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6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공식 문건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대단히 특이한 장비 구매 소식이 올라왔다. ADD가 우크라이나에서 터보제트 엔진 1기를 구매한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 해당 모델은 우크라이나 모터시치(Motor Sich)의 AI-222 엔진인데, 현재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군 장비용 제트엔진을 수입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례적인 장비 구매 거래를, 그것도 전쟁 중이라 민감한 우크라이나에서 굳이 수입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항공기용 제트엔진 구매가 매우 어렵고 힘든, 대단히 규제가 심한 품목이라서 그렇다.
우선 AI-222 제트엔진을 장착할 무기가 아주 민감한 장비이다. ADD와 대한항공이 공동 개발 중인 ‘저피탐 무인 편대기 기술시범기’. 일명 KUS-LW(Loyal Wingman)의 시제기가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제트엔진을 장착할 예정이다. KUS-LW는 본 칼럼에서도 몇 번 다룬 바 있는 21세기 공중전의 핵심 요소가 될 무인기를 만드는 것이다.
유인 전투기와 편대비행을 하면서 유인 전투기 대신 적진 깊숙이 침투 정찰이나 공격을 하는 것이 바로 이 KUS-LW 무인 편대기다. 각종 수출규제 및 해외 업체의 비협조가 심해 엔진을 수입할 곳이 마땅치 않은 판국에 유일하게 한국에 제트엔진을 수출한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였기 때문이다. 미국도, 영국 업체의 엔진도 장착하기 쉽지 않다.
우리 KUS-LW와 비슷한 크기의 무인전투기인 터키의 바이락타르 크즐에마(Bayraktar Kızılelma)도 우크라이나와 계약을 맺고 AI-222엔진을 대량 구매하기로 했으니, 사실상 무인기용 제트엔진은 사는 사람이 ‘갑’이 아닌 파는 사람이 ‘갑’인 공급자 우선 시장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드론에 실을 엔진을 구하지 못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산 엔진을 구하는 와중에 북한에서는 대단히 특이하고 조금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명 ‘새별-4형’과 ‘새별-9형’으로 불리는 신형 대형 무인기들이 공개된 것이다.
여러 미디어에서 이미 이야기한 내용은 짧게, 그리고 다른 곳들이 잘 다루지 않은 부분은 비교적 소상하게 정리해 보자. 2023년 6월 이전부터 위성사진으로 북한이 대형 무인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알려져 왔고, 이것이 최종 확인된 것이 2023년 7월 26일 ‘무장 장비 전시회-2023’이다. 문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국제 RQ-4 글로벌 호크(Global Hawk)와 RQ-9 리퍼(Reaper)와 닮아 있었다.
미국의 적대국들이 미국 비행기를 베끼는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다. 중국의 많은 드론과 항공기들이 미국제 드론과 비슷한 디자인을 지적받기도 했고, 이란의 경우 자국 영공에 추락한 미국의 RQ-170 센티넬(Sentinel)을 그대로 복제 생산한 적도 있다. 다만 이런 복제와 카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북한의 새별-4형과 새별-9형의 경우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피해 갔다.
일반적인 ‘불법복제’ 비행기의 첫 번째 특징은 크기를 줄인다. 이란의 RQ-170 불법복제 비행기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원본 미국제 비행기의 엔진처럼 효율이 좋은 대출력 엔진을 구하는 게 어려우니, 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엔진을 장착하다 보면 크기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비행기의 외형은 추락한 비행기를 수집하거나 해킹해서 모방할 수 있지만, 엔진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기술을 익히기도 어렵고 해킹하든 뭘 하든 소재 기술과 제작 기술이 원본과 같지 않으면 카피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법복제 비행기의 두 번째 특징은 100% 모든 외형이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공학적으로 설계도를 받아서 만든다 해도, 내부 모든 장비들을 카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부품과 장비로 갈아 끼워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필요 없는 장비는 제거하고, 중량을 되도록 줄이고, 이에 맞춰 설계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디자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북한의 새별-4와 새별-9는 이 두 가지 ‘비행기 카피의 법칙’을 완벽히 무시했다. 크기와 외형이 같은 무기를 만들었고, 이는 일반적인 무기 개발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우선 비행기의 모양이 완벽히 같다. 날개의 세부적인 모양이나 크기의 경우,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능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는 있어도, ‘비슷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완벽히 같다. 가령 새별-9 무인기와 모델이 된 미국 MQ-9 리퍼(Reaper) 무인기에는 둘 다 등 뒤에 두 개의 통신용 안테나가 있다. 북한 새별-9형이 미국제 드론과 같은 통신 장비를 당연히 갖출 수가 없을텐데 안테나의 모양과 크기가 같다. 비슷한 중국제 드론의 경우, 당연히 드론의 전파 송수신 장비를 중국산으로 쓰니 안테나의 위치와 모양이 비슷하긴 해도 조금씩 다르다.
새별-4형 드론도 비슷하다. 새별-4형과 비슷한 RQ-4 글로벌 호크(Global Hawk)의 경우 기수 앞부분이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장거리 통신용 대형 위성통신 안테나를 장비한다. 하지만 북한은 당연히 통신위성이 없으니 이 부분을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없는데도 완벽하게 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공학적으로도 같을 수가 없는 부분까지 같은 것이다.
크기가 같은 것도 문제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위성사진으로 본 두 가지 북한 드론의 날개폭은 40m, 20m로 크기까지 미국산과 완전히 같다. 이렇게 미국산 드론과 크기가 같다면, 대체 엔진을 어디서 구했는지 더욱 미스터리다. 가령, 새별-9형과 비슷한 이란제 드론인 샤헤드(Shahed) 129는 미국산 리퍼 무인기나 새별-9형보다 훨씬 작다. 100마력짜리 왕복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새별-9형이 리퍼 무인기와 같은 크기를 가지고 무장까지 장착한 것은 결국 리퍼 무인기와 동급인 900마력에 가까운 엔진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 출처를 추정하기 쉽지 않다. 다만 출력이 비슷한 러시아산 TVD-10B 엔진을 구하는 데 성공했거나, 북한이 몰래 밀수한 뉴질랜드산 PAC P-750 비행기의 PT6A 엔진을 떼어다 썼을 가능성이 크다.
새별-4형 무인기의 엔진은 더욱더 오리무중이다. 40m 날개폭을 가진 새별-4형이나 미국제 글로벌 호크에는 롤스로이스 AE3007급의 7천 파운드 추력 터보팬 엔진이 필요하다. 한국도 이 정도 엔진을 드론에 장착할만한 것이 없어 앞서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 상황에서 출처를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상상해 볼 만한 것은 북한 공군이 보유했다고 의심되는 체코제 L-39 훈련기에서 이브첸코(Ivchenko) AI-25엔진을 떼다가 붙였다는 것인데, 이 역시 확신하긴 어렵다.
한국도 구하기 어려운 대형 무인기용 제트엔진을 억지로 구해서, 굳이 닮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닮은 대형 무인기를 북한이 결국 만들어낸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기 개발의 필수요소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바로 무기 개발에 막무가내식 ‘탑다운’ 개발방식이 빠른 시간에 구체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더라도, 결국 무기는 ‘과학의 기초체력’ 없이는 우수한 성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항공기용 엔진을 만들 기초 과학과 공업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비행하는 초대형 드론을 공개해도 이것이 양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 전투에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부품을 공급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는 전혀 증명하지 못한다. 다만 ‘미국제 최신 무기를 그대로 가진다’라는 자긍심과 헛된 위협만 가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도 한때 북한처럼 겉모습에만 집중한 국산 무기 개발, 성과 위주의 단기목표에만 집중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항공기용 터보팬 엔진 등 핵심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우리 군과 방위산업들은 갑작스러운 북한 신무기의 ‘깜짝 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방위산업 발전을 위한 기초 투자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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