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성과연봉제 개편을 두고 노사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롯데백화점에서 정신질환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롯데백화점 소수 노조 간부에 대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노조의 천막 농성에 맞서 노조원 자택에 경고성 내용증명을 보내 논란을 샀는데, 이 같은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취지의 판단이 나오면서 노사 갈등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관심이 모아진다(관련 기사
노조원엔 내용증명, 민주노총엔 공문…농성을 대하는 롯데백화점의 자세).
#‘수당 삭감·노조 탄압’ 노조 손 들어줬다
16일 근로복지공단, 노조 등에 따르면 신연봉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천막 농성을 한 노조 간부가 적응장애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지사는 노조 간부 이 아무개 씨가 2022년 3월 낸 요양급여 신청을 받아들여 7월 24일 요양·보험급여결정을 통지했다. 신청 병명인 ‘우울 장애’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적응 장애’로 변경 승인됐다.
이 아무개 씨 측이 공단으로부터 받은 ‘요양급여신청서 처리 결과 알림’ 공문에 따르면 질판위는 이 씨의 적응 장애가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질판위는 △진정절차, 천막농성 등의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관계에 노출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인사평가를 통한 수당 삭감 △익명게시판을 통한 비난과 노조 탄압 △천막농성 철거 및 연차휴가 신청 관련 공문을 자택으로 보내는 조치로 인한 심리적 압박 등으로 인해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요양급여는 질판위의 판단을 토대로 공단에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며 “신청자 본인이 적응 장애와 관련해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요인들이 판정문에서도 언급된다면 신청인의 주장이 더 인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년 반 전 농성 포기 압박이 ‘불씨’
이 씨는 1998년 입사해 23년여간 품질평가사 등으로 업무를 수행했고 현재는 서울의 한 지점에서 근무 중이다. 기본급 삭감이 가능한 신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2020년 12월부터 소수 노조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노조 측은 노사분쟁 해결 과정에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이와 관련한 직장 내 괴롭힘과 사업주의 조치 등으로 인해 병이 더욱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씨가 우울 장애를 진단 받은 지난해 3월은 노사 갈등이 극심했던 때다.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백화점지회는 2022년 1월부터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파기, 동일 직급 장기체류자에 대한 과도한 불이익 철폐 등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진행했다. 2020년 11월 창사 이래 처음 희망퇴직이 시행된 후 이듬해부터 인사고과 하위 등급 3회 누적 시 기본급은 3~10% 깎고,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소위 ‘업적가금’을 삭감하는 성과연봉제가 시행된 시기와 맞물린다.
롯데백화점은 공식적으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도 이미 승인된 연차를 문제 삼거나, 가족과 거주하는 자택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통상적이지 않은 조치를 이어가면서 노사 갈등이 깊어졌다. 특히 조직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문화팀 이름으로 발신한 내용증명은 연차 사용을 문제 삼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노동청의 통보가 나온 직후의 대처라 논란이 확산됐다.
#사측 “업무 복귀 요구는 정당한 조치” 반박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따라 연봉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노조의 단체 행동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노조 측은 “사측이 매년 연말 노조 간부들에게 퇴직을 강요하고 감원 목적으로 장기 근속 직원을 하위 평가해 저성과자로 만들어 기본급을 삭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재 판단 결과를 토대로 기자회견 등 본격적인 대응도 계획하고 있다. 이 씨는 “고과로 불이익을 줄 여지가 큰 탓에 노조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인사 시스템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며 “정신질병으로 산재 인정이 된 당사자로서 롯데백화점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자 한다. 법적 손해배상 소송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재 승인일부터 90일간 사측의 이의제기가 가능해 산재 승인이 번복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노조 활동에 대한 압박 등이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지는 만큼 사측도 업무 복귀 요구가 적법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농성 당시 노조는 근로시간 면제가 보장되지 않는 소수 노조에 해당해 장기 연차를 냈는데 이를 두고 사측은 업무 복귀 요구가 정당한 조치였다고 반박한다.
공문에 따르면 사측은 “갑작스러운 장기 휴가(총 35일) 사용으로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자 총 연차신청일 중 일부(20일)에 대해 적법한 시기 변경권을 행사하고자 한 것이며, 직원이 이를 거부하자 최초 계획된 연차를 소진하도록 했고 추후 징계 등의 처분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롯데백화점 측은 산재 판정에 대한 재심 청구 여부를 묻는 질의에 “관련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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