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엔씨소프트·넷마블 등의 게임 표절 소송의 결과가 나오면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 게임시장에서 표절은 고질병으로 여겨진 만큼, 소송 당사자가 아닌 게임업체들도 법원의 판단을 주목했다.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는 엔씨소프트가 자사 게임 리니지를 따라한 일명 ‘리니지라이크’에 칼을 빼든 가운데 법원이 이를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하면서 앞으로 유사 게임이 줄어들지 지켜볼 일이다.
#법원 “리니지M 게임 요소 ‘창작’으로 보긴 어려워” 저작권 침해 기각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제기한 표절 소송의 1심 결과가 나왔다. 엔씨소프트가 2021년 6월 웹젠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R2M’이 같은 장르의 자사 게임인 ‘리니지M’을 베꼈다며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만이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부장판사 김세용)는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엔씨소프트의 일부 승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 웹젠에 R2M 서비스를 중단하고 엔씨소프트에 청구금 10억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웹젠은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항소장을 제출해 R2M의 서비스 중단은 일단 막았다. 같은 날 박광엽 웹젠 게임사업본부 본부장은 R2M 홈페이지에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자사 입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게임 서비스가 실제로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대응을 마련 중이다. 항소심의 법원 판단이 마무리될 때까지 R2M 서비스가 멈추는 일은 없다”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웹젠의 R2M이 게임 UI·아이템·확률 시스템 등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을 모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저작권 침해 청구는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니지M의 게임 요소가 다른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규칙이기 때문에 ‘창작’한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재판부는 웹젠이 부정경쟁행위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해 영업상 이익은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엔씨소프트가 1000억 원대 비용을 들이는 등 리니지M 개발에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는 점과, ‘리니지라이크’라는 말이 생길 만큼 업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고려했다. 법원은 R2M 매출에서 경비를 제외한 수익을 약 241억 원으로 산정하고, 엔씨소프트의 손해액이 청구 금액인 10억 원을 넘는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리니지M 표절 논란 이후 웹젠이 R2M의 아이콘, 상점 그래픽 등을 바꾼 것도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수정 작업을 거친 R2M을 두고 “독자적인 고객흡인력을 가졌다거나 새로운 차이가 있지는 않다”라고 평했다.
법원이 1심에서 저작권 침해는 기각하고 부정경쟁행위 금지는 인용해, 양측은 2심에서 상반된 입장으로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 측은 “법원이 R2M으로 거둔 241억 원의 이익을 원고가 입은 피해액으로 본 만큼 항소심에선 청구 금액을 높여 항소하겠다”라고 답했다. 웹젠 측은 “저작권 침해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영업방해로 인정이 됐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리니지라이크의 영업상 이익 침해를 인정한 판결이 나오면서 비슷한 게임을 출시한 업체들도 긴장하게 됐다.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린 엔씨소프트가 향후 다른 리니지라이크를 상대로 소송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4월에도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를 대상으로 같은 소송(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 행위)을 제기했다. 올해 3월 엑스엘게임즈가 출시한 MMORPG ‘아키에이지 워’가 2019년 나온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는 내용이다.
#게임업계 줄소송 번질까
일각에선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라이크를 상대로 소송전을 이어가는 배경에 실적 악화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매 분기 감소하며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2022년 2분기 6293억 원에서 4분기 5479억 원으로 매출이 반년 사이 1000억 원 가까이 빠졌고, 올해 들어서는 1분기 4788억 원, 2분기 4402억 원까지 내려앉았다.
게임별로 보면 모바일 게임 매출을 이끄는 리니지W와 리니지2M의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리니지W 매출은 2022년 2분기 2236억 원에서 올해 2분기 1028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리니지M 매출은 1412억 원에서 1278억 원으로, 리니지2M은 962억 원에서 620억 원으로 줄었다. 수백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비용을 내는 리니지 이용자가 유사 게임으로 빠져나가 엔씨소프트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 학장은 “법적으로 표절 시비를 가리는 것을 떠나, 많은 게임이 리니지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다. 리니지 유저풀이 게임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층이기 때문”이라며 “국내 게임 업체가 서로 베끼는 건 오래된 일이다. 다만 최근에는 게임사들이 리니지가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것을 보고 ‘리니지 유저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짚었다.
위 학장은 “실제로 엔씨소프트에 위험한 상황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유사 게임이 범람하면 이용자 입장에선 차이점이 크지 않으니 내키는 게임을 한다”라며 “옛날에는 리니지 유저가 리니지에만 충성심을 보였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리니지로 버티는 게 한계에 다다르면서 엔씨도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게임업계 3N 모두 표절 소송을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희비가 교차한 넷마블과 넥슨코리아에도 눈길이 쏠린다. 넥슨코리아는 올 초 아이언메이스가 자사 미공개 프로젝트 ‘P3’를 기반으로 ‘다크 앤 다커’를 개발했다며 한국과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법원은 “이 소송은 한국 법원에서 판단하는 것이 낫다”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넷마블은 최근 마상소프트와의 소송전에서 1승을 거뒀다. 넷마블넥서스의 ‘세븐나이츠’가 ‘DK온라인’의 게임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며 마상소프트가 제기한 저작권 침해 금지 등의 청구가 7월 14일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다만 마상소프트가 지난 7일 항소장을 제출해 법정 공방은 이어질 예정이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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