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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휴가③ 갈수록 퇴행하는 '생리휴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여성 노동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건강권…갈수록 사용률 줄어도 여성혐오 수단으로 악용

2023.08.18(Fri) 09:56:25

[비즈한국] 직장생활이 벌써 20년 차에 접어드는데 생리휴가*를 써 본 경험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별로 없다. 생리휴가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휴가 중 하나(5인 이상 사업장 기준)이며, 고용형태, 직종과 무관하게 여성근로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사용자가 합당한 이유 없이 거절하면 벌금형을 받게 되는 강행규정이라는 사실도 인사업무를 하기 전에는 잘 몰랐다.

 

생리휴가(월경휴가)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임금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일종의 자기돌봄권이다. 사진=생성형 AI

 

생리휴가는 무급이기는 하지만(단체협상이나 근로계약서에 따라 유급인 곳도 있다) 연차휴가와 마찬가지로 법으로 정하고 있는 휴가권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청구하면 사용자는 승인해 줘야 한다. 다만 연차휴가와 달리 지극히 자연적인 ‘생리현상’​이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시기변경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속 일수나 주휴수당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월 1개씩 발생하고 사라지는 권리이기 때문에 하루치 급여의 삭감에 대한 부담만 없다면 생리통으로 고생하며 일하느니 사용하는 편이 낫다.

 

초경을 시작한 이래 불규칙한 생리주기와 월경 전 극도로 예민해지는 신경줄, 생리기간 동안에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요통으로 실제 월경 기간은 5일이지만 한 달 가까이 고통받는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상사에게 생리휴가를 청구하는 건 뭔가 껄끄럽기만 하다. 특히 남자 상사일 경우 더욱 그렇다. ‘혼자 유난 떠는 것도 아니고’​ 혹은 ‘​그것 좀 미루면 안돼?(나도 제발 미루고 싶다)’​라는 망언을 듣기도 싫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으로 ‘​생리(월경)’​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주기를 공개하는 것이 내심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근무시간1 정시출퇴근을 지켜보는 '라떼의 불만' 편에 등장한 우리팀 에이스인 A 대리는 생리휴가 또한 곧잘 청구한다. 승인해 주는 팀장이 여자여서 인가 싶었는데 이전 직장에서 상사가 남자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후배지만 정말 닮고 싶다. 생전 목소리 높이는 법이 없는 그녀가 전화 통화 중 누군가와 고성으로 옥신각신하더니 전화를 끊고 화를 내며 자리로 찾아왔다. 사업본부에 모 팀장이 “40대 후반이면 폐경기**(A 대리는 폐경기가 아닌 완경기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니냐며, 생리휴가를 청구한 여직원에게 진단서를 갖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진단서를 요구한 관리자 또한 여성이었고 해당 사업본부는 여성 근로자 비율이 70%에 달하는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조직 내에서 생리휴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 당시에는 오히려 생리휴가가 유급이었다. 물론 실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더 이후였지만.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경영계의 강력한 요구로 유급이었던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전환되었다. 왜 하필이면 여성 근로자의 생리휴가였을까? 근로자가 하루 쉬면 그만큼 회사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경영관, 나는 쉬지 못하는 데 왜 여성만 쉬냐는 맨박스에 갇힌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빚은 폭력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50여 년 동안 유급 생리휴가권을 실제로 사용한 여성 근로자는 그 수를 헤아려 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을텐데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힘이 없는 소수이다.

 

하루 임금을 포기하고 청구하는 최소한의 건강권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짜 휴가다, 입맛대로 휴일에 부쳐서 악용한다고 주장하는 이들 또한 많다. 위의 사례처럼 진단서나 생리 사실 입증을 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여성혐오, 여성노동에 대한 폄하 도구로 빈번히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생리휴가를 사용한 여성 노동자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2014년 23.6% → 2018년 19.7%) 쓰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는데 싸잡아 욕먹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는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피 묻은 생리대로 생리 중임을 인증하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단 하루라도 생리대를 착용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체험을 권하고 싶다. 이왕이면 보다 현실감 있게 빨간 물감을 한껏 머금은 생리대를 하고 종일 찝찝한 기분으로 행여 옷이나 앉은 자리에 묻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불안감을 함께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성평등을 고민하는 교사들은 성교육의 일환으로 본인이 희망하는 남학생들에 한해 직접 생리대를 착용하고 하루 정도 생활해 보도록 체험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우리회사는 중소기업이라 혹은, 사기업이라 생리휴가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없을 리가. 있는데 쓰지 않는 것 뿐이다. 아니, 알아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쓰겠다고 청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제도 자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사문화되다 보면 근로기준법 제73조는 결국 무용론에 시달리다 언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 무섭다. 여성의 노동인권이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월경휴가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제공해 주는 호의나 복지제도가 아니다. 내 하루치의 임금을 포기하더라도 좋으니, 다달이 겪는 생리현상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보듬고 단 하루라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청구하는 최소한의 건강권이며, 법으로 보장받은 유일한 자기돌봄권이다. 그러니 주위 눈치를 살피지 말고 좀 더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생리보다는 월경이 보다 적합한 표현이나 본문에서는 혼용해서 사용했다. 

**완경기 : 난소가 노화하며 월경이 마무리 되는 시기로 폐경이라는 말이 보다 자주 쓰이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혼용해서 사용했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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