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연령대 높은 게이머라면 어렸을 때 대부분 미국, 일본 등 외산 게임을 했을 것이다. 과거엔 외산 게임의 품질이 국산 게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게임 화면에서 한글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필자도 인터플레이의 ‘폴아웃’을 플레이할 때 영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의미를 추측했고, 코나미의 ‘삼국지’를 할 땐 옥편을 보며 장수의 이름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한글화’하지 않은 외산 게임은 관심 밖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2000년대 초반부턴 국산 온라인 게임이 시장을 장악했다. 다만 국산은 PC 게임, 그 중에서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편중됐고 콘솔 게임 시장에선 국산을 찾아볼 수 없었다. 패키지 PC 게임에선 ‘창세기전 시리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등 몇몇 인기작이 있었지만, 버그 등 품질 문제와 출시 연기 등으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 같은 편중 문제는 온라인 게임의 발전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주요 게임사의 매출이 조 단위를 기록하는 등 외적으로 보면 국내 게임 산업은 발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필자처럼 게임의 연출과 서사를 중요시하는 싱글 플레이 성향의 사람에게는 유저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국산 온라인 게임은 흥미롭지 않다. 국산 게임의 상술을 비판하는 유저도 늘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 제네시스 한 대 값 태웠다”는 직장인이나 “아이템 풀세트 맞추려고 100억 원을 지출했다”는 자산가도 만나봤지만, 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비판적으로 보면, 국산 게임은 외국보다 개발능력은 뒤쳐지지만 MMORPG 장르에서 비즈니스 모델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외형 성장했다고 평할 수 있다.
갑자기 국산 게임의 동향을 꺼낸 이유는 국내 게임 산업이 성장기과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든 조짐이 보여서다. 게임사 주가가 하락한 점이나, 게임사가 게임 개발보다 소송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다. 최근 법원은 저작권 침해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을 폭넓게 인정해 게임 산업에 우호적인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게임사가 정당한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서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게임사의 개발 능력을 보면 게임사가 개발보다 법적 분쟁에 몰두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국산 게임 역시 외산 게임의 카피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 산업에 영향을 미친 주요 판결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게임 산업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국산 게임이 외산 게임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지만 논리적 조작과 법리에 의해 저작권 침해를 피한 ‘신야구(네오플)’ 사건이다.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는 코나미가 1994년부터 발매한 유명 야구 게임 시리즈다. 게임 내 선수는 2등신 캐릭터(SD)로 등장한다. 신야구는 네오플이 2004년 개발한 야구 게임이다. 국내 최초 온라인 야구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화제를 모았는데, 신야구에도 SD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위 사진은 서울중앙지법 2006. 7. 20. 선고 2005가합76758 판결에서 발췌한 것이다. 사진을 보면 신야구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참고해 개발한 것은 명백해 보인다. 나아가 신야구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두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둘 다 귀여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점, 큰 머리와 작은 몸체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 부분의 형태가 타원형에 가까우며, 몸체는 어깨와 목을 생략한 채 하체 부분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원추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둥글게 마무리했고, 하단부에 허리벨트를 배치함으로써 상·하체가 구분돼 있으며…(중략) 야구 게임 역할에 필요한 장비의 모양, 타격과 투구 등 정지 동작이 유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두 게임에 등장하는 SD(Super Deformed, 2등신 표현) 캐릭터가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SD 캐릭터가 유사하다는 점만으론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저작권 침해의 요건이 되는 실질적 유사성의 비교 대상은 어디까지나 새로이 창작성을 부여한 부분이다. 하지만 SD 캐릭터는 여러 매체에서 사용한 표현 양식이므로,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 등장하는 SD 캐릭터는 창작성이 결여됐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코나미)의 캐릭터가 출시되기 이전이나…(중략) 2000년경 이전에 만화, 게임, 인형 등에서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 것이고, 장비의 형태나 경기 동작은 야구 게임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유사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유사점만으로는 원고와 피고 각 캐릭터의 창작적 표현형식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해 저작권 침해를 부정했다.
법원이 저작권 침해의 범위를 엄격하게 판단한 건, 결과적으로 외산 게임과의 표절 시비를 해결해 국산 온라인 게임의 발전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유저 입장에선 기시감을 떨칠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신야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비스를 종료했다.
재밌는 점은 신야구 사건의 소송을 제기한 코나미를 향한 국내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코나미가 일본 기업이어서일 수도 있고, 코나미가 일본 스포츠 선수 라이선스를 받는 과정에서 다른 게임사를 배제한 전력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필자 생각에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게임 산업에서 서비스 성패는 개발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런데 코나미가 게임 산업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저작권 등을 통해 기득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게 보인 것이다. 게임 산업에서 소 제기를 할 때는 설령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해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시장 초기, 법원은 저작권 침해 범위를 좁게 인정해 결과적으로 국내 게임에 도움을 줬다. 그런데 법원의 태도에 최근 변화가 생겼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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