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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 잇단 압수수색, 변호사업계 "비밀유지권 도입" 목소리

변 "기업 기밀문건도 가져가려해" vs 검 "로펌에 문건 숨겨"…국회 관련 법안 심사중

2023.09.25(Mon) 10:19:18

[비즈한국] “변호사들에게는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검찰이 최근 들어 자꾸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자료를 가져가는 경우가 있어 심각하게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만난 대한변호사협회의 한 간부는 비밀유지권(비닉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이같이 말했다. 변호사의 특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를 맡긴 의뢰인, 즉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밀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비닉권이 없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로펌에게 비닉권이 있다 보니 아예 기업들이 로펌에 기밀 자료를 숨겨놓는 경우도 있었다.” 거꾸로 로펌 압수수색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검사의 토로다. 그는 “검찰이 수사할 내용에 대해 사전에 증거를 인멸하라고 알려주는 것도 불법이지만 이런 조언이 ‘핵심’이라며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게 최근 변호사업계의 조력 수준”이라며 “수임료 등 돈을 벌기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공모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28일 서울 서초구 정곡빌딩 앞에서 김형훈 대한 변호사협회장을 비롯한 임원과 소속변호사들이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대형로펌) 압수수색과 법원의 영장발부를 규탄하고 있다. 뒤로 서울지방검찰청이 보인다. 사진=이종현 기자

 

#2016년 롯데그룹 탈세 의혹 수사 때 시작

 

검찰이 대형 로펌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들이닥친 것은 지난 2016년이 처음이다. 당시 롯데그룹 탈세 의혹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은 “확인할 자료가 있다”며 처음으로 법무법인 율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2018년과 2019년 김앤장이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2018년에는 사법농단 수사 당시 일본 강제징용 사건 지연 의혹으로, 2019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각각 압수수색을 받았다. 지난해엔 대장동 범죄 증거를 찾는다며 태평양에도 검찰이 들이닥쳤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의 범죄수익 은닉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김 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가 공모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에도 로펌과 변호사를 겨눈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한 달 전인 지난 8월 24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 재판에서 알리바이 위증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 전 부원장 측 이 아무개 변호사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도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율촌은 SM 인수전에 참여한 카카오에 하이브 공개매수 저지 관련 법률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사경은 이 과정에 확인할 것이 있다며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변호사업계 “비닉권 도입 필요성 절실”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변호사·의뢰인 간 비닉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변호사와의 상담 내용 등 의뢰인의 비밀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형사 사건의 경우 의뢰인에게 검찰 수사 흐름을 전망해주면서 주요 증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의뢰인이 우리 로펌을 찾기 전 핵심 증거인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렸는데 유리한 증거가 필요해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잠수부를 동원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변호사와 의뢰인은 검찰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을 많이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비밀을 얘기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변호사를 지켜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로펌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하는 만큼 적법하다고도 설명한다. 앞선 검사는 “변호사들 사무실에다가 기업 관련 기밀 자료를 숨겨놓고는 ‘검토하려고 보낸 것’이라고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특히 수임료가 높거나 대형 기업 관련 사건의 경우 이런 일이 더 생기는데 압수수색을 한다고 해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모두 기소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에 그쳤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28일 검찰의 대형 로펌 압수수색과 관련해 수사당국과 사법부를 규탄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훈 회장은 “검찰이 수사상 편의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한 법률 자문 내역을 입수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변호사의 비밀유지권과 관련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소속 여당 의원 11명,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범야권 의원 14명이 올해 변호사와 의뢰인의 상담 내용 등이 담긴 서류나 자료 등을 공개·제출하지 못하도록 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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