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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바오밥' '마이크로 바이옴'…외국어로 가득한 한국 화장품 표기

대부분 전면에 한글이 없거나 영어보다 작게 쓰여…권익위 "식약처에 권고했지만 시행 안 돼"

2023.08.01(Tue) 17:54:50

[비즈한국] ‘퍼펙트 스타일링 세럼 샴푸’, ‘퍼펙트 오리지널 세럼 컨디셔너’, ‘모이스춰 클리닉 샴푸’, ‘모이스처 버블 핸드워시’, ‘밀크 바오밥 바디워시’. 마트를 방문하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두발용·목욕용 화장품 제품명들이다. 마땅히 대체할 어휘가 없는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 등을 제외하더라도 ‘퍼펙트’, ‘스타일링’, ‘오리지널’, ‘모이스처’ ‘버블’ 등의 외래어가 눈에 띈다. 제품 전면을 아예 영어로만 표기한 상품도 수두룩하다. 취재 결과, 관련 법령에 한글 제품명의 크기·위치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가 없는 데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체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에 진열된 샴푸 전면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김초영 기자

매장에 진열된 샴푸 전면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김초영 기자


#“제품 전면에 영어뿐…선뜻 구매 어려워”

 

70대 박 아무개 씨는 샴푸와 보디워시를 구매하기 위해 반포동의 한 대형마트를 방문했다 한참을 헤맸다. 샴푸와 보디워시를 찾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원하는 제품들을 받아들 수 있었는데, 평소 사용하던 것이 맞는지 살펴보던 박 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면에 ‘shampoo(샴푸)’, ‘body wash(보디워시)’를 포함해 온통 영어로만 설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뒷면을 보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자로 ‘샴푸’, ‘보디워시’가 표기되어 있었다. 설명 부분은 제대로 읽을 수 있겠지 싶었지만 ‘건강하고 빛나는 머릿결을 위한 단백질 헤어 클리닉’이라는 문구의 ‘헤어 클리닉’이 무엇인지 몰라 선뜻 살 수 없었다.

 

31일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 박 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매장도 큰 데다 여름을 맞아 기획전을 하는 탓에 샴푸, 보디워시, 핸드워시 등 두발용·목욕용 화장품이 이곳저곳 나뉘어 진열되어 있었는데, 중장년 고객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무엇보다 제품명이 영문 혹은 외래어로 표기된 부분이었다. 기자가 진열된 상품들의 제품명, 책임판매업체 등을 파악하기 위해 꽤 오래 머무르는 동안 뒤에서 제품을 살펴보던 한 80대 여성은 “내가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 이게 샴푸와 보디워시가 맞냐”며 상품을 내밀었다. 각각 앞면에는 ‘clinic care shampoo for extremely damaged hair(클리닉 케어 샴푸 포 익스트리믈리 데미지드 헤어)’와 ‘original collection body wash(오리지널 컬렉션 보디워시)’라고 쓰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글문화연대가 서울, 경기 등 16개 지역에 거주하는 14~79세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어 표현에 대한 일반 국민 인식 조사(2020)’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4%가 일상에서 외국어·외국 문자 등 외국어 표현을 “다소 사용하는 것 같다”, “매우 많이 사용한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외국어 표현 3500개를 얼마나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0% 이상이 30.8%(1080개)에 머물렀다. 70세 이상에서는 6.9%(242개)에 불과했다. 국민 60%가 외국어 표현 10개 가운데 7개는 헤아리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한글 적으라는데…

 

현행 법령에서는 화장품의 명칭, 영업자의 상호, 제조번호,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 등을 1차 포장에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화장품법 제12조(기재·표시상의 주의)에서는 제10조(화장품의 기재사항) 및 제11조(화장품의 가격표시)에 따른 기재·표시는 다른 문자 또는 문장보다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하여야 하며,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표시해야 하되, 한자 또는 외국어를 함께 기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입화장품의 경우에는 추가로 제조국의 명칭, 제조회사명 및 그 소재지를 국내 화장품제조업자와 구분하여 기재·표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위반 횟수에 따라 판매 또는 해당 품목 판매업무 정지 1~12개월까지의 행정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책임판매업체가 행정 처분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법령에서 ‘한글로 정확히 기재·표시할 것’을 말하고 있지만 글자의 구체적인 위치 혹은 크기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업체 측에서는 전면이 아닌 측면·후면, 혹은 스티커 등을 이용해 기재사항을 반영해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 외래어의 경우에도 외래어 표기법대로 적는다면 위반 사항은 아니다. 규범 표기가 미확정인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에서 제조 및 판매를 하는 상품임에도 내국인에게 불친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입 제품이 아님에도 영어가 한글보다 큰 글씨로 적혀 있거나, 영어가 한글보다 더 많이 기재되어 있어 제품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31일 방문한 대형마트의 샴푸·보디워시 매대에서는 언뜻 보면 외국 마트로 착각할 정도로 영어가 한글보다 두드러졌다. 전면에서 바라볼 때 보이는 보이는 한글은 ‘1+1 행사제품 하나 더’, ‘2개 구매 시 50% 할인’ 등 행사를 알리는 스티커와 가격표 정도였다.

 

#전문가 “제품명이 소비자 선택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고민 필요”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말 그대로 한글로 기재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위반으로 볼 수 있다. 기능성 화장품 외에 일반 화장품은 등록대장 등에 등록돼서 관리되고 있지 않다”며 “제품명 표기와 관련해 일반 화장품은 책임판매업체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식약처는 수시 감시나 민원 등을 통해 확인되는 내용이 있으면 위반 사항에 대한 행정 처분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글 표기를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책임판매업체 측에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샴푸 매대. 이 가운데 제품명이 전면에 한글로 적혀 있거나, 한글이 영문보다 크게 적힌 상품은 없었다. 사진=김초영 기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08년 화장품의 기재·표시방안 개선을 위한 의견조회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권익위는 “한글이 영문 글씨보다 작아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한글 표기가 상품 뒷면에 작은 글씨로 되어 있어 제대로 못 보는 경우 등으로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화장품법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표시’하도록 하는 규정을 위반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개선방안으로 외국어와 함께 한글을 기재할 때는 ‘한글이 외국어보다 크게 할 것’, ‘전면에 한글 제품명 등을 기재할 것’의 내용을 포함한 시행규칙 개정 보안과 식약처에서 지침화해 감시·감독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의견 조회 이후 제도 개선 권고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권익위 관계자는 “식약처 측에서 시행 규칙을 개정해 제품명을 알아보기 쉽도록 구체화하겠다는 수용 의견을 보내왔지만 시행 규칙 개정까지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제품명 표기가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중요한 부분은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데 표기가 지장을 주는가이다. 세세하게 규제하려면 그만 한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도 브랜드명 혹은 경험적으로 상품에 대해 알 수 있는 만큼 무조건 한글 표기에 대한 규제를 새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품명이 소비자에게 화장품의 품질 등을 연상하게 해야 하는데 한글 제품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특정 기능이나 효과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화학 성분의 이름을 딴 제품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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