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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장이 방문점검원 목숨줄 좌우, 본사는 뒷짐…정수기 렌털업계 '갑질 논란' 속으로

수입과 직결된 계정 배분 권한, 지국장이 쥐어…본사 "특수고용직이라 관여 못 해"

2023.08.04(Fri) 09:26:15

[비즈한국] 지난해 여름, 정수기 방문점검원이 고독사한 사건 이후 방문점검원의 업무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인은 사망 두 달 전부터 일감이 끊겨 스트레스와 생활고로 지병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건의 배경에 관리직원의 ‘갑질’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전 렌털 업계에는 관리자가 일감을 볼모로 방문점검원을 길들이는 행위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관리직 갑질 논란 역시 소속 기업과 관계없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방문점검원들은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바뀐 것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국장이 일감 배분 전권을 쥐고 있는데 사측의 제어 장치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관리직원의 ‘계정 갑질’이 반복되는 이유를 짚어봤다.

 

관리계정을 배정 받지 못한 고인이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 사진=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SK매직MC지부​

 

#지역·업체 불문하고 터지는 ‘관리직 갑질’ 현실

 

최근 SK매직 울산지역 한 지국에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지국장이 MC(Magic Care·자사 방문점검원 지칭)의 관리계정을 빼앗아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노조 설명회에 참석하려는 MC에게 ‘재계약하지 않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관리계정은 렌털 제품 점검 수요를 말한다. 방문노동자들은 회사가 판매한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가정·사업장을 방문해 주기적으로 필터 교환, 점검 등의 관리업무를 한다. 노조는 본사에 해당 지국장에 대한 인사조치와 부당노동행위 근절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지난달 지국장이 인사 이동하는 것으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SK매직은 1년 전 ‘방문점검원 고독사’ 사건으로 수모를 겪었다. 경력 5년 이상의 방문점검원이 지난해 6월 서울 신림동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사망 2개월 전 관리직원에 일감을 몰수 당하고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지막 두 달 동안 담당한 업무는 한 건에 불과했다. 고인이 생활고를 겪다가 스트레스로 지병까지 악화했다고 전해진다. 노조는 사건 직후 성명을 내고 “업계에 만연한 관리직 갑질로 결국 사람까지 죽어나갔다”며 회사의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했다.

 

부산지역의 한 코웨이 지부에서 지국장이 방문점검원들을 벌레에 비유하는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됐다. 사진=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이 사건으로 업계에 파장이 일었지만 업체를 불문하고 지금도 “변한 게 없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지난 2월 부산의 한 코웨이 지부에서는 예고 없이 일감을 뺏긴 코디(코웨이 여성 방문점검원) A 씨가 회사에 공식 항의하자 팀장이 업무 소통망에서 ​그를 ​배제하고 따돌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보다 앞서 지국장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습하고 어두침침한 곳에 사는 벌레들”, “벌레들을 몰아내자” 등 방문점검원들을 벌레에 비유하는 글을 올리는 사건도 있었다.

 

#현장직원들의 ‘생사여탈권’ 쥔 관리자들

 

특수고용직인 방문점검원들은 왜 갑질에 무방비일까. 고용 방식과 임금 체계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방문점검원은 기본급 없이 자신이 맡은 계정에 수수료를 매겨 월급을 받기 때문에 계정 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 계정을 배분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지국의 관리자에게 있다. 8년 차 SK매직 방문점검원 B 씨는 “사소한 문제라도 관리자의 심기를 거스르면 당장 다음 달 계정이 줄어들 수 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해도 내 수입이 한두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국의 관리자와 방문점검원이 협력하며 일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문점검원들의 실적이 지국 관리자의 추가 수당이 되는 만큼 영업 압박 등으로 인한 갈등이 잦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SK매직MC지부 관계자는 “지국장이 본사에 사유서를 써서 계약 해지를 요청하면 바로 계약 해지 통보가 내용증명으로 온다.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다”며 “상급자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적이 마음에 안 들면 일방적으로 계정을 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영업 압박이 갑질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앞서 A 씨도 소속 지국에서 실시한 캠페인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 ​매주 5일 일하고 일감을 5%씩 처리해 매달 95%의 점검이행율을 달성하자는 ​​‘5595’ 캠페인 도입 후 실적 압박이 거세졌는데, 초기에 이행율이 떨어지자 제품 위생 관리 소홀을 이유로 계정 수가 삭감됐다. ​캠페인이 갑작스럽게 시행된 데다 기존에 고객과 약속한 방문일이 있었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 

 

SK매직MC노조는 현재 계정 수수료 인상과 계약 해지 방식 개선 등을 두고 사측과 교섭 중이다. 사진=노조 제공

 

#불안정한 수입이 ‘갑-을’ 구조 만들어…본사는 “특수고용직” 뒷짐

 

열악한 처우는 방문점검원에게 갑질이 통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기본급이 없어 임금이 불안정하니 관리계정 배정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50대 코디 C 씨는 “생계가 달려 있는데 계정 몇 건이라도 무시할 수가 없다. 경력이 짧은 사람들은 더 하다. ‘시키면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계정 갑질 신고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데, 지국의 관리자를 상급자로 보는 인식이 굳어진 탓이다.

 

지난해에는 강원지역 코웨이 지국 중 한 곳에서 지국장이 갈등을 빚던 방문점검원의 계정 200여 개를 뺀 일도 벌어졌다. 코디·코닥(코웨이 남성 방문점검원)은 월평균 220여 개 계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월수입의 90% 이상을 삭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평균 수수료 7600원을 적용하면 한 달에 16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차량유지비, 통신비, 식비 등 사비로 충당하는 45만 원 수준의 업무상 비용을 제하고 나면 실제 수입은 120만 원 정도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이지만 토요일까지 근무하거나 저녁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SK매직과 LG헬스케어(하이케어솔루션)은 평균 수수료 단가가 각각 8400원, 9300원대로 더 높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데도 본사는 “방문점검원은 겸업이 가능한 사장”이라며 방문점검원 관리 책임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일하는 방문점검원의 업무에 회사가 직접 관여할 수 없다. 지국 중심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디·코닥 노조는 최소 계정,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 보장 등을 사측에 요구하며 8월 말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관계자는 “회사는 방문점검원 관리는 지국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맘에 안 들면 나가라’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본사가 지국을 통폐합하면서 코디·코닥을 임의로 배치하고 있다. 그 절차 역시 깜깜이로 진행돼 현장의 방문점검원들은 통보를 받는 게 전부다. 지국장의 결정에 따라 원래 가지고 있던 계정 비중보다 줄어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웨이 코디·코닥 노조는 최소 계정을 보장하는 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사가 관리계정의 하한선을 보장해 기본급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계정 수수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전국 10개 지역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8월 말 대규모 집회도 예고했다. 

 

업계 2위 SK매직의 방문점검원들도 사측과 교섭하고 있다. SK매직 MC노조 관계자는 “​수수료 체계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계약 해지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지부장이 일방적으로 방문점검원의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시스템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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