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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리가 외계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 뜻밖의 이유

지구 자체의 조건뿐 아니라 외부 조건도 살펴봐야…행성 배치가 태양계 같은 곳은 극히 드물어

2023.08.28(Mon) 09:54:50

[비즈한국] 왜 우린 지구 바깥 생명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까? 지구가 정말 그렇게 특별한 곳일까? 흔히 지구의 특별함을 이야기할 때, 지구 자체의 조건을 꼽는다. 지구의 적당한 크기와 중력, 태양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거리, 또는 지구 곁을 도는 거대한 위성 달. 그런데 어쩌면 지구뿐 아니라 그 안팎을 도는 태양계 다른 행성들의 존재도 지구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외계행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더 제대로 판단하려면 단순히 그 행성 하나만의 조건이 아니라 같은 별을 맴도는 주변 다른 행성들의 조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 우리 태양계의 경우 가장 안쪽에는 작은 암석 행성들, 바깥에는 덩치 큰 가스 행성들이 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행성들이 크기 순서대로 꽤 잘 정렬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계는 어떨까?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우리 태양계처럼 행성들이 줄을 잘 서 있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어쩌면 우리 지구가 특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뜻밖에도 잘 놓인 행성들의 배치는 아닐까? 

 

행성들의 배치 순서 관점에서 지구 바깥 외계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따져보자.

 

옛날이야기부터 하나 해보겠다. 18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티티우스,와 수학자 요한 보데는 태양계 행성들의 배치에 어떤 수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알려져 있던 태양계 행성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수금지화목토가 전부였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를 1로 했을 때, 다른 행성들의 궤도 크기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성: 0.4 

금성: 0.7 

지구: 1.0 

화성: 1.6

목성: 5.2 

토성: 10.0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숫자들 속에서 티티우스와 보데는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수성의 궤도 크기 0.4에 0.3을 한 번만 더 하면 금성의 궤도 크기 0.7이 나온다. 다시 0.3을 한 번 더 더하면 지구의 궤도 크기 1.0이 된다. 이번엔 1.0에 0.3을 두 번 더하면 화성 궤도 크기 1.6이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0.3을 네 번, 즉 1.2를 더 더하면 1.6+1.2=2.8이 된다. 2.8에 해당하는 행성은 없는데? 아니, 멀찍이 벌어진 화성과 목성 사이 태양으로부터 2.8 정도 거리에 떨어진 작은 행성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이번엔 2.8에 0.3을 여덟 번, 2.4를 더 더하면 2.8+2.4=5.2, 딱 목성 궤도 크기가 된다! 또 다시 5.2에 0.3을 열여섯 번, 4.8을 더하면 5.2+4.8=10.0, 또 이번엔 토성 궤도 크기가 된다!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티티우스와 보데는 0.4+0.3×2n의 방식으로 n번째 행성의 위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단 수성은 n=-∞, 금성부터 n=0으로 시작.) 이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행성의 위치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1781년 토성 너머 천왕성이 발견되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망원경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최초의 행성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천왕성은 티티우스와 보데가 예측한 19.6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1801년 1월 1일 이번엔 화성과 목성 사이 2.8 정도 위치에서 소행성 세레스가 발견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화성과 목성 궤도 틈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행성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연달아 두 번이나 예측이 적중하면서 티티우스와 보데의 추측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새로운 태양계 행성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도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많은 행성 사냥꾼이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을 활용해 새로운 행성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티티우스-보데 법칙으로 예측한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 크기(빨간색)와 실제 관측된 위치(파란색).


하지만 뒤이어 해왕성, 명왕성 등 여러 천체들이 발견되면서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은 적중률이 떨어졌다. 이들이 실제 발견된 위치는 티티우스-보데 법칙이 예측한 곳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현재 많은 천문학자들은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이 아무런 물리적인 근거가 없는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운 좋게 행성 몇 개에만 값이 잘 맞았을 뿐, 지금은 천문학 역사의 재밌는 스캔들로 여겨진다. 비록 물리학적 원리까지 파고드는 시도를 하진 않았지만, 행성들의 배치 관계를 수학적으로나마 분석해보려고 시도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 스캔들 이후로 행성들의 배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TRAPPIST-1 별 주변에서 7개의 외계행성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처럼 하나 이상의 행성을 함께 거느린 다중 외계행성 시스템도 많이 발견된다. 사진=NASA/JPL-Caltech


1990년대가 되면서 드디어 인류는 태양계 바깥 외계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행성은 고작 태양계 행성이 전부였다. 그런데 태양계 바깥 다른 행성들을 보게 되면서, 우리 태양계의 모습을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 개가 넘는 외계행성과 후보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별 주변에 외계행성이 두 개 이상 있는 다중 행성계도 있다. 현재까지 외계행성 두 개 이상이 확인된 다중 행성계는 850개 정도다. 

 

사실 외계행성이 발견되기 전까지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형태가 지극히 평범한 사례일 거라 생각했다. 중심 별 근처는 온도가 높다. 금방 증발하기 쉬운 가벼운 가스나 수증기는 살아남지 못했다. 높은 온도를 버틸 수 있는 암석, 금속 성분만 별 곁에 머물게 되었고, 그것들이 모여 별 근처에는 높은 밀도의 작은 암석 행성, 금속 행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중심 별에서 멀리 벗어나면 온도가 조금씩 낮아진다. 가벼운 가스와 수증기도 다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다. 이들이 뭉치면서 낮은 밀도의 거대한 가스 행성이 만들어진다. 태양 근처 안쪽에는 수금지화 모두 지구형 암석 행성, 태양계 외곽으로 가면 목토천해 모두 목성형 가스 행성, 얼음 행성이다. 이처럼 천문학자들은 안쪽에는 작은 행성, 바깥에는 큰 행성이 배열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른 별 곁을 도는 외계행성들의 배치는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우리 태양계처럼 안쪽에 작은 행성, 바깥쪽에 큰 행성이 배열된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행성들의 크기와 배치 순서에 따라 행성계의 타입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사진=NCCR PlanetS, Tobias Stierli

 

천문학자들은 행성계를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행성들로만 이루어진 경우(Similar), 크고 작은 행성들 순서가 뒤섞여있는 경우(Mixed), 안쪽에 큰 행성 바깥쪽에 작은 행성이 있는 경우(Anti-ordered), 그리고 우리 태양계처럼 안쪽에 작은 행성 바깥쪽에 큰 행성이 있는 경우(Ordered). 우리 태양계처럼 행성들이 크기에 따라 정렬된 경우는 1%밖에 안 된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행성들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제일 흔하다. 대표적으로 행성 일곱 개가 발견된 TRAPPIST-1 행성계가 있다. 태양보다 훨씬 작은 별 곁에 비슷한 크기의 지구형 암석 행성들이 함께 맴돌고 있다. 훨씬 거대한 별 곁에서는 모두 목성처럼 덩치 큰 행성들만 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역시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젠 컴퓨터 시뮬레이션 덕분에 이런 행성들의 배치에 어떤 조건들이 영향을 주는지, 더 세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갓 태어난 어린 별 주변 먼지 원반의 질량, 금속 원소의 함량,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행성들끼리 주고받는 역학적 관계까지. 굉장히 복잡한 요인들이 행성의 배치 상태에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크기의 행성들이 섞여 있는 경우, 행성들의 배치가 대부분 원래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행성들의 순서가 바뀌었다. 흥미롭게도 먼지 원반 속 행성들끼리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원래는 비교적 외곽을 떠돌던 덩치 큰 가스 행성들이 서서히 속도가 느려지고 더 안쪽으로 이동하는 행성 이주 현상이 확인된다. 그래서 원래는 크고 작은 행성들이 뒤죽박죽 배열되어 있던 Mixed 행성계가 주로 안쪽에 큰 행성, 바깥쪽에 작은 행성이 몰려있는 Anti-ordered 타입으로 바뀌기도 한다. 반면 우리 태양계처럼 Ordered 타입으로 바뀌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태양계 행성은 안쪽에 작은 암석형 행성, 바깥쪽에 큰 가스형 행성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외계행성들에서는 찾기 어려운 아주 드문 경우로 보인다. 사진=NASA/JPL-Caltech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비슷한 크기의 행성들로만 이루어진 Similar 케이스일 때, 중심 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돌고 있는 해비터블존 행성이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른 케이스들에 비해 액체 바다를 머금고 있는 해비터블존 행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번 발견이 맞다면, 앞으로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선 주로 Similar 케이스에 해당하는 행성계들 위주로 찾아보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형 행성들만 맴돌고 있는 TRAPPIST-1에서는 최소 세 개 이상의 행성들이 해비터블존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최근 제임스 웹 관측에 따르면, 모두가 기대했던 이 행성들은 대기권조차 존재하지 않는 메마른 돌덩어리 행성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과연 Similar 케이스의 행성계를 주로 찾는 것이 좋은 전략일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1994년 목성 근처를 지나가던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부서지면서 목성의 구름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포착했다. 사진=Hubble Space Telescope Comet Team


현재 태양계 행성들의 배치 상태는 우리 지구의 생명 탄생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다. 오래전 태양계 행성들 사이의 간격은 훨씬 비좁았다. 그래서 목성, 토성 둘의 강한 중력으로 인해 바깥의 천왕성과 해왕성의 속도가 더 가속되었고, 천왕성과 해왕성은 더 먼 궤도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왕성과 해왕성의 중력으로 인해 태양계 외곽을 떠돌던 혜성과 소행성이 태양계 안쪽으로 끌려들어왔다. 이렇게 쏟아진 혜성,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는 많은 물을 공급받은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행성들 사이 간격이 더 벌어진 지금에서는 목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위험한 소행성을 방어해주는 기능도 한다. 

 

따라서 지금의 태양계처럼 Ordered 케이스일 때가 생명 탄생에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태양계와 비슷한 Ordered 케이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계 중에서 단 1%밖에 안 된다. 만약 이 관점이 맞다면, 외계 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희박해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의를 진행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지구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해서 지금의 지구와 태양계의 상태가 생명 탄생을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할 ‘유일한 필수 조건’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생명 탄생이 가능한 여러 상황 중에서 한 가지일 뿐이라고 보는 게 (아직은) 타당하다. 식탁 위 빵가루 근처에 개미가 모여 있다고 해서, “개미가 존재하기 위해선 반드시 빵가루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빵가루는 개미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 빵가루가 없는 곳이라고 해서 개미가 못 사는 건 아니니까. 

 

외계행성을 알기 전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행성들은 태양계 행성이 유일했다. 그래서 우리 태양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더 넓은 관점에서 태양계를 돌아보고 다른 행성계들과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더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태양계밖에 몰랐던 시절에는 행성들의 배치에서 수학적 원리를 찾는 것이 그저 우연한 숫자 놀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행성들이 왜 이 자리에 놓여야 하는지, 어떤 조건이 행성의 배치를 결정하는지, 수많은 외계행성들을 모아놓고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0년 만에 티티우스-보데의 관점이 다시 부활한 셈일지도 모르겠다. 

 

참고https://www.aanda.org/component/article?access=doi&doi=10.1051/0004-6361/20224375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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