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최근 주요 상장사, 금융기관 등에서 임직원의 횡령·배임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회사에서 횡령·배임 사고가 드러나는 배경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임직원이 저지른 비위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감출 수 없을 수준이거나, 내부 경영권 다툼이나 회사 인수 과정에서 상대 진영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혹은 회사가 특정 임직원을 해고하기 위해 표적 감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회사 자금과 관련한 횡령·배임 사고에서 비위 혐의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주주들이 작당해 창업자인 본인을 비리 혐의자로 만들어 형사고소, 이사회 결의, 주총 결의 등을 통해 경영진에서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삼라만상은 복잡하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므로, 위와 같은 주장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혐의에 대한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적 책임의 성립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경우 그 사람이 창업자인지 내부 고발자인지, 또는 다른 경영진도 똑같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지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료를 통해 드러난 사정만을 가지고 형식적인 법리에 따라 책임 여부를 판단한다. 설령 회사의 문제 제기가 공익 제보자를 해고하기 위한 목적이더라도 그 문제 제기로 비위 혐의가 적발된다면 공익 제보자는 이어지는 해고 절차나 형사재판 절차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영권 분쟁이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실시하는 실사 과정에서 임직원의 횡령·배임 사례를 자주 접한다. 비위 혐의자 대부분은 회사를 위해 자금을 사용한 것이고 회계처리만 안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돈을 쓸 때 제대로 그 명목과 용처를 보고하지 않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자 부랴부랴 명목을 만들어 낸 것 같아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회사의 중간 관리자 단계부터 회사 자금의 횡령·배임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인 법인카드 사적 유용, 부정 사용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업무상 비용지출은 개인카드 등에 의해 지출 후 비용처리(경비 처리)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지출하는 판관비, 경미한 용품 구매, 출장경비 등을 일일이 비용처리를 하는 것은 불편하므로 법인카드를 발급하게 된다.
이처럼 법인카드의 목적이 절차의 간소화와 원활한 비용처리에 있다 보니 용처와 사용 금액을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혹여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관행적으로 넘어가는 것이고, 분쟁 과정에서 법인카드 부정 사용이 적발돼 사용한 용처와 명목별 업무 관련성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업무상 배임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법 2017고단721 판결은 피고인이 2012~2016년 학원 이사장으로서 인사·예산 등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면서, 학원 내부 지침에 따라 업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서적구입비·식사비·수강료·여행경비·상품권 구입비 등으로 총 3299만 원을 결제한 사안이 있었다. 법원은 피고인의 업무상배임죄를 인정하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같은 법인카드 사적 유용에서 피고인이 접대 등 대관 업무를 위해 상품권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으므로 사적 유용이 아니라고 하거나, 대관 업무의 특성상 용처와 상품권 수취인을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위 판결에서도 같은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현금성이 매우 강한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한 것은 회사의 금원을 인출해 사용한 경우와 비슷하다. 이 경우 피고인이 사용처에 관한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상품권을 교부한 상대방이나 사용처 등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사용액은 불법영득의 의사로 이를 취득함으로써 배임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해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한 실무상 인재 영입 차원에서 기본급 얼마, 법인카드 얼마 등의 조건을 제시해 마치 법인카드가 급여에 포함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회사가 업무에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법인카드 한도를 제시하는 것이지 법인카드의 개인적 사용을 회사가 사전에 허락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없다.
위 판결에서도 서울중앙지법은 “법인카드는 업무추진비 집행의 하나로 지급하는 것으로서 업무상 용도에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피고인이 일종의 보수라고 생각해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고, 피고인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상인 하급 직원의 말이나 업무행태에 따라 이사장인 피고인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정해진다거나 법인카드 사용범위를 판단한다고 볼 수도 없다”라고 판시했다.
물론 회사의 업무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설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법인카드 부정 사용 사례에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해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경우도 많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하므로, 이 같은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유죄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전지방법원 2017고단2286 판결은 피고인의 주장대로 회사의 업무를 위해 간식을 구매한 것인지 의심이 들더라도 ① 회사가 피고인을 해고하기 전까지 법인카드 부정 사용을 문제 삼은 적이 없고 ② 회사에서 직원들이 법인카드로 간식을 구매하거나 단체 회식을 하면서 식재료를 구매한 사례도 있으며 ③ 해외 출장·파견이 주된 업무여서 가끔 사용하는 법인카드 내역에 대해 일일이 증빙을 구비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④ 피고인이 사용 목적·용처 등을 구체적으로 소명한 점 등을 종합해 법인카드 사용에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변명은 제삼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따라서 업무 관련성에 대한 소명을 염두에 두고 용처를 가려 사용하거나, 사후 문제를 대비해 사용 일시·장소·대상자 등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위와 같은 하급심 판결을 참고해 볼 만하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다수의 영업 담당자는 같은 조언을 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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