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애경그룹의 백화점 브랜드 AK플라자는 2년째 ‘명품 없는 백화점’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롯데·신세계·현대에 이어 업계 4위 자리에 올랐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줄줄이 철수하자 아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지역 친화형 백화점을 표방하고 나섰다. 고급화에 사활을 거는 백화점 업계와는 정반대 행보다. 브랜드 라인업이 가장 화려했던 분당점에서도 2021년 전후 명품 브랜드가 모두 빠졌다.
점포별 리뉴얼이 진행됐지만 아직까지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 모습이다. 백화점 부문 자회사 AKS&D(에스케이에스엔디)는 2020년부터 누적된 적자로 수익성 개선이 절실하다. 모회사 자금 수혈 등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채워가고 있으나 재무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 밀착 전략의 한계 역시 지적되는 가운데 경쟁력을 높일 묘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AK플라자가 명품 브랜드들의 이탈 이후 지역 친화형 쇼핑몰을 표방한 가운데 아직까지 실적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명품관이 있던 분당점 1층에는 식음료와 패션 브랜드가 입점했다. 사진=강은경 기자
#1층 명품관 자리엔 스벅·쉑쉑…효과는 ‘글쎄’
AK플라자가 가장 먼저 ‘데일리 프리미엄’ 전략을 빼든 점포는 분당점이다. 분당점은 2021년 5월 애플 체험 매장인 프리스비 오픈으로 리뉴얼을 마쳤다. 체험과 휴식을 강화한다는 구상 아래 지상 1층에 스타벅스 리저브, 쉐이크쉑 버거, 삼성 모바일숍 등을 들였다. 이곳은 원래 페라가모, 구찌, 버버리 등의 명품 매장이 위치했던 장소다.
분당점은 MD개편을 통해 공간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지상 1층에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을 추가 입점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 따르면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입점이 확정됐다.
AK플라자는 지역 밀착 전략의 효과가 예상보다 부진하자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K플라자의 한 직원은 “수원·분당·평택·원주 4개 점포마다 주요 고객층이 조금씩 다르다. 분당점은 40~50대 고객이 주요 타깃인데 명품 매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수고객들이 애용하던 막스마라, 이세이미야케 등의 고급 브랜드마저 빠지면서 타격이 있었다. 젊은 층을 이끌 수 있는 패션 브랜드 추가 유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당점은 삼성물산이 운영하던 ‘삼성플라자’를 애경그룹이 인수해 재개점한 곳이다. 주변 상권이 발달한 서현역에 위치해 있다. AK플라자라는 브랜드명도 2009년까지 유지했던 옛 이름 ‘애경백화점’과 삼성플라자를 통합하며 새롭게 지었다.
분당점은 AK플라자에서 핵심 점포이며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이 2015년 차로 10여 분 거리에 판교점을 열면서 명품 브랜드의 이탈이 시작됐다. 수도권 최대 규모인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인근 브랜드 매장의 수요를 흡수했다. 희소성을 중시하는 명품 브랜드는 매장 수를 통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입지에 자리를 잡는다. AK플라자 분당점에는 과거 루이비통, 디올, 구찌, 프라다 등이 입점했지만 2021년 3월 버버리의 철수를 끝으로 분당점에는 코치 등 매스티지(대중 명품) 브랜드만 남게 됐다.
분당점 1층 시계탑 광장(위)과 화장품 매장 입구. 사진=강은경 기자
#충성 고객 이탈 감지
분당점은 한때 그 일대 터줏대감으로 여겨졌던 만큼 오래된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이는 명품 없는 백화점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게 업계의 말이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경기 남부는 5대 백화점이 모두 경쟁하는 지역이다. 럭셔리 매장 규모를 확대하고 입점 브랜드를 키우려고 다들 공을 들인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우수 고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명품관이 없다면 이들을 붙잡아두기 어렵다. 우수 고객 이탈은 명품이 아닌 다른 고가 브랜드 매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기 남부 지역 백화점들은 VIP 유치 경쟁에 한창이다. 최근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은 인근 라이벌 백화점 VIP 고객들에게 한시적으로 자사 VIP 혜택을 준다고 공지하며 모객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찾은 AK플라자 분당점은 지하층 식품관과 지상 1, 2층에 위치한 식음료 매장이 중장년 고객으로 붐볐다. 1층 메인 홀에 위치한 시계탑 광장 의자에 둘러앉아 휴식하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도록 지하 1층 스포츠·스트리트패션 매장이나 지상층에 위치한 의류·잡화 매장에는 발걸음이 뜸했다. 2층 수입 브랜드 매장 인근에 가끔씩 여성 고객들이 오가는 정도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꾸준히 지갑을 열고 객단가가 높은 50대 이상 여성 고객을 놓치면 백화점의 정체성을 잃고 ‘상가화’될 위험이 존재한다. 식음료 브랜드도 사실상 주요 상권마다 잘 갖춰져 있어 차별화 전략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21년 10월 개관한 광명점(위)과 금정점 외관. 사진=AK플라자 제공
AK플라자는 다른 지역에도 개편·신규 출점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0월 광명점 개관에 이어 지난해 7월 경기 군포시 오피스 상권에 지역친화형 AK플라자 금정점을 오픈했다. 당시 AK플라자는 “백화점 부문의 인지도와 경쟁력을 쇼핑몰 영역까지 확대하고 마케팅 역량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그렸다.
#적자 누적되는데 분위기 전환할 ‘묘수’는?
AK플라자의 전략은 얼마나 유효했을까. 실적 면에서는 아직까지 부진하다. AK플라자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9% 증가한 2473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적자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채로 누적되고 있다. 영업손실은 2020년 221억 원, 2021년 247억 원에 이어 지난해 191억 원을 기록했다. 광명점과 금정점 개점 등 신규 출점에 따라 판매관리비도 늘었다. 직영점 중심의 상품 및 제품 매출액은 6000억 원대로 정체됐다. 명품 수요가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빅3’의 실적을 이끈 것과 대비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조 단위 매출을 올리며 상승세를 탔던 시절을 떠올리면 더욱 뼈아픈 하락세다.
지난해 3대 백화점이 점유한 시장 규모는 전체의 88.9%다. 시장 점유율 5위를 기록한 AK플라자는 매출이 5.2% 상승했지만 매출 성장세는 경쟁사 중 가장 저조했다.
연이은 영업손실로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모회사인 AK홀딩스로부터 유상증자와 담보제공 등 전방위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영업현금창출력이 부진해 당장은 재무안정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률이 94.81%에 달한다.
더현대 등 볼거리를 강화한 대규모 복합시설의 등장과 온라인 채널 부상으로 중저가 쇼핑몰의 입지가 애매해진 상황에서 AK플라자의 전략이 유통업계의 큰 트렌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용구 교수는 “앞으로는 압도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하지 않으면 오프라인 매장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백화점의 핵심 판매 역량은 명품에서 나온다. 애경만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품 외에도 다른 쇼핑몰 대비 차별화 요소가 없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며 “분위기 좋은 카페, 맛집 말고도 지역 상권에 맞고 기능이 확실한 앵커 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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