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직장에 다니며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녔을 것이다. 직장 생활이 힘들거나 잘 맞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고, ‘더 늦기 전에 내 것을 해보고 싶은’ 창업의 꿈을 가진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내 사업을 할 것인가, 월급쟁이로 살 것인가. 유럽 테크업계에서 이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나는 ‘유럽이 과연 창업할 만한 생태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유럽 VC의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 테크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베를린 급여 트렌드(Berlin Salary Trend)’ 결과다.
#유럽은 스타트업 하기 좋은 환경일까, 강점과 약점
전 세계적으로 경제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스타트업 투자 업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올 초부터 테크 회사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레이오프(layoff) 소식이 들려왔다. 레이오프는 다운사이징, 예산감축, 구조조정 등 경제적인 이유로 기업에서 직원을 영구 해고하는 것으로 말한다. 대규모 레이오프는 불안한 경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유럽 테크업계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유럽 테크 회사에 투자를 점점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삶의 질과 투자 대비 높은 수익률 등 유럽 스타트업은 투자자들에게 소위 ‘가성비가 좋다’고 인식된다.
전 세계 VC와 사모펀드에 관한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가 참여한 유럽 펀딩 라운드의 평균 금액은 2021년에 3800만 유로에 달했다. 전년도의 1940만 유로에 비해 거의 두 배 증가한 수치로, 유럽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29일 유럽의 대표적인 VC 스피드인베스트(Speedinvest)는 뮌헨공과대학 경영대학원 라이너 브라운(Reiner Braun) 교수와 협력해 유럽 투자 생태계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유럽 투자자 437명의 심층 인터뷰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유럽 VC에 관한 조사 중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꼽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점은 유럽의 교육 시스템과 대학(70%) 환경이다. 거의 유사한 비율로 약 65%의 투자자가 유럽의 풍부한 인재가 유럽 생태계의 강점이라고 대답했다. 그 밖에 61%는 유럽의 기술적 노하우와 지적재산(IP)을 상당한 강점으로 봤고, 공적 자금의 가용성(43%)과 흥미로운 투자 기회가 많다(43%)는 것도 좋은 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약점도 만만치 않다. 무려 75%의 투자자가 자본 시장과 엑시트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유럽 생태계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았다. 그 밖에도 생태계의 성숙도(62%)가 높지 않다는 점과 유한책임투자자(LP)와 자금의 부족(59%)이 그 뒤를 이었다. 규제 환경(51%), 스타트업이 자본 접근에 한계를 가지는 점(44%), 경험이 풍부한 기업가 부족(41%)하다는 것도 꽤 높은 비율로 유럽 환경의 약점으로 꼽혔다.
유럽 VC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된 반면 미국은 초기 및 후기 단계까지 다양한 단계의 투자자를 보유했다는 면이 생태계 성숙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유럽과 미국의 VC에 관한 비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유럽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미국 투자자보다 지분을 더 적게 소유하는 것과, 주식시장 노출에 덜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유럽 VC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지분을 덜 소유하면서 네트워크를 강력하게 구축하고, 신디케이션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투자 기회를 만들어낸다.
이런 환경에도 지난 1년 동안 많은 미국 투자자가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미국 유명 VC 세콰이어캐피털(Sequoia Capital), 라이트스피트 벤처파트너스(Lightspeed Venture Partners),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가 최근 3년 동안 유럽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그 밖에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에 지사를 설립하는 미국 VC가 증가했다.
앞의 설문 조사에서 유럽 생태계의 매력 중 하나로 꼽힌 것은 유럽이 미국에 비해 아직 대규모 엑시트를 한 역사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투자자가 유럽 최초 초대형 엑시트의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본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창업하는 많은 창업가의 꿈이기도 하다.
#베를린 테크회사 평균 연봉은 1억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베를린 테크신에 관한 뉴스레터를 제공하는 핸드픽트포베를린(handpicked for berlin)에서 흥미로운 설문 조사가 나왔다. 베를린 테크회사에 재직하는 사람 970명의 연봉을 조사한 것. 이 설문은 표본 직군과 연령, 경력 등을 특정하지 않는 무작위 설문이기 때문에 현실과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설문에 참여한 970명의 평균 연봉은 7만 1470유로(약 1억 원)이다.
직군별로 살펴보자면, 시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Senior Data Scientist)가 9만 5800유로(1억 3400만 원)가 가장 연봉이 높았고, 시니어 프러덕트 매니저(Senior product manager)가 9만 5200유로, 솔루션 아키텍트(Solutions Architect)가 9만 667유로로 그 뒤를 이었다. 솔루션 아키텍트는 비즈니스 목적에 맞는 특정 솔루션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 비전을 만드는 역할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과 함께 전략가로서의 역량도 두루 갖추어야 하는 직군이다. 개발직군이 아닌 일반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r)는 평균 6만 6777유로(9400만 원)가량이었다. 채용 전문 웹사이트인 스텝스톤(Stepstone)의 2021년 데이터에 따르면 베를린 평균 연봉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5만 6000유로(7800만 원)이다.
올해 많은 기업에서 고용을 동결하고 직원을 감축했지만, 설문 응답자의 3분의 1은 ‘최근 6개월 동안 연봉이 인상됐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5% 이상이 학사 이상의 고등교육을 마쳤고, 48.3%의 응답자가 EU 이외 국가 출신이었다.
이러한 결과만을 놓고 보면 베를린 테크신에서 일한다는 것은 꽤 조건이 좋아 보인다. 특히 비EU 국가 출신도 매우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막 사회생활을 하는 주니어급보다는 어느 정도 경력을 갖춘 시니어급에서 이러한 기회가 더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베를린의 거주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베를린의 임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23년 베를린 아파트 평균임대료는 ㎡당 25.45유로다. 약 50㎡(15평)의 거주지를 얻는다고 했을 때 한화로 평균 175만 원가량의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집을 아주 잘 구한 경우에 말이다.
독일은 현재 테크업계의 전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24년부터 기술 분야의 이민 비자를 개편할 계획이라 앞으로 더욱 다양한 국적으로 채워질 것이다.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투자 측면에서도 전 세계의 자본으로 풍성해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막 성장하는 이 생태계의 도전은 무엇이고, 기회는 무엇일까. 이러한 환경에서 여러분이라면 초대형 엑시트가 기다리는 창업가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업계의 일원으로 훌륭한 수준의 월급 받으면 살 것인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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