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료폰트는 공개된 경로를 통해 금전적 대가를 치르지 않고 다운로드하여 원하는 용도에 자유롭게 사용해도 어떠한 법이나 규칙에 저촉되지 않는 폰트를 말한다. 똑같은 오픈 폰트라도 라이선스에 따라 미세한 제한은 있지만, 수정 후 재배포 같은 복잡한 문제가 아닌 단순 사용만 한다면 몰라도 상관없는 수준이다. 개인 사용은 무료이나 단체·상업 사용은 유료인 폰트도 있는데 편의상 모두 무료폰트로 분류하는 편이다.
무료폰트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크게 세 가지다. ‘G마켓 산스’처럼 특정 단체에서 폰트 회사에 제작을 의뢰하여 배포하는 경우가 있고 개인이 자유롭게 제작해 배포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은 ‘Yoon대한체’처럼 폰트 회사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다.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회사가 제작한 무료폰트는 의문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경력이 부족한 개인이 임의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료폰트 대부분의 퀄리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무료폰트’ 하면 단어 자체가 어딘가 저렴하고, 품질 기준이 약간 낮아도 별일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이다. 클라이언트가 있는 전용서체나 판매용 서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용 범위가 비교적 한정적인 만큼 책임 소재 파악과 수정이 쉽다. 그러나 무료폰트는 한번 공개되면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언제까지 쓰일지 모른다. 잘못 만들면 ‘시각디자인’이란 강에 회수 불가능한 오염 요소를 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퀄리티 낮은 무료폰트란 무엇인가?
#조형 감각이 부족하다
폰트에 꼭 필요한 균일함을 갖추지 못한 폰트다. 자소별 크기감이 들쭉날쭉 하다든지, 자간 혹은 공백이 비정상적으로 좁거나 넓고, 특징적인 부분의 일관성이 부족한 것. 가령 명조라면 부리와 맺음이 중요한데 이 부분 디자인이나 크기의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경우다.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생략되어 있다
폰트를 ‘멋’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좋지만 어디까지나 '누가 봐도 그 글자임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디자이너 개인의 감성으로 꼭 필요한 부분의 디테일을 생략한 상태로(가령 '않'의 ᆭ 중 ㅎ 꼭지를 생략, 중성 가로줄기를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얇게 만듦, 세로모임꼴 받친글자에서 가로보를 생략 등) 배포하는 것은 금물이다. 기본적인 문장부호도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중요한 순간에 판독성 문제로 이용자가 손해를 보거나 잘못되면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 문제가 발생한다
프로그램에서 디자인된 폰트 파일은 별도의 제너레이팅 과정을 거쳐 TTF/OTF 등의 파일로 탄생한다. 제대로 된 제너레이팅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특정 프로그램이나 운영체제에서 설치가 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검수가 부족하면 오·탈자가 무더기로 출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가’ 자리에 ‘각’을 잘못 넣으면 폰트를 타이핑할 때도 잘못된 상태로 출력된다.
유료와 무료의 활용 빈도를 보면 후자가 높기에, 무료폰트를 제작 배포하려는 디자이너는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유료폰트의 수준이 높더라도 무료폰트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되면 사용 인구의 미감 역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 역시 다양한 폰트를 비교하면서 퀄리티를 좌우하는 요소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면 더욱 좋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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