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필자는 15년 전부터 저작권 분쟁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자(또는 그 혐의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거나 합의 조건을 협상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겪었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한 인상으로 남았다. 저작권 사안에서는 다른 사건에 비해 침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더니, 좋은 것은 서로 나눠야지 그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것은 쩨쩨하다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인 것 같았다.
“저작물을 널리 사용해 저작권자 인지도를 높여줬으니, 침해로 인한 저작권자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은 약과다. 침해자가 저작권자를 상대로 “저작권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려고 협박한다”며 업무방해, 명예훼손, 강요 등 고소를 제기해 저작권자가 피의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원본을 모방해 제작된 카피캣임이 분명한 게임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저작권 침해를 부정했던 것도 의아했다.
물론 저작권법상 주요 개념인 창작성, 실질적 유사성, 의거성 등은 이른바 불확정개념이다. 업계 관행, 전문적·기술적·정책적 판단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므로, 각각의 요건 충족 여부를 엄격히 판단해 저작권 침해를 부정한 결론 자체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과거 법원 또는 주류 학설이 저작권법을 엄격하게 해석해 저작권 침해의 범위를 좁혔던 것은 법리적으로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이는 그 당시 우리나라 게임계가 미국, 일본 게임의 뒤를 쫓아가면서 양적 확대를 추구하고 있었고, 이를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업계 구조나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게임업계 매출과 이익, 고용인원 등 주요 지표에서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고, 게임이 국내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남의 게임을 따라 만드는 것은 국내 게임 산업에서 득보다 실이 많아졌다. 과거 모방을 너그럽게 인정했던 법원이나 국내 학설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킹닷컴(팜히어로사가)’ 대 ‘아보카도(포레스트마니아)’ 사건이다(대법원 2017다212095 판결, 팜히어로사가 사건). 이는 게임 속 특정한 타일이 3개 이상의 직선으로 연결되면 함께 사라지면서 그 수만큼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의 ‘매치 3 게임’에 관한 사건이다.
위 사건 판결 이전까지 게임의 규칙은 아이디어의 영역이어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를 모방해 게임을 제작하더라도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넷마블게임즈 ‘모두의마블’이 보드게임 ‘부루마블’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소송이 제기된 사건(이하, ‘모두의마블 사건’)에서 서울고법(2017나2064157 확정 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부루마블 측 손해배상 청구 등을 단칼에 기각시켰다.
게임은 게임규칙,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게임 맵의 디자인 등 다양한 소재 내지 소재 저작물로 이루어진 결합저작물 내지 편집저작물이고, 그 중 게임규칙은 추상적인 게임의 개념이나 장르, 게임의 전개방식 등을 결정하는 도구로서 게임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 저작권법상 독립적인 보호객체인 저작물에는 해당하지 않는 일종의 아이디어 영역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게임의 경우 게임을 하는 방법이나 게임규칙, 진행방식 등 게임에 관한 기본 원리나 아이디어까지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비록 그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고 원칙적으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게임이 출시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이 유사한 게임규칙을 근거로 다른 게임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
반면, 대법원은 매치 3 게임이라는 단순한 형식의 캐주얼 게임 간의 분쟁이기 때문에 규칙의 모방 여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팜히어로사가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모두의마블 사건과 모순되어 보인다. 대법원이 달리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팜히어로사가 사건의 대법원 판결 중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게임물은 저작자의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선택·배열하고 조합함으로써 다른 게임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게임물의 창작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게임물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각각의 창작성을 고려함은 물론이고, 구성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선택·배열되고 조합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그 게임물 자체가 다른 게임물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즉, 대법원은 게임 규칙이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이 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게임의 규칙 등 여러 요소들이 제작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그 게임물이 다른 게임물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저작물로 보호를 받게 된다고 판시했다.
이 판시 내용 중 게임물의 창작성 여부를 판단할 때 ‘게임물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각각의 창작성을 고려’한다는 부분은 기존의 입장을 충실히 설명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팜히어로사가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배척될 운명이었으나, 대법원은 규칙을 포함한 여러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창작적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판시해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팜히어로사가 판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게임의 규칙을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견해, △게임의 규칙은 보호대상이 될 수 없고, 위 판결은 매치 3 게임이라는 단순한 게임(캐주얼) 간의 분쟁사안에서 규칙과 표현형식이 밀접하게 결합된 특수한 사안에 불과하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위 판결이 시장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위 판결 이후 게임업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 판결을 보고 N사의 L게임에서 보여지는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도 저작권법으로 보호될 수 있겠다거나, 보호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게임은 저작권 외에 부정경쟁방지법으로도 보호되나, 저작권의 보호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될 경우 손해배상 등 구제의 폭이 넓어지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위 판결이 소송 실무에서 가져오는 영향도 매우 크다.
이 글의 결론을 내자.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법리적인 해석, 결론도 달라졌다. 법학은 현실에 봉사하는 학문이므로, 이러한 경향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국내에서도 참신하고 좋은 게임이 출시돼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독창성, 기획성 등 게임의 품질이 논의되는 상황이 오기를 희망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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