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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인간관계① 퇴사하면 '완벽한 타인' 어떻게 남길 것인가

동료의 퇴사로 인한 알 수 없는 배신감과 상실감…꾸준한 노력 통해 '느슨한 관계' 이어가야

2023.08.24(Thu) 10:27:50

[비즈한국] 오랜만에 이전 팀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지방으로 발령갔던 K 대리가 3년 만에 복귀한 기념이었다. 당시 우리 팀원은 모두 6명이었는데 이 중 2명은 퇴사를 했고 4명이 남았다. 그래도 그렇게 나쁜 상사는 아니었는지 2명 모두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며 먼저 알려주었고 그만두기 전에 얼굴을 보겠다며 따로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좋은 선배여서 라기보다는 그냥 그들 자체가 그렇게 경우가 바르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직장 내에서 아무리 마음이 맞고 가깝게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해도 퇴사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마련이다. 사진=생성형 AI

 

지난해 퇴사하고 영국 유학을 떠난 S 대리는 K와 유독 친밀했었는데 6개월 터울로 같은 지역으로 발령이 난 후에는 하우스 메이트로 지내기도 했다. 회사 동료와 사적인 공간을 공유할 결심을 했다는 건 그만큼 서로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이 맞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퇴사 직전까지도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지내던 이들이기에 K 대리에게 S의 근황을 물었다.

 

“연락 안 해요. SNS도 끊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이 안 돼요. 자꾸만 배신감이 들고 패배자가 된 것 같아요.”​

 

인사팀에 있으면서 일주일에 수차례 퇴직면담을 하고 기계적으로 사직서를 처리하다 보니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 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는 것도 이제는 그냥 밥 먹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도 잘하고 관계성도 좋은 직원이, 힘들게 온보딩시켜 이제 제 몫을 해내기 시작한 직원이 내 주변 가까이에 믿고 의지하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흔들리는 때가 더 많았다.

 

같이 일할 때 우리는 참 팀워크가 좋은 팀이었다.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쏟아지는 업무를 함께 헤쳐 나갔다. 날이 좋으면 샌드위치를 사서 회사 옆 공원에서 짧은 피크닉을 즐겼고 회식 때는 다 같이 의기투합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시고 떠들어댔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하고 싶은 곳이 회사라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거웠던 추억을 나눌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런 관계의 사람을 잃는 것에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정도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일 때문에 늘 함께 있는 것 같아도, 같이 일하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같은 직장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담당업무나 소속 부서, 근무 장소가 바뀌면 매일같이 통화하고 마주 보던 이들도 멀어지게 마련인데, 회사를 떠난 사람은 이제 애써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완벽한 타인’​이 된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잡고 있기 어려운 관계이니,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그래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만큼 피상적이고 부질없는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단 일주일, 아니 아주 극단적으로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전화 통화와 이메일, 회의와 미팅 속에서 스치듯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보고, 듣고, 느낀 찰나의 경험들, 그들과 쌓아 올린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자산인 셈이다. 그러니 정말 버리기 아까운 내 삶의 일부분이라면, 퇴사 후에라도 어떻게든 적당히 느슨하면서도 원만한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와 같은 얄팍한 마음으로 피상적으로 근황을 묻고 경조사를 챙기며 인맥 관리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서 기억 속에 소중히 담아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사람에게 상처 입고 위로가 필요한 날, 이놈의 회사 내일은 기필코 사직서를 던지고 말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 기억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으면 된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희미해졌지만, 평생의 동료는 남는다. 한 공간에 같이 있지 않다고 해서 그가 나의 인생길에 동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인연은 어디에서든 쉽게 만나기 어렵고 어쩌면 다시는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바로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들어 차단을 풀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보길 바란다. ‘얼마 전에 예전 그 팀장이랑 밥을 먹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말이다.                  ​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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