 보고 오게 됐다”며 병원 내부를 공개했는데, 국소마취제로 쓰이는 리도카인을 비롯해 소비자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없는 응급 의약품들이 그대로 방치된 모습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앞서 5월에는 인천의 대형 재활병원이 폐업하면서 환자 이름·나이가 적힌 서류와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무방비하게 내버려둔 사실이 드러났다.

 

의료기관의 허술한 폐업 절차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출입 잠금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인터넷 방송 등에서 담력 소재로 활용되면서 폐병원은 우범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폐병원 내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폐병원에 방치된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어떤 형태로 악용될지 모른다.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수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폐병원 물품도 관리할 수 있도록 법령 관리에 나서겠다”고 답변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2500여 개의 의료기관이 폐업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9년 2503개, 2020년 2471개, 2021년 2569개, 2022년 1699개(8월 기준)였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재정난 등으로 의료기관이 규모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줄지어 폐업하면서 일부 미철거 폐병원에 남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노출 및 오용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다. 매체를 통해 폐병원이 소개되면 방문 인증을 하러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는 한다.

 

#의약품·의료기기 처리 절차, 서류로만 확인

 

현행법은 의료기관 폐업 절차를 어떻게 명시하고 있을까. 의료법 제40조에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업을 폐업하거나 1개월 이상 휴업하려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게 돼 있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신고서를 제출하면 지자체에서 검토를 거쳐 확인서를 발급해주는 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기관에서 나온 세탁물을 적절히 처리 완료했는지, 진료기록부 등을 적절하게 넘겼거나 직접 보관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 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별로 보건소 홈페이지에 세탁물 위탁처리대장과 진료기록 보관계획서 등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확인이 서류에 그치는 데다, 법령에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처리와 관련한 내용은 규정되지 않아 지자체가 폐업한 의료기관의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보건소 관계자는 “폐업 신고는 필요 서류만 구비되면 처리한다. 별도 현장 조사를 나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달 초 폐병원 내에서 전문의약품이 발견된 후 절차가 강화되거나 별도로 지시가 내려온 것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현행법은 일부 의약품, 의료기기와 관련해 폐업 시 양도 혹은 폐기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마약류·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특수의료장비 등이 해당된다. 폐업을 앞둔 의료기관은 이런 장비들의 처리 결과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서류를 중심으로 확인하는 데다, 마약류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일부 의약품은 제외되는 탓에 앞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폐병원에 버려지는 문제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향정신성의약품은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을 통해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통합관리 시스템상에 잔여량이 제로(0)가 된 것을 확인하고 폐업 절차를 진행한다”며 “마약류나 방사선 장비도 모두 등록 운영을 하기 때문에 시스템에서 정리가 된다면 굳이 직접 방문하는 절차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폐업 시 처리계획 확인 규정한 개정안, 아직 국회 계류

 

그러나 의료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통계를 조작할 수 있는 데다, 폐업 후에도 현장 점검이 이뤄지는 것이 드물어 의약품·의료기기에 대한 관리에 안일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약류 유통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마약류를 직접 다루는 의료기관의 폐업 시 확인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사용량을 잘못 보고하는 것까지 지자체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 이런 부분은 폐업과 상관없이 지자체에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주기적으로 점검하지는 않지만 비정기적으로 식약처와 함께 기획 점검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통합관리 시스템을 통해 어느 구의 어느 병원이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해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경우 스크리닝이 돼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폐업하는 의료기관의 의약품·의료기기의 처리에 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에는 폐업 신고 시 의료기관은 보유한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처리 방법·기한 등을 기재한 처리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하며, 지자체는 처리계획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처리계획서 미제출 혹은 미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현재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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