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은하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블랙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400만 배 정도 되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 그리고 우리 은하 속 모든 별은 이 거대한 블랙홀의 중력에 붙잡힌 채 함께 궤도를 돌고 있다. 태양 질량의 400만 배만 되어도 아주 무겁게 느껴지지만, 사실 초거대 질량 블랙홀들의 세계에서 우리 은하의 블랙홀은 꽤 가벼운 편에 속한다. 태양 질량의 수억, 수십억 배에 달하는 더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들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괴물의 탄생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작은 블랙홀들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반죽하면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추정하지만, 이것만으론 지금의 거대한 블랙홀의 질량을 채우지 못한다. 그보다 훨씬 더 빠른 폭풍 성장의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최근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130억 년 전의 아주 먼 과거부터 이미 태양 질량의 1000만 배 수준에 이르는 꽤 많이 성장한 블랙홀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빅뱅 이후 10억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절,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세월에 이 정도로 무거운 블랙홀이 반죽된 걸까? 그 폭풍 성장의 비밀은 블랙홀 바깥 훨씬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 거대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 끝자락에서 발견된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를 소개한다.
아주 먼 우주에서 폭풍 성장을 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가스와 먼지가 은하 중심 블랙홀에 유입되면서 아주 밝은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래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놓인 밝은 별처럼 보일 정도다. 이러한 천체를 천문학에선 퀘이사라고 부른다. 아주 강력한 활동성 은하라고 볼 수 있다.
활동성 은하 중심 블랙홀의 식욕은 단순히 그 은하 안에 있는 가스 구름만 노리지 않는다. 아예 은하를 벗어나 바깥에서 유입되는 가스 물질의 흐름까지 빠르게 집어삼킨다. 특히 우주 거대 구조를 보면 많은 은하들이 거대한 그물처럼 긴 필라멘트를 따라 분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를 타고 은하 주변에서 많은 가스 물질이 유입될 수 있다. 이러한 유입은 은하 중심 블랙홀을 더 빠르게 ‘벌크업’ 시킨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 역시 이런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속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퀘이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주변에 비해 은하들의 밀도가 더 높은 영역을 선호할 것이라 추정했다. 하지만 먼 우주에서 실제 이런 경향을 보이는지는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
새로운 증거를 찾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으로 아주 먼 우주의 퀘이사를 뒤졌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는 아주 폭발적인 별 탄생과 강력한 퀘이사들이 가득했다. 지금에 비해 훨씬 더 무겁고 밝은 1세대 별들은 아주 눈부시게 초기 우주를 비췄다. 또 짧은 진화 과정을 마치고 강력한 감마선, 자외선 빛을 내뿜으며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한편 초기 우주에서 폭풍 성장을 이어갔을 퀘이사들 역시 주변 우주 공간을 더 밝고 뜨겁게 달궜다. 그 결과 밝은 별과 은하 주변 원자들은 다시 양성자, 전자로 쪼개지며 이온화되는 시기를 겪게 된다. 천문학에서는 이를 재이온화 시기라고 부른다.
굳이 ‘재’이온화 시기라고 부르는 것은 빅뱅 직후 맨 처음에는 원자로 뭉치지 못한 채 양성자와 전자가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우주가 잠시 우주 팽창과 함께 열기가 식고 따로 놀던 양성자, 전자가 결합하면서 안정적인 원자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이어진 폭발적인 별 탄생과 퀘이사 활동으로 인해 ‘다시’ 양성자, 전자로 쪼개졌다. 그래서 굳이 한 번 더 이온화가 되었다는 뜻에서 이 시기를 ‘재’이온화 시기라고 부른다.
천문학자들은 재이온화 시기 직후 우주의 은하들을 관측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 ASPIRE(A SPectroscopic survey of biased halos In the Reionization Era)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이 시기에 우주를 밝게 비추며 이온화한 원시 퀘이사 25개 주변의 우주를 관측하는 것이다. 최근 그 첫 번째 퀘이사 J0305–3150에 대한 따끈따끈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퀘이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대략 태양 질량의 6억에서 20억 배 사이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특히 퀘이사 주변 은하들의 분포 밀도에 주목했다. 그리고 정말 퀘이사가 주변에 비해 은하들이 더 많이 분포하는 바글바글한 영역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했다. 첫 번째 타깃이 된 퀘이사 주변 환경은 과연 어떨까?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이 퀘이사 주변 하늘, 비슷한 거리에 놓인 원시 은하 41개를 발견했다. 그 중에서 이 퀘이사를 포함해 비슷한 거리에 놓인 은하 10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모두 빅뱅 이후 우주의 나이가 약 8억 3000만 년밖에 안 되었을 때의 은하들이다. 놀랍게도 이 은하들은 아무렇게나 분포하지 않는다. 마치 소시지처럼 길게 한 줄로 놓여 있다. 기다랗게 이어진 은하들의 기차 행렬은 그 전체 길이만 300만 광년에 달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서는 은하들이 길게 이어진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를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이른 시기의 초기 우주에서 이런 기다란 필라멘트가 발견된 건 처음이다. 시뮬레이션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던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기다란 필라멘트의 징후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흘러들어온 은하들이 한데 모여 가까운 우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대한 은하단으로 성장할 것이라 추정한다.
이번에 타깃이 된 퀘이사는 사진 속 오른쪽 위에서 아주 밝게 빛나는 곳이다. 게다가 이번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이 퀘이사 주변 아주 가까운 영역에서 숨어 있던 은하 세 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 퀘이사는 확실히 주변의 텅 빈 우주에 비해 은하들이 더 바글바글하게 모인 곳에서 살고 있다. 주변 은하들에서 퀘이사 중심으로 많은 가스 물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폭풍 성장하는 과정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더 거대한 스케일에서 초기 우주의 거대 구조 필라멘트를 따라 추가 가스 물질도 유입되고 있을 것이다.
초기 우주의 퀘이사가 지속적으로 폭풍 성장을 하기 위해 주변에 먹이를 먹여주는 이웃 은하들이 있어야 한다면, 왜 그간의 관측에선 이런 경향을 쉽게 볼 수 없었을까?
지나치게 격렬하게 성장하는 퀘이사의 활동 자체가 오히려 주변에 은하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서다. 퀘이사에서 분출된 에너지로 인해 주변 우주가 깨끗하게 불려 날아가기도 한다. 말끔하게 불려 나간 영역에서는 새로운 은하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2021년에 발표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은하 중심 블랙홀의 에너지 분출은 그 주변 작은 이웃 은하들의 운명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거대한 은하 3000개와 주변 이웃한 위성 은하 1만 2000개를 대상으로 통계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가 참 재밌는데, 중심 은하 회전축 방향에 있는 이웃 은하들은 별 탄생이 계속 활발하게 벌어지는 반면 중심 은하 회전축에 수직 방향으로 놓인 이웃 은하들은 오히려 별 탄생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중심의 은하 속 블랙홀이 회전축을 따라 위아래로 에너지를 토해내며 은하 주변 뜨거운 가스 물질을 다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작은 이웃 은하들은 가스 물질로 가득한 우주 공간을 부유하며, 그 가스 물질에 의한 일종의 유체 압력(램 압력)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작은 이웃 은하들은 자신이 품고 있던 신선한 가스 물질을 밖으로 흘려보낸다. 그런데 중심의 은하 속 블랙홀이 위아래로 에너지를 토해내면서 주변 작은 은하들의 별 탄생을 방해하는 은하 간 가스 물질을 말끔히 정리해주는 셈이다. 그래서 블랙홀이 에너지를 토해내는 회전축 방향을 따라 분포하는 이웃 은하들은 꾸준히 별이 태어나지만, 미처 은하 간 가스 물질이 청소되지 못한 다른 방향에 있는 이웃 은하들은 결국 램 압력으로 인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처럼 블랙홀의 진화는 아주 복잡하다. 주변 환경에 의해서 블랙홀, 퀘이사도 먹잇감을 얻고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렇게 성장한 퀘이사 자체가 반대로 주변 환경을 청소해버리는 효과도 일으킨다. 이런 정반대 방향의 두 가지 효과가 함께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관측적으로 명확한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건 아주 까다롭다. 이번 ASPIRE 연구팀은 처음으로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재이온화 시기 초기의 퀘이사 주변 우주 거대 구조의 존재를 발견했다. 하지만 아직 퀘이사 딱 하나일 뿐이다. 남아 있는 24개의 퀘이사를 추가 분석한다면 조금 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우린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 한해서만 그물 모양으로 은하들이 얽혀 분포하는 우주 거대 구조의 모습을 파악했다. 그런데 이제는 제임스 웹과 같은 차세대 망원경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빅뱅 직후 초기의 거대 구조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그간 관측으로 보지 못한, 오직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만 확인한 구조다. 그동안 우리 우주를 너무나 잘 재현했다고 생각한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 속, 빅뱅 직후의 모습으로 계산된 스냅숏들이 우리 우주에도 과거에 존재했을까? 드디어 시뮬레이션으로 우주를 보는 계산 천문학과 실제 우주를 바라보는 관측 천문학이 하나의 답으로 통합되는 순간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cd6f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c9c8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00159-016-0100-3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545-9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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