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2년 10월 29일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당시 불법건축물이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위반건축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참사 직후 관할 구청인 용산구 박희영 청장이 자택 내 불법 증축물을 철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다. 위반건축물은 안전사고의 원인이나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어 강도 높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조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수년째 위반건축물로 인한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대형참사 이후 시와 지자체에서 기울인 노력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베란다·옥상 무단 증축 수두룩
2호선 신촌역 인근에는 대학교 3곳이 모여 있다. 1번 출구로 나와 홍대입구역 방면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상가 사이로 빼곡히 들어선 주택가를 발견할 수 있다. 16일 방문한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서는 베란다에 경량 철골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씌우는 등 불법 증축한 위반건축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출구에서 나와 도보로 6분을 걸었을 무렵 건물 상부 베란다에 아크릴판을 씌운 곳을 발견했다. 10여 분 뒤에는 건물 옥상을 폴리카보네이트로 무단 증축한 곳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들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니 오른쪽 상단에 노랗게 ‘위반건축물’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인 한 건물은 2010년 관리실을 시작으로 이동통로, 주거, 사무실 등을 수차례 무단 증축하고 시정하기를 반복했다. 옥상에 무단 증축된 40㎡에는 불과 지난달 시정 명령이 내려졌다. 2002년 시정 명령이 내려졌지만 아직까지 원상 복구하지 않은 건축물도 있었다.
건축법에서는 건축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한 뒤에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초과해 건축한 경우, 또는 애초에 허가를 받지 않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신축·증축 사례를 제한한다. 베란다에 지붕을 씌우거나, 점포 앞에 테라스를 만들고 천막 지붕을 씌우거나, 옥상에 옥탑방을 만들거나, 외부 계단 등을 아크릴판으로 씌우는 경우 등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대학가 인근에서는 불법 쪼개기나 용도 변경도 종종 적발된다.
#행정조치 강화했지만 아직은 ‘버티자’ 분위기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화재 및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위반건축물에 대한 항측 현장조사를 매년 실시한다. 시에서 항공사진 판독 결과 적출된 건축물을 구에 통보하면 조사팀이 현장을 방문해 행정조치를 하는 식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위반건축물의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차 시정 명령 시 ‘선 고발 조치’ 시행 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이행강제금 부과횟수를 연 1회에서 연 2회로 늘리는 조치가 시행됐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이행강제금을 내더라도 버티자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직후 현장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실시된 상가밀집지역 현장 전수조사에서 적발된 위반건축물은 모두 2600건이다. 이 가운데 시정 완료는 1600건, 시정 명령은 680건, 이행강제금 부과는 230건, 고발은 8건으로 집계됐다. 시 관계자는 “기존 건축물관리계획에 포함된 조사와 다르지 않지만 사고가 났던 곳이 상업지역인 만큼 상업지역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4월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로 ‘자치구 위반건축물 관리 지원계획’을 마련했다. 계획에는 위반건축물, 위험시설물 등의 철거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자치구에서 추진하는 경우 비용을 지원하고 위반건축물을 상시 지도·단속하는 건축지도원을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 관계자는 “위반건축물에 대한 포괄비 성격으로 시에서 5000만 원을 지원하면 구에서 철거비와 건축지도원 운영비 등으로 활용한다. 그동안 구에서 위반건축물 단속 업무의 인력 부족을 호소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업지역인 홍대·신촌·건대입구·강남 관할 구청에 문의한 결과 건축지도원 운영은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포구는 이달 계약을 완료해 건축지도원이 곧 업무 시작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와 광진구는 건축사사무소와 용역 계약이 완료되지 않았으며 “계약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공사장 점검 위주로 건축지도원 업무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제집행을 얼마나 했는지는 아직 통계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실 강제집행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공공에 위해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면 자치구에서 집행하겠다고 판단할 수는 있으나 비용이 부족해서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시에서 포괄비 성격으로 지원했다. 올해 말에 건축지도원 운영 등을 포함해 조치가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를 전체 취합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불법 행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법이 완벽할 수 없어서 상황에 따라 풀어주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그 틈을 타서 본인의 유불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강제이행금 금액이 높아지면 자진 시정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불법 행위는 목숨을 담보로 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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