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카카오 재무그룹장이 법인카드로 1억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구매했다가 적발된 사건 이후 카카오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징계로 그동안 임원 보수로도 잡히지 않던 ‘묻지마 수당’ 형태의 법인카드 운용 실태도 민낯을 드러냈다. 카카오 노조는 현행 임원 선임 방식이나 보상 제도를 개선하는 논의 과정에서 사측과 합의에 실패했다며 해당 임원을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카카오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두고도 사내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법카로 1억 ‘현질’한 부사장, “사용 항목엔 부합” 판단한 회사
카카오 재무그룹장 A 부사장(CFO)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 불거진 지 약 2주 만에 카카오 노조가 해당 임원을 고발 조치하고 사측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 19일 A 부사장을 배임·횡령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카카오 노조 측은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임원 보상 제도의 투명성 강화, 경영 활동 감시, 임원 선임 과정의 투명성 확보 및 크루(직원)와의 논의 등을 사측에 제안했음에도 개선 방안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규탄했다.
이는 카카오가 임원들의 법인카드 이용을 제한하는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나온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측은 하루 전날인 18일 임직원들에게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한 별도 공지를 내렸다. 법인카드 사용처를 세분화하고 업무추진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서승욱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 지회장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임원에게 적용되는 보상 제도 개선 방안이나 경영 활동 감시 등의 요구에 대해서 정확하게 피드백이 나오지 않았다”며 “전수 조사와 관련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범위까지 진행했는지 애매하게 밝히고 있다. 사측에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임원 전수 조사 결과 위법한 사항을 추가로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지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9월 초 카카오 A 부사장이 법인카드로 1억 원어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해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파장이 일었다. 카카오는 1일 익명의 징계 대상자가 법인카드 오용으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의 징계 심의 결과를 사내에 공지했다. 당시 공지에는 당사자와 금액, 내용 등 주요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후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자 직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A 부사장은 지난해 3월 카카오게임즈에서 카카오로 자리를 옮겨 1년 반 가까이 회사의 재무를 책임져온 인사다. 2015년 카카오에 입사한 뒤 2018년 카카오커머스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는데 이어 3년간 카카오게임즈에서 CFO로 재직하며 기업공개(IPO) 성사를 주도했다. 9월 8일 카카오 노조는 임원의 법인카드 결제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사내 게시판을 통해 회사에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사내 반발 잠재우기엔 ‘역부족’
A 부사장이 법인카드로 1억 원이나 되는 금액을 게임에 사용할 수 있었던 건 해당 법인카드가 임원들에게 구체적인 제한 없이 주어지는 수당 성격의 카드였기 때문이다. 한도 내에서 사용할 경우 별도의 소명이나 증빙도 필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조는 ‘법인카드 사용 항목에 부합했다’는 사측의 판단에 대해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카카오는 징계 심의 결과를 알리는 사내 공지에서 “A 크루의 법인카드 사용 행위가 항목에는 부합하나, 사용 규모가 적정 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A 부사장은 카카오게임즈가 운영하는 게임 아이템 구매에 회삿돈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카카오게임즈 게임에 결제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카카오 공동체 서비스 이용’ 항목에는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일반적인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 부사장은 현재 보직 해임된 상태다. 사측에 따르면 부정하게 사용된 법인카드 금액은 전액 회수 조치됐다. 하지만 그룹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 방식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재무를 총괄하는 부사장이 법인카드를 유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임직원들의 반발도 극에 달했다는 평가다.
최근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엑스엘게임즈의 구조조정에 이어 카카오 골프 플랫폼인 카카오VX도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카카오 직원들은 7월, 8월 두 차례에 걸쳐 책임 경영과 고용 불안 해소를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직 3개월의 조치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카카오 노조는 “계열사 일부가 재무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희망퇴직 등 직접적인 고용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와중에 재무책임자가 시간과 돈을 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다수 카카오 직원들과 노조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금액 환수, 3개월 정직 등 해당 임원에 대한 조치는 이뤄진 상태”라며 새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는 “기존에 없던 기준을 새롭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세부적인 내용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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